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책 『아임 낫 파인』의 일부입니다. 전문이 담긴 책은 스토리 펀딩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실은 책 『아임 낫 파인』의 작가는 따로 있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책을 집필해 줄 저자를 찾으면서 작년 독립출판물 중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의 저자 김현경 님을 만났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르포집이다.
사실 『아임 낫 파인』도 유사한 기획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이 책이야!’ 하는 마음으로 현경 님을 찾아갔다. 현경 님 또한 흔쾌히 함께 해주시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 구상했다. 우울증은 두려운 질병이 아니고,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시선이 좋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프로젝트 중 현경 님의 우울증 상태가 현격하게 안 좋아졌다. 그러다 별안간 현경 님이 말했다.
저, 폐쇄 병동에 가요.
티는 내지 못했지만, 나는 너무 놀랐다. 대체 얼마나 안 좋은 걸까? 이제 앞으로 현경 님을 못 보는 걸까?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현경 님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래서 어찌어찌 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2주 정도 지나자 현경 님이 돌아왔다. 다시 힘차게 일을 하면서. 게다가 병동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한 권 뚝딱 완성해 오셨다. 그래서 현경 님과 폐쇄 병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또한 입원 경험이 있는 현경 님의 지인 민지 님도 함께했다.
폐쇄 병동에 가다
현경 님은 양극성장애, 즉 조울증이다. 조울증은 기분이 올라갔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잠도 오지 않고, 일의 효율도 좋다. 하지만 우울이 찾아오면 무기력함이 심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경 님은 이 우울의 상태가 싫어서 술에 의존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니 자꾸 자살 충동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이 깼을 때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정신과 치료를 오래 받았지만 성인 내담자에게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경우는 잘 없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다.
병원에서는 자살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가거나 폐쇄 병동에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현경 님은 폐쇄 병동을 택했다. 하지만 서울의 웬만한 대학병원에 다 전화를 돌려도 자리가 없다고 했다. 겨우 구해진 병원에 다음 날 입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큰 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었다.
민지 님은 몇 년 전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 그녀의 자살은 오랜 계획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살을 주체적인 죽음이라 정의했고, 꼭 스물다섯 살 전에 죽겠다는 오랜 다짐이 있었다. 그리고 스물세 살에 첫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살은 실패했고, 그녀는 응급실에서 위세척 후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 의사 선생님은 그녀가 돌아가면 또다시 자살 시도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가족들에게 입원을 권유했다. 그래서 그 날 바로 폐쇄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폐쇄 병동이라고 하면 환자들이 위험해서 가둬놓는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위험해서’ 사회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폐쇄 병동’이라는 말이 공식 명칭이기는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떠올리는 열악한 병동 같은 것은 아니라고 그녀들은 말했다. 오히려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묘사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다른 병동처럼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일 뿐인데, 다만 출입이 좀 더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외부 자극이 차단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보호병동’으로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
가장 큰 특징은 자살의 모든 위험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샤워기도 흔히 보는 호스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은 창살 처리가 되어있다.
반입 물품도 제한된다. 수면용 안대도 끈을 이용해 목을 맬 수 있기 때문에 반입이 불가하고, 유리로 된 화장품 병도 자해를 할 수 있으니 불가하다. 색조 화장도 할 수 없다. 스마트폰도 외부자극이 크기 때문에 안 된다. 전화는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스테이션 앞의 공중전화를 이용하는데, 전화 카드로도 자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선이 닿는 곳에서 전화만 하고 돌려줘야 한다. 연락을 취하는 것이나 면회도 가족들에게만 제한된다. 거실에 유일하게 자리한 TV에서는 계속 뉴스가 흘러나왔다. 일상은 규칙적으로 흘러갔고, 그만큼 무료했다.
매끼 정시에 밥이 나와요. 밥 먹고 약 먹죠. 준비된 활동은 흥미가 없고 너무 심심해서 병동 내를 계속 걸어다녀요. 책은 책장에 많이 꽂혀있기 때문에 책을 보거나 TV를 봐요. 그러다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하루 한 번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 선생님이랑 상담도 하고, 검사도 해요. 저녁을 먹으면 저녁 약을 먹는데, 약을 먹을 때에도 생년월일 말하고 이름 말하고 입을 벌려서 삼킨 것까지 확인해야 잠을 자러 갈 수 있어요.
제 약에는 진정제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진짜 잠이 안 올 것 같다’고 생각되는 날에도 금방 잠이 오더라고요. 잘 자고 일어나는 게 정신건강에 좋대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수면을 잘 이룰 수 있게끔 도와주는 약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강제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술·담배야 당연히 못 한다. 담배를 못 피우니 정원에 나가 민트 냄새를 맡으며 참았다.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못 먹으니 힘들었다. 대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꾸준히 약을 먹으니 건강이 좋아지고 우울증도 호전되었다.
좋았던 점으로는 현경 님과 민지 님 모두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어르신들이 많기는 하지만 누워서 휴식을 취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려도 “쟤 이상한 애다”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없었다. 예쁘게 꾸밀 필요도,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 좋았다.
폐쇄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커피는 잠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루 한 번, 오전 10시 반에만 마실 수 있다. 현경 님이 있던 병동에서는 그 커피타임에 함께 모여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는 자살 시도로, 누구는 우울증으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해서 들어왔다고도 했다. 어떻게 자살을 시도했는가, 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화제가 되었다.
다들 ‘이 사람은 왜 여기 들어왔지?’ 싶은 사람들뿐이었다. 밝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현경 님이나 민지 님 같은. 혹시 다른 사람을 해할 수도 있는 위험한 사람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상태 안 좋은 사람들도 보였어요. 하루종일 창 밖으로 보면서 영어로 소리치는 아주머니도 있었어요. “New York! Paris! Tokyo! Anywhere! Everywhere! GO AWAY!” 막 이렇게 손가락질하면서 계속 외치니까 너무 무섭잖아요. 나를 해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제가 음악치료를 받으러 피아노가 설치된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먼저 와서 피아노를 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절 보더니 무서워하면서 슬금슬금 피하는 거예요.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나는 저 사람을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은 날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병동을 통틀어 나만큼 제정신이고 이성적인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속된 말로 ‘단단히 미친’ 것 같은 아주머니가 저를 피하니까 모든 편견이 싹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민지)
정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1인실에 격리되어 있거나, 경호원 혹은 간호사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현경 님도 비슷한 경험담을 얘기했다.
덩치가 큰 남자분이 들어오셨는데, 전 그분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피해 다녔어요. 그런데 하루는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스테이션에 갔어요. 그런데 그 남자분이 마침 거기 서서 보호사에게 말을 걸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보호사라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어요. 덩치 큰 남자분이 다가오니까.
그런데 그 분이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시더니, 보호사님 손에 사탕을 이렇게 주시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착하구나. 나만 화를 죽이고 잘 지내면 되겠구나, 라고. (현경)
아저씨들과는 배드민턴을 쳤고, 아주머니들과는 간식을 나누어 먹었고, 치매 할머니는 잘 챙겨드렸다. 또래와는 더 반갑게 붙어 버렸다. 하지만 환자들끼리는 나가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현경 님은 거기서 사귄 언니의 연락처를 몰래 속옷에 넣어 오기도 했다.
아,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당연하고도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다. 엊그제만 해도 죽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살갑게 챙겨주고 아껴줬다. 한편 민지 님은 병동에서 가장 어렸던 만큼 많은 분들이 예뻐해 주셨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계속 자기가 임신했다고 말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그분이 계속 ‘호희’라는 여자아이를 찾았어요. ‘호희야, 호희야’ 하시며 저에게 다가오시더라고요. 제가 병동에서 가장 어린 여자였기 때문에 그분에게 호희로 보였나 봐요. 그때는 정말 병원에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분의 호희가 되어 드리기로 했죠. “호희야” 하면 “네”하고 대답해 드렸어요.
그런데 하루는 밤에 자기 전에 와서 “호희야, 창밖을 봐. 너무 예쁘지? 여기서 사는 게 너무 힘들지? 너 이제 간다고 말해, 가도 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드라마에서 볼 법한 그런 문장들을 말해 주는데, 그분이 정말 저한테 나가도 된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그분이 하는 문장들이 너무 예뻐서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다신 들어오고 싶지 않아요
병동의 생활은 어떤 자극도 없어서 건강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이 무료했다. 현경 님은 술을 안 먹는 생활이 지속되자 상태가 좋아졌지만, 우울이 없이 조증만 계속되니 잠을 거의 못 잤다. 퇴원해서 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각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환자들 중에는 어둡다면서 불을 계속 켜거나 혼잣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없던 수면 장애가 생길 것 같다며 주치의를 졸랐다. 이제는 괜찮고, 술도 안 마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행동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통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한 달 정도 치료 과정을 온전히 겪은 뒤, 2박 3일간의 외출을 통해 나가서 뭘 할지 계획하며 천천히 적응해 간다고 했다. 현경 님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열흘 정도 있다가 자발적으로 빠르게 나온 경우에 속했다. 다행히 현재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민지 님은 상황이 좀 달랐다. 본인 의지로 들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매일 아버지게 전화해서 꺼내 달라고 했다.
정말 자살 시도를 안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때는 정말 거짓말이었어요. 그래서 퇴원하게 됐죠.
앞서 말했듯이 민지 님은 스물다섯이 되는 2017년 12월 31일이 오기 전 자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래서 다시 나가서 자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병동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2018년이다. 민지 님이 말한 시간은 이미 지났다. 민지 님은 우울증이 잘 치료됐다고 했다. 병동을 나오고도 크게 의지가 없어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다, 안 먹다 반복했다고 했다. 정신과 약은 안 먹으면 두통이 심해서 동네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만 2년 6개월째 계속 약을 먹고 있다. 이제는 ‘이러다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나중에 늙어서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가야 한다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민지 님은 정색을 했다.
아뇨, 절대 안 가요. 너무 답답해요. 너무 제약적이고요. 안전한데, 과하게 안전하거든요.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제약적이기도 해요.
처음에 병원을 나설 땐 ‘또 자살에 실패하면 다시 와야 하니까, 실패 없이 죽어버려야겠다’라고 다짐할 정도였다고 했다. 현경 님도 절대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만약 또 너무 죽고 싶어지거나 알콜 중독이 된다면 가야 하겠죠. 하지만 원해서 맨정신에 가고 싶지는 않아요.
“폐쇄 병동에 가면 묶여 있는 것 아냐?”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편견이 컸음을 확인하게 됐다. 폐쇄 병동이라는 어감 때문일까, 가장 많은 오해와 왜곡 속에 있는 주제였다. 우울한 사람들이 격리되어 있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꽁꽁 언 바다가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퇴원 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봤거든요. 남자 주인공이 실연당한 후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게 됐어요. 그다음 장면이 정신병원 침대 위에 묶여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인 거예요. 그걸 보면서 미디어에서 너무 잘못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경 님은 우울에 대해서 오래 말해왔기 때문에, 입원 후 SNS를 통해 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히려 그렇게 밝힐 수 있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정신과적으로 중환자실에 다녀온 정도로 비유했다. 다른 병에 비해서 더 심각하거나 감출 일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고, 다녀왔을 때도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현경 님이 대기업에 다녔다면, 아니, 그냥 회사원이기만 했어도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는 말은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제가 입원할 당시에도 병원마다 환자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골라 간 게 아니고, 남는 곳으로 간 거였어요. 날씨가 좋아서 자살 시도가 늘어났고, 그렇게 들어온 분들이 많았어요. 정말로 환자들이 많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왔다 갔다 했을 텐데…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옆에 있는) 이분 빼고. 그래서 정신질환이 얼마나 중요하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지 조금 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울증, 이제는 이야기하자
사실 이렇게 기꺼이 나서주는 두 사람이 고마웠다. 영상으로 얼굴이 공개되면 혹여 안 좋은 평가가 뒤따르지 않을까, 나 혼자 괜한 노파심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만큼은 우울에 대해서 가장 공감 가는 언어로 건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민지 님은 17세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녔다고 했다. 약 10년째다. 약물치료 효과가 정말 좋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추천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다양한 주제로 SNS에 글을 올리고 있다. 사실 민지 님과 현경 님은 인스타그램 친구였는데, 현경 님이 병원 추천을 부탁드렸을 때 민지 님이 DM으로 다니던 병원을 추천했다고 한다.
현경 님이 그 병원에 찾아갔는데, 옆에 앉은 할아버지와 밝게 말을 섞고 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다가와 “옆에 앉아도 돼요?”라고 발랄하게 물어봤다. ‘아, 여기가 정신과라 미친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현경 님이시죠?”라고 민지 님이 말을 걸었다고 했다.
제 남친이 있는 그대로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거든요. 나 뚱뚱해지지 않았어요? 라고 말을 하면 안 쪘다는 말 대신 ‘예뻐요’라고 대답해줘요. 찌든 안 찌든 예쁘다는 의미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분은 어떤 조건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더라고요.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정신과적 질환이 있든 없든 나는 그냥 나야, 라고 생각하면 모든 일이 너무 쉽더라고요. 정신병동도 그냥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현경 님도 우울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쉽게 만들기 위한 사회를 만드는 나름의 운동이라고 했다. 병동에서 있던 일을 엮은 것도 그런 취지였다. 우울을 당당하게 말하자면서, 정작 자신은 숨어서 얘기하면 신뢰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이들의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가 닿기를 바란다. 누군가 가지고 있던 정신과 병동에 대한 오해와 인식이 조금 더 변화한다면, 그게 현경 님, 민지 님과 우리가 바라던 바다.
※ 해당 대담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종합병원의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시외에 있는 장기 요양병원의 경우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격리를 목적으로 장기입원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 챕터에서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다루고자 했습니다.
원문: 찌라의 브런치
※ 본문은 책 『아임 낫 파인』의 일부입니다. 전문이 담긴 책은 스토리 펀딩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