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매거진은 <아임 낫 파인> 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에게 없는 3가지
우울증의 신체적 증상은 다양하다. 집중력,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체중의 변화가 생긴다. 또 만성피로감, 불면증, 과수면증, 두통, 소화불량, 목과 어깨결림, 가슴 답답함 등의 증세를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의 양상은 다양하므로 반드시 신체 증상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잠도 잘 자는데… 내가 우울증이 맞나? 이런 걸로 병원에 가야 하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신체적인 증상에 앞서 내가 어떤 생각을 자동적으로, 수시로 하고 있나를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스트레스, 연인과의 이별 등 다양한 사건을 겪는다. 그러나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자동적 사고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패턴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2주 이상 지속되면 어떤 좋은 일이나 좋은 신호가 생겨도 그 생각의 패턴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우울증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잃기 쉽다. 힘, 가치, 희망이 그것이다.
-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무력감, Helplessness)
- 자신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고 (무가치함, Worthlessness)
-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무망감, Hopelessness) 생각한다.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한 인터뷰이와의 긴 대화를 통해 비슷한 패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와도 잘 아는 분인데, 평소 업무적 능력과 성과가 모두 좋은 분이었다. 그래서 우울증 인터뷰이를 찾을 때 연락처를 남긴 것이 몹시 의아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런 인과관계를 떠나서 이따금 우울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울이란 객관적인 성과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무력감, Helplessness
무기력한 기분은 늘 들어요. 집에 가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잠적하고 싶다, 카톡을 보고 싶지 않다… 그냥 다 귀찮은 것 같아요. 다 귀찮고. 가장 무서운 건 모든 것에 자극도 못받고 가치도 못 느끼는 거예요. 뭘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지는 거죠. 보통은 무언가를 하는 동기를 외부에서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외부에서 아무런 동력을 못 느끼고, 본능적인 욕구도 나한테 아무런 가치나 자극이 되지 않으니까… 나는 어디서부터 내 삶의 동력을 찾아갈 것인가…
무력한 기분은 신체적인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한 경우 계단을 오르기도 벅차고,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올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겨우 샤워를 마쳐도 다시 자고 싶어 진다.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 영양제를 챙겨먹었지만, 알고 보니 우울증이 원인이었다는 인터뷰이도 있었다.
무기력과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실험으로 ‘학습된 무기력’ 이 있다. 첫 번째 실험에서 A그룹의 개들에게는 누르면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주었고, B그룹의 개들에게는 피할 방법을 주지 않았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아주 낮은 울타리만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했다.
A그룹의 개들은 모두 울타리를 넘어 피한 반면 B그룹의 개들은 울타리를 넘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쉽게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을 보인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혐오적 소음을 사용한 인간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오랜 시간 피할 수 없는 자극에 노출되는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욕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힘이 생기지 않는 무력감은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무력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무가치함, Worthlessness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사실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니까. 그런데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 아무리 해도 항상 더 잘하는 사람이 있고, 더 잘사는 사람이 있고. 세상은 날 때부터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 싫죠. 대부분 그런 감정은 다른 타인에서부터 오는 거 같아요. 비교 대상으로부터.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이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요. 내가 더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내가 가치가 없다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내가 할 줄 아는 건 뭔지, 쓸모가 없네. 난 쓰레기야.”라고 가혹하게 군다. 나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자책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도 있다. ‘멍청이…’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란다. 왜 이거밖에 안 되지. 그때 왜 그렇게 말을 했지, 난 그거밖에 안 되나보다… 이런 생각 안에 갇히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
무망감, Hopelessness
절망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힘들어요. 내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계속 이 정도 수준으로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한 불안감…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몰라 거기서부터 오는 부담감이 크고 무력함을 많이 느꼈죠. 발버둥 치면 삶이 나아질까 싶고. 0에서 조금씩 쌓아가는 것 보다,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드는 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망감이란 희망이 없는 감정, 즉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다. 무망감의 척도를 살펴보는 ‘벡Beck 무망감 척도’는 미래에 대한 의욕이 있는가,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이라 믿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가를 측정한다. 심한 무망감은 자살위험으로 이어진다. 내일에 대한 희망, 나아짐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반드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위와 같은 감정을 조사하고, 우울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은 ‘참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데서’ 오는 게 아닐까. 물론 우울증의 원인과 발생하는 사건은 다양하다. 허나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너무 열심히 사는 혹은 살았던 사람이었다. 뒤집어 생각하면 가치 있는, 그럴만한 힘을 가진, 미래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이미 충분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충만한 존재가 되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감정이 계속된다면 우울증의 영향임을 깨닫고 꼭 전문가를 찾기를 바란다. 당신 의지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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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온 팀 강령 님의 우울증 이야기
원문 : 찌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