밥을 굶는 사람에겐 밥이 전부이지만, 한번이라도 꿈을 꾼 적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이 삶의 전부가 된다.
매슬로가 자신의 심리학을 펼치면서 하는 이야기다. 그는 심리학자 중에서는 독특하게도 ‘절정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절정경험이란 일종의 고도의 몰입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삶에서 양질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러한 ‘절정경험’을 다른 이들보다 더 자주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절정경험이 빈번하게 있을수록 그 삶은 좋은 삶이다. 그럴수록 그의 삶은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삶이 된다.
절정경험은 일종의 신비적 경험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는 다소 추상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에 의하면 절정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벗어나 대상 중심적인 세계로 이전한다. 나에게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대상이 된 듯한 착각, 나를 잊고 세계가 되어버린 듯한 오인에 빠진다. 다시 말해, 이것은 탈자아적인 경험이다. 나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사고하고, 감각하는 것이 전환되어 오히려 세계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속에서는 기존에 나의 자아에 들러붙어 있던 기준들이 사라진다. 비교와 판단의 관념적 기준들이 없어지면서, 단지 ‘있음’ 자체로 세상을 누리게 된다. 세계를 구별하여 비교하고 대조하기보다는 세계 전체를 하나로 받아들이는 인지가 시작된다. 기존에 나를 묶어왔던 시간관념이나 공간 인지도 사라지고 단지 ‘지금 여기’에 완전하게 속하게 된다. 나를 얽어매던 온갖 두려움, 번뇌, 고민이 당분간 사라지면서 정지된다. 그 모든 것들은 괄호 속에 묶이게 되며 오직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순간만이 하나의 전체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절정경험은 사람마다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종교적인 체험으로 그것을 경험하며 누군가는 예술적인 방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과 섹스에서 그러한 경험을 만난다. 혹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LSD와 같은 마약도 그러한 경험을 일시적으로 선사해줄 수 있다. 이 중 어떠한 것들은 우리 삶을 파괴하면서 중독적으로 그 속에 빠져들게 하지만 건전한 방식의 절정경험은 삶을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절정경험을 자주 접하는 인간은 어떤 인간으로 성장해가는가? 이 점이 다소 의문스러우면서 놀랍다. 우선 사실에 대한 탁월한 지각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예민하게 세상을 꿰뚫어 볼 줄 알게 되며, 사물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또한, 모든 사람의 본성에 대한 높은 수용력을 가지게 된다. 나 자신의 여러 모습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다양한 성향들을 받아들일 줄 아는 관대하고 민주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감정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기쁨과 슬픔을 풍부하게 느끼게 된다. 나아가 삶에서 뛰어난 자발성과 창조성을 갖게 되며, 자기만의 일에 고도의 몰입력을 얻게 되고, 대인관계마저 향상된다고 한다.
이는 매슬로의 이야기를 일부만 무척 단순화한 것이어서 이 이야기만으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말하는 ‘절정경험’을 긍정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 다만 그 경험이 특정한 ‘순간들’로 나누어지고 그러한 일부 순간들에 집중되는 형태로의 ‘절정’보다는 더 지속하는 형태의, 말하자면 지속 가능한 ‘상향 경험’의 상태를 긍정하고 싶다. 이를테면 고도로 몰입하는 순간들이 인생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보다 강도는 약할지라도 그에 못지않은 어떤 상승적 상태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희열의 절정 상태에 이르는 콘서트보다는 매일 아침 피아노를 연주하는 삶, 방언적이고 고도로 흥분된 종교적 경험보다는 매일 고요히 기도하는 삶, 밤을 새워서 소설 한 편 완성하는 열광 상태보다는 매일 자기만의 글을 꾸준히 써나가는 삶, 한순간 절정을 이루는 섹스보다는 매일 서로를 보듬는 사랑의 일상이 일종의 ‘분화된’ 절정경험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한번이라도 꿈을 꾼 적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이 삶의 전부가 된다. 그 꿈이 드문 길몽보다는 삶 전체에 스며드는 은은한 백일몽이면 좋을 것 같다. 삶을 현실에 점철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삶이 꿈에 물들도록 지켜나가는 일을 잘해나가고 싶다. 꿈이 현실을 이길 것이다. 그러면 일상은 너무 과하지 않지만 무미건조하지도 않은 정도의 향기로운 꿈이 될 것이다. 삶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점차로 살아날 것이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