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카카오내비가 집계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찾은 맛집 분야 1위. 모두 ‘이성당’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끝없이 이어진 이성당의 줄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성당은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까지 잘 나가게 됐을까?
외부에서 보이는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이성당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1945년 개점)이니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성당은 1920년에 일본인이 설립한 ‘이즈모야 제과점’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1945년 이석우 씨가 인수해 이름을 이성당으로 바꾸고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다. 전신까지 따지자면 거의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빵집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말이 허황된 말은 아니다. 물론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된 것만으로 이성당의 성공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순천의 화월당도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장사를 해왔지만 이성당만큼 유명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브랜딩 하나만으로 이성당이 지금만큼 성장했다고 하기엔 뭔가 빠진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성당의 주력 제품인 단팥빵의 제품력이 독보적이어서는 아닐까? 이성당 단팥빵은 만두피처럼 겉이 얇고 속은 아낌없이 가득 채운 팥소로 유명하다. 또 쌀가루로 반죽해서 식감이 일반 빵보다 훨씬 찰지다. 게다가 만들어진 이후 품질관리도 엄격하다. ‘먹는장사는 맛이 최우선’이라는 철칙 아래 하루라도 지난 빵은 맛이 변질할 수 있기에 절대 팔지 않는다.
하지만 단팥빵은 익숙한 만큼 평범하다. 김현주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우리 집 빵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 전국 어느 곳보다 이성당의 빵이 분명 혜자롭고 가성비 갑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심당의 튀김 소보로처럼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이한 빵은 아니다. 그러니 단팥빵만으로 지금만큼 성장했다기엔 여전히 뭔가 아쉽다.
그렇다면 이성당이 전국구로 유명해진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으로 추적해보면 어떨까. 이성당이 주목을 받은 시점을 구글 트렌드를 이용해서 찾아봤다. 이성당 검색어 추이를 살펴보면 이성당은 2013년 1월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이성당이 급격한 주목을 받은 이유는 KBS1 기획 특집이었던 〈백년의 가게〉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성당도 다 방송 타서 유명해진 겁니다. 방송빨이 최고예요.’라고 결론을 낼 거였다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분명 2013년 방송은 이성당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확고하게 전국구 빵집으로 이름을 날린 직접적인 계기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당은 방송 출연 전에도 유명했고 방송은 그 유명세에 기름을 부은 것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성당이 방송에 나왔다’는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이성당이 매력적인 방송 아이템이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산 토박이가 바라본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군산 토박이에게 이성당은 단순히 오래된 빵집 그 이상이다. 군산 사람치고 이성당에서 미팅 안 해본 사람이 없고 생일 때 이성당 케이크 안 먹은 사람 없을 정도로 군산 사람의 생활과 밀접했다. 군산 시민은 직간접적으로 이성당의 역사와 함께한 셈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이성당의 과거 역사를 따라가면 외부에서 보는 피상적인 이유가 아닌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왜 이성당이 유명할까요?’라고 군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공통적으로 일명 ‘이성당 할머니’ 오남례 사장님을 언급했다. 알고 보니 지금 이성당 사장님이신 김현주 대표님은 오남례 사장님의 며느리이시고 1960년대부터 2003년까지는 오남례 사장님이 이성당을 경영하셨다.
군산 바닥에서 ‘이성당 할머니’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던 그 시절, 이성당 근처는 그 시절에도 군산 최고 상권으로 통했다. 당연히 노점 하는 사람들은 광주리를 이고 지고 이성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오남례 사장님은 이성당 앞에서 노점 하는 사람들을 귀찮아하며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배고프니 출출할 때 드시라고 빵을 나눠줬다고 했다. 그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았는지 지금도 이성당 앞에 가면 광주리를 늘어놓은 채 채소나 과일을 파시는 할머니들을 여전히 볼 수 있다.
또, 이성당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고 종교단체 등에 빵을 기부해온 것도 유명하다. ‘이성당이 크게 된 것은 지역 소비자들의 덕’이라는 뜻을 이어받은 김현주 사장님은 빵을 기부할 때도 팔고 남는 빵을 기부하지 않는다. ‘기부도 손님이다’라는 생각으로 항상 새 빵을 따로 만들어 기부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성당의 터줏대감이었던 후한 인심의 ‘이성당 할머니’ 오남례 사장님이 2010년 작고하실 때 군산 사람들이 함께 슬퍼했다고 하는 말들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보이는 이유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
명심보감에는 ‘소부유근, 대부유천(小富由勤, 大富由天)’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부자는 근면한 것만으로도 될 수 있지만, 큰 부자가 되는 일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이 말은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모든 건 운이다’라는 말이 아니다. 유가에서는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 했다.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렸다’는 것은 하느님 같은 절대자가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民心)이 감동한다는 것이 아닐까.
오남례 할머니의 마음을 지켜본 군산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군산 여행 갈 건데 어디 가면 돼?’라고 물어봤을 때, ‘이성당이라는 빵집은 꼭 가 봐’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더해지고 더해져 이성당은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 될 수 있었고 그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오롯이 지켜온 것이 아닐까. 그 결과가 방송에 방영될만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착하기만 하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나는 이 글이 ‘착하게만 장사하면 다 이성당처럼 백 년 가게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이성당은 빵집으로서 갖춰야 할 본원적인 경쟁력을 아주 탄탄히 갖추었다. 분명 이성당이 지금처럼 잘 나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빵집이기도 하고, 이성당의 단팥빵이 훌륭해서기도 하고, 미디어를 통해 조명을 받을 수 있어서기도 하다.
오랜 세월 이성당이 쏟은 오래된 빵집이 되기 위한 노력, 우리나라에서 가장 혜자로운 단팥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가볍게 넘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이런 보이는 이유 뒤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뿌리를 단단히 하는 그 이유를 잊지 말자. 그 무엇보다도 이성당이 오랜 세월 군산에서 장사를 하며 시민의 마음을 감동시켰기에 이성당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성당이 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남례 사장님이 보여주셨던 그 따뜻한 마음과 그 마음을 알아준 군산 시민의 화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이런 가게들은 제발 꼭 더욱 더 잘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 우리나라에 그런 가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제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이성당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빵집으로서 군산을 넘어 대한민국 전국에서도 그 따뜻한 온기를 나눠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