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엔 순서가 있다는 점을 배운다. 먼 미래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는 것은 리더가 가지면 좋은 속성이긴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사실 점쟁이의 영역이고 개인의 논리 없는 가설일 뿐이다. 가설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다. 조직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미래를 현재로 성급히 당기려는 시도는 매우 큰 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신생 기업이 이런 타이밍 실패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는 점에서 중대한 주제다.
누적 투자금이나 현재의 매출이 미래의 성공까지 담보하지 않는다. 흔히 ‘뛸 준비가 되었을 때 뛰면 가장 느린 것’이며 ‘창업 기업은 스피드가 가장 중요한 만큼 재무적 리스크는 좀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다른 생각이다. 그렇게 성공한 유니콘 기업이 뉴스에 나오는 이유는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VC는 그런 회사를 찾겠지만 창업자는 인생을 걸었다. 되도록 더 승률이 높은 게임을 해야 한다.
사실 현실에서 여러 대표님을 만나보니 뉴스와 책에 안 나오는 수천 가지 방법의 각기 다른 성공방정식이 있으며, 가장 롱런하는 경우를 정리한 것이 곧 후술할 내용이다. 처음 창업했을 땐 속도가 맞는지 손익분기 맞추기가 맞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이젠 이야기할 수 있다. 존버하는 기업만이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으며, 투자금 말고 캐시 플로우가 손익분기를 넘어야만 장기적으로 성공한다.
스피드로 성공한 회사보다 손익분기 맞추고 성공한 회사가 훨씬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멍청한 대표가 똑똑해질 때까지 조직이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조직이 성장하지 못하는 99%의 이유는 임직원이 아니라 리더쉽의 문제기 때문이다. 채용 실패도 리더쉽의 문제다.
- 조직은 가능한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기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한 가지 핵심 역량을 빨리 찾은 뒤 그것에만 모든 인적·물리적 리소스를 투입해야 한다.
- 한 가지 일을 겨우 억지로 잘할 수 있게 되면 그걸 편하게 할 방법으로 매뉴얼화, 즉 누구나 언제든지 재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게 편해지지 않고 대표의 개인 역량에 매출을 계속 기대면 장사라고 칭하고, 신입사원도 3개월만에 할 방법으로 보편화하면 사업이 된다.
- 마침내 조직에 잉여시간이 생길 때 유사한 상품을 만든다든지 다른 마케팅 전략 등을 실험해야 한다(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 실험까지 전부 직원에게 위임이 되고, 타깃 시장에서의 마켓쉐어가 상당히 올라가서 정체하면 그 때 다른 시장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을 성경처럼 생각하던 나였지만 조직의 모든 역량을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주축(Pivot)보다 선결과제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책 한 권만 읽고 통달했다고 착각하는 게 매우 위험하다. 반대 의견이 되는 책도 많이 읽어서 조각을 맞추고 내 조직에 맞는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
우리 조직이 소수의 핵심 역량에 포커싱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손쉽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추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역량을 정의한 뒤 그 업무만 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인지 세면 된다. 후방(Back-office) 업무를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문제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1) 양질의 간식 소싱, 2) 인스타그램 마케팅이 핵심 역량이고 이걸로 돈을 번다. 그럼 소싱업무만 하는 사람과 인스타 마케팅하는 사람 숫자를 더해서 전체 임직원 대비 비율을 내면 된다. 30%가 넘으면 좋은데 CS, 물류, 개발팀까지 생각하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30% 이하라면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
과거엔 당장 할 수 있는 목표에 집중하고, 눈 앞에 있는 과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창업하고 3년 동안 중요한 레슨은 다 배웠다고 자만했지만 항상 똑같은 이유로 넘어졌던 부분이 바로 과욕이였다. 선결 과제를 마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운이 좋아 매출이 튀었든 관계없이 여전히 해결 안 된 상태로 남는다.
그리고 매출은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를 빠르게 찾을 것이다. 마치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를 널어놓지 않고 외출하면 돌아왔을 때 오히려 악취가 나는 것과 같다. 만약 매출이 떨어지면 선결 과제가 망가졌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그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늘 문제 파악이 오래 걸리지만.
IR 자료에 쓸만한 커다란 시장과 실제 당장 우리가 타깃해야 하는 시장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처음엔 우리도 온라인 HMR 시장을 잡겠다고 시작하다가 반조리 식품으로, 조리 시간 5분 이내 간식으로 줄어들고, 현재는 ‘인스타그램 헤비유저인 30대 맞벌이 여성이 구매하는 간식 쇼핑몰 1위’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그만큼 3년간 타깃이 꾸준히 좁아졌다. 이 또한 여전히 광범위하다고 생각하며, 간식 중에서도 어떤 서브 카테고리를 할지 더욱 명확해지려고 한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인스타그램이 잘됐는데, 이에 안주하지 않고 50여 개의 마케팅 채널을 늘어놓고 지속적인 테스트를 진행하는 실수를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안주하려면 월 5억 광고비 쓰고 ROAS가 3배 아래로 내려온다면 고려해볼 만한 수준인 것 같다. 그게 아닌 이상 아직 인스타 맛도 못 본 것이다. 지금은 신규 제휴와 마케팅 실험 다 접고 인스타만 판다.
1명의 리소스가 100이라고 할 때 한 가지 업무를 시키면 80~100%를 발휘할 수 있지만 업무의 종류가 늘어나면 문맥 전환(Context switching) 때문에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경험상 1명의 직원에게 2가지 이상의 주역을 맡기는 것은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큰 회사들이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만큼 분업하는 이유가 명확하다.
R&R이 명확해질수록 책임이 분산되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도 해결가능한 문제라는 걸 최근 깨달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일이 잘 되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같은 일 하는 사람을 많이 채용해야 하지만, 대부분 리더는 유사한 다른 일 하는 사람을 채용한다. 그렇게 하고 왜 사람이 늘었는데 성과가 안 늘까 고민한다.
사실 브랜드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가 무얼 하는 애들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고객의 머리 속에 비교적 오래 남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정확하다’는 단어의 동의어는 ‘구체적이다’가 될 수 있다. 간혹 브랜딩에 오해가 있는 경우 성공한 회사의 광고 카피만 보고 브랜드가 모호한 것을 상징한다거나 예술적인 감각을 의미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 이는 브랜드의 실체가 아닌 심볼에 집중한 것이다. 사실 브랜드가 고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구체적이며, 비즈니스에는 논리적 결여를 허용할 여백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업하면서 뒤로 갈수록 공부할게 정말 많고 직원이 늘어날 수록 겸손해지는 것 같다. 옛날에 지도교수님이 알려주신 가장 중요한 공부법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사업성 본질을 캐치하고 액션플랜까지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 해결 안 된 액션플랜을 사냥개처럼 물고 안 놓는 기질도 필요하다.
원문: 임승진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