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던 피터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커져서 그의 베스트셀러인 『12가지 인생의 법칙』과 여러 가지 유튜브 영상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조던 피터슨은 글도 나쁘지 않지만 글보다는 말을 잘하는, 특히 비디오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뉴미디어 형 지식인이다.
개인적으로 피터슨의 주장이 한국 사회에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의 책을 추천하기는 조금 망설여진다. 책이 대중적인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년여 동안 사회에 던져온 여러 가지 시사점과 논거들보다 저서에서 다루고 있는 정보들은 다소 단편적이라 독자에게 오해받기 쉽다. 그래서 피터슨의 주장과 통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뷰 영상들을 추가로 봐야 한다. 이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우므로 굳이 이 글을 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메시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는 피터슨이 제시하는 12개의 법칙이 나온다. 모두 맥락적 이해가 필요한 명제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를 외울 필요는 없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간명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세상은 험난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스럽다.
- 인간이 이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 삶의 의미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것으로 완성된다.
- 3에 치중하면 불안해지고, 4만 하려고 하면 삶이 지루해진다. 둘 사이의 경계선을 찾아라.
- 개인으로서 독립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삶에 전투적으로 임하라.
읽어보면 별말은 없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설득력의 비결은 일종의 ‘인지상정’이다. 실제로 생을 살아본 생명체라면 자신이 생리학적·필연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데, 피터슨은 이 지점을 공략하고 공명시킨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라’처럼 뻔한 이름의 챕터들도 큰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이유이다.
조던 피터슨의 몇몇 정보들을 더해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독서를 잠시 멈춰갈 정도로 책을 자세히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피터슨에 대한 몇 가지 정보들을 더 알아낼 수 있다. 우선 그는 남녀 성차를 인정한다. 남녀는 많은 부분이 같지만 어떤 영역에는 사소한 격차가 있다는 정도의 태도다. 아울러 이 작은 격차가 상당히 극적인 차이를 불러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터슨과 연관된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거의 이 부분에서다. 지금은 남녀평등 시대니까. 성차가 존재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추가로 접할 수 있는 그의 주장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남녀의 성차는 존재한다.
- 계급과 서열화는 진화의 산물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안 없어진다.
- 우파는 기존의 서열 질서를 이용하는 재능이 있다.
- 좌파는 새로운 서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다.
- 좋은 사회를 위해서는 우파와 좌파 모두 필요하다.
- 기회의 평등은 사회와 개인에게 좋다. 그러나 결과적 평등은 최악의 선택이다.
조던 피터슨이 문제적 인물로 떠오르게 된 이유
이 글로 피터슨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가 왜 문제적 인물로 떠오르게 됐는지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평범한 교수였던 그는 2016년 캐나다에서 추진한 성 정체성 관련 법안인 ‘bill-c16’에 반대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bill-c16’은 트랜스젠더 호칭 대명사 사용과 관련된 법안이다. 어떤 사람이 트랜스젠더를 지칭할 때, 그 사람이 원하는 성별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터슨은 ‘국가가 개인의 언어 사용을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라는 이유를 들어 이 법안을 비판하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대번에 차별주의자 딱지가 붙었다. 대학 내 소수자 운동을 하는 구성원들도 그의 해고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들은 강의실부터 공터까지 쫓아다니면서 피터슨의 발언을 물리적으로 저지했다. 피터슨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유튜브 영상에 대한 반응이 폭발하면서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2년 만에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50만 명을 넘는 희귀한 지식인이 되어버렸다.
이런 맥락이 있어서인지 그는 페미니스트, ‘정치적 올바름’ 운동가들과 마찰이 잦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편견과 실제 사용되는 언어표현들을 금지하는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다. 이들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우파 혹은 대안 우파 지지자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조던 피터슨이 한국 사회에 왜 유효한가
그는 첨예한 토론을 많이 한다. 약간 엉뚱하지만, 개인적으로 피터슨이 한국 사회에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여기다. 그는 ‘20%나 40% 혹은 60% 정도 그러한 것’을 ‘100% 그러하다’고 눙치고 넘어가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을 잘한다. 어떤 주장을 할 때 논거의 엄밀함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공교롭게도 이런 논리가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들과의 대화에서다. 가령 어떤 페미니스트들이 ‘영국에서 남자는 시간당 평균임금이 여자보다 9% 높다. 많은 여성이 가부장제 구조 속에서 아직도 남성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그는 이렇게 대응한다.
피터슨은 성별이 남녀 임금 차이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임금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성별은 그중 하나다.
- 평균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9% 임금이 낮으면 나이, 직종, 관심사, 성격 등 18개 요소로 나눠서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
- 임금 차이에서 성별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중이 높지 않다.
- 임금 격차가 오직 성별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피터슨에 대한 열광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최신 영상에는 어김없이 한글 자막이 달린다. 그 밑에는 젊은 한국인 남성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한국에 출간되기 전, 관련 영상 조회 수가 100만이 넘었다. 그들은 피터슨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인터뷰어들과의 설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논리를 복기하면서 학습한다.
그의 토론방식은 사실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훈련이 안 된 사람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사고방식도 아니다. 현상을 구성하는 원인의 비율을 합리적으로 구분해서 인지하고 판단하는 논리적 기술을 많은 시민이 습득한다면 한국 공론장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기득권층을 타파하고, 재벌을 해체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환원주의적 논리에 능한 얼치기 좌파들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던 피터슨이라는, 잘 구성된 기이한 텍스트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 갈 길을 잃은 우파보다는, 막 가고 있는 좌파에게 더 유용할 것이다.
원문: 김동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