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봉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시끄럽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해석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을 한국 경제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로 재편하고자 하는 재무부 고위 관료의 음모론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리 영화적 장치라고 하더라도 이건 엉터리다.
당시 외환위기는 한국의 경제와 금융 시스템 상 한 번은 겪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였는데, 그 이유로는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이 1970년대 이후 계속 지연되었으며, 금융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금융시장은 폐쇄적이었고, 정부는 인위적 저환율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데다, 결정적으로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 문제가 심각했다. 이 글에서는 마지막 문제부터 언급하겠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문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일국의 금융 시스템의 후진성이나 단기 유동성보다는 오히려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의 불균형, 이른바 글로벌 임밸런스의 문제에서 기인했다. 글로벌 임밸런스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유로달러와 유로본드 시장의 등장 이후 세계 금융시장을 밀접하게 연결되어 갔다. 유로달러 시장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1980년대 레귤레이션 Q(Regulation Q)의 폐지를 시작으로 금융시장의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갔는데, 이는 안전자산인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국제 유동자금의 투자를 더욱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록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런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와 국채 덕분에 외국의 막대한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런 투자는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기록한 미국, 독일,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이 그 주체가 되었다. 이와 같은 무역에 있어 불균형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것으로는 일본이 이 체제 하에서 대규모 외화자산을 축적한 것을 들 수 있다.
일본으로의 외화자산의 유입과 그로 인한 과도한 통화의 공급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형성되는 원인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 자산을 다량 보유한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엔화로 표시된 부채에 비해 달러화로 표시된 자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일본 금융기관들의 자본을 축소시키고 재무구조를 약화했다.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 이후 이런 금융기관의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되면서 결국 국내 대출을 회수하고 해외로 자금을 유출했으며, 이것이 신흥국에 다량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즉 무역의 불균형이 금융시장의 불균형과 국제 유동성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 국제 금융 시장이 통합되고 유동성 공급은 크게 증가한 반면,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투자의 대상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구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은 자본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에너지, 생명공학 등 새로운 산업은 아직 거대 자본을 끌어들일 정도로 도약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당시 상황에서 보면 정보기술은 더 이상 자본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였다.
1990년대 이후 실질적인 투자의 출구가 독일의 통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인한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개방 그리고 아시아의 성장으로 나타났지만 세계에 유통되는 거대 유동성을 다 흡수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글로벌 부동자금은 단기 차익을 노리고 개발도상국 외환시장에 투자되거나 혹은 안정적인 장기 수익을 목적으로 미국 국채에 투자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와 같은 국제 금융 시스템적 문제는 한국을 필두로 한 개발도상국에도 나타났는데, 수출 위주 정책을 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는 수출로 벌어들인 외환을 투자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에 안전한 미국 국채에 투자하거나 혹은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보유고로 비축하는 정도에 그쳤다. 즉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투자하고 운용할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은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운용 가능한 외환의 규모 정도다.
이런 대외적 상황에 더해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들의 경우 금융시장의 규모가 작았고, 정보가 폐쇄적이었으며, 거래가 투명하지 못하고,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움직이는 막대한 규모의 외환 투기 세력을 유인하는 요소로 나타났고, 국가 경제 규모가 이런 외환 투기를 이길 정도가 되지 못해 결국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해법은 무엇이었나
외환위기 당시 해법은 크게 두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고 투명성을 제고하며 시장을 개방하는 것과 그 반대로 시장을 더욱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 만약 한국이 어느 정도 내수가 뒷받침이 되고, 수출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면 후자를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쉽게도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전형적인 소국개방경제에 빈약한 내수시장을 가진 국가로 수출이 없으면 국가 경제의 운영 자체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경제 운용을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여 일반 기업과 금융 기업, 그리고 금융 시장을 구조조정 하는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 과정이 고통스러웠음을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지속되는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이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정책은 옳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과 그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여러 문제가 물론 존재하지만, 시간 관계상 이건 나중에.
원문: 정재웅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