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진짜 시간이 너무 없는 거 있지.
취직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 야근에 주말 근무에 온통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그는 자리에 앉아 각종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하나랑 갈릭 스테이크, 고르곤졸라 피자랑 토마토 리조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에 놀라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짤막한 대답이 돌아온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쓸 시간도 없는데.” 열심히 일해 소득을 올려도 쓸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뭔가 씁쓸했다.
흔히 ‘소득’과 ‘시간’은 반비례 관계처럼 여겨진다. 일하고 돈을 버는데 좀처럼 쓸 시간이 없거나, 시간은 많이 남는데 소득이 없거나 보통 두 부류다. 대개 직장인과 자영업자는 앞에 속하고, 학생과 취준생, 그리고 무직자들은 뒤에 속한다. 사람들은 일하고 돈을 벌면서 살아간다.
문득 우리는 일하면서 ‘소득’이 아니라 ‘시간’을 저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것을 구매하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은퇴 후 행복한 삶을 누리려고 그 모든 ‘시간’을 현재의 ‘소득’이란 형태로 저장해두는 게 아닐까? 삶의 질을 좌우할 ‘미래의 시간’을 현재 소득으로 저축해두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시간 불평등’을 초래하다
한국은 한 해 2069시간, OECD에서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다. OECD 평균보다는 300여 시간이나 더 길다. 소득으로 시간을 저축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인은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하는 만큼, 많은 소득을 저축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질임금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고, 가계가처분소득도 비슷한 경제 규모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왜 이런 시간-소득 관계에 벗어나는 수치가 나왔을까? 소득과 시간이 불공평하게 배분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엄청난 소득을 벌면서도 시간이 남아돌고, 누구는 소득과 시간 모두에 쫓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크게 자본과 노동, 기업과 가계 사이에서 일어난다. 1997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구조조정, 노사관계 변화, 대기업 중심 수출 경제가 나타났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급락했고 자본소득분배율은 증가해 불평등이 악화했다. 규제 완화와 감세로 기업은 이윤 증가로 순 저축을 크게 늘렸지만, 가계에는 과실이 돌아가지 않았다.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기업소득 비율은 1995년 18%에서 2014년 25%로 크게 오른 반면, 가계소득은 69%에서 61%로 줄어들었다. 가계들은 ‘빚’을 내서 소비하기 시작했고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그 결과 한국은 지금 소비, 투자, 성장이 정체된 총체적 수요 정체를 맞았다.
소득 불평등은 그만큼의 시간 불평등을 초래했다. 임금이 낮을수록 오랜 시간 일해야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현재 임금노동자 셋 중 하나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다섯 중 하나는 저임금노동자다. OECD 등에서 나온 많은 보고서가 한국 경제는 ‘장시간 노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저임금-저생산 구조’에 기대어 있다고 얘기한다. 지난해에만 39명 집배원이 과로사했다. 이들은 보통사람보다 한 해 500시간 가까이 더 일했다.
어떤 이들이 타인에게 돈을 빌려준 대가로, 고수익 투자로, 임금을 낮춰 얻은 이윤으로 엄청난 소득을 올리는 동안, 누군가는 소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일한다. 그리고 각종 산재와 위험의 외주화, 가정과 결혼 붕괴 위험에 처한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올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첫발을 뗐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의 해법이라 할 만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시간당 임금은 1.3% 오르고 고용증대 효과로 16만 명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시간당 생산성은 늘어나고, 노동의 질적 개선으로 또 다른 혁신과 투자가 일어날 수 있다. 또 노동자에게 시간 여유가 생겨 소비와 문화 여가가 늘고 내수가 진작될 수 있으니 기대할 만하다.
시간은 소득과 다름없다. 가족과 행복을 누리고 함께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생산적인 시간, 꿈꾸던 미래의 소득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반대하는 쪽도 있다. 그들은 주 52시간제의 획일적 적용으로 도리어 저소득층이 일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자동화나 외부 아웃소싱으로 실업이 늘고, 가계소득이 줄 거라 비판한다.
물론 제도 개선과 현장 보완은 필요하다. 근로장려세제나 인센티브 등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하고,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접근해야 하며, 노동 감독과 실업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소득, 노동, 복지, 조세 각 분야의 촘촘한 정책이 동반해야 주 52시간 근무제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멈추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소득도 시간도 모두 잃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친구가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하며 소득을 올리는 건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위해서다. 지금은 힘들지만 미래의 시간을 저축하고 있다는 생각, 점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지금 소득 향상에 연연하게 한다. 만약 그 미래가 자신이 꿈꾸던 미래가 아니며, 아무리 소득을 늘려도 ‘미래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해질 뿐이다. 그런 현실의 사람들은 소득과 시간 모두를 잃은 채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얼핏 소득과 시간은 반비례 관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고민해 보면 상향 비례 관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득과 시간 방정식이 필요하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조현아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