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 분야에 관심이 일면?
주요 논문 몇 편을 찾아 읽어 보면 된다. 이를 통해 대략적인 흐름과 맥을 짚을 수 있다.
Q.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
그 주제를 둘러싼 수많은 화두를 접하게 된다. 온갖 지식이 머릿속에 풍선처럼 둥둥 떠다닌다. 지식이 휘발되지 말라고 엑셀, 에버노트, 페이퍼스, 멘덜리 같은 애플리케이션에 나름 정리해 본다. 그러나 구슬이 한 줄에 꿰어지지는 않는다. 전문가라면 다양한 담론들을 내 그릇 안에 오롯이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나만의 ‘실라버스’ 작성이 상당히 유용하다. 실라버스가 곧 나만의 ‘그릇’이 된다. 내 방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상의 수업을 매력적으로 상정해 놓는다.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분야라면, 매주 어떤 주제를 다룰지, 어떤 자료들을 읽어 볼지 정하기가 막막하다.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다.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일은 매력적인 클래스를 상상하여 기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맥락화 하는 작업이다. 누구와 함께 학습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지, 토론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수업 시간 이외에도 그들 간에 상호 교류를 어떻게 유도할지, 학습 동기를 어떻게 고양할지를 상상한다.
이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 ‘가르치면서 배운다’라는 효과를 꽤 한다. 타인을 항상 의식하면서, 내가 깨닫게 된 바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항상 의식하게 만든다.
- 비록 가상적이긴 하나, 맥락화가 되어 있어서 동기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내가 쌓고 있는 지식이 특정 장면에서 활용되리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보다 실재적으로(tangible) 다가온다고나 할까.
매주 토의할 주제를 가능하면 빠르게 만든다.
혹자는 공부법 중에 하나로 ‘책 목차 암기’를 꼽는다. 그 분야의 전체 지도를 머리에 담아 넣은 후에, 지식을 적소에 적재하는 방식이다. 실라버스 학습법도 그와 같다. 우선 리뷰 논문, 메타 연구들을 찾는다. 이 자료들에는 그 분야 굵직한 담론이 담겨 있어, 골조를 세우는 데 유용하다. 총 15주를 상정하고, 주마다 다룰 주제를 정해 본다. 물론 처음부터 단번에 15주-15개 주제를 모두 선정할 수는 없다. 많아봤자, 8~10개 정도일까. 그 분야를 파고 들어갈수록 다뤄야 하는, 아니 다루고 싶은 주제가 늘어난다.
매주 수업에서 다룰 문헌·논문 선정을 반복(Iteration)해 나간다.
읽어야 할 자료·논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어떤 연구는 1800년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때로는 많은 양에 압도되어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마치 거대한 바다에 표류한 느낌. 이럴 때 실라버스 골자가 심리적으로 붙잡아 준다. 논문을 읽을 때마다, 이게 어떤 주제인지, 학문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계속 평가한다. 그리고 그 논문을 ‘가상의 클래스’에서 다룰지를 판단해 본다. 다루고 싶다면 왜? 다루고 싶지 않다면 왜?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가상의 클래스에서 그 논문을 가지고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자. 그 논문을 실라버스에 기재해 놓는다. 만일 해당 주차에 내가 꼽아둔 논문이 많다면, ‘이상형 월드컵 게임’처럼, 젖혀야 할 논문을 정해 본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이 논문은 젖혀 놓기에는 정말 아쉬운데, 그렇다고 남겨 놓자니 학습자들이 읽어야 할 자료가 너무 많고…’ 이럴 때는 ‘optional readings’로 남겨 놓는다.
항상 스토리텔링을 생각한다.
전문가는 날실을 잘 꿰어 비단을 만드는 사람이다. ‘중언부언, 뒤죽박죽, 횡설수설’ 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전문 지식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초심자들이 그 분야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매주 다루어야 할 주제 순서, 그리고 논문 순서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전문 지식을 쌓아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15주 차 실라버스 하나로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이때는 ‘기본 과정’과 ‘고급 과정’으로 구분하고, 기존 실라버스를 허물어 두 개로 만들어나간다.
원문: 김성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