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법밖에 몰랐던, 우울
사업이 망하면 빨간딱지가 붙는 줄 알았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을 시작한 지 3~4년이 흘렀다. 매월 나가는 비용은 따박따박 똑같은데, 매출은 요원한 날들이 이어졌다. 모바일 앱을 개발하여 계속 기능을 업데이트하며 몇 년을 보냈지만,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큰 투자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오랜 시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나는 지쳤다.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이 덮쳤다. 하루 4-5시간의 수면 시간 외엔 종일 일만 하던 나는 사무실 근처에 작은 원룸을 구했었는데, 침대를 벗어나 열 발자국도 갈 곳이 없었던 그 방이 블랙홀 같았다.
자정이 넘어 퇴근하고 겨우 몸을 누이면 끝없는 자책감과 무력함, 두려움이 나를 빨아들였다. 그 기분이 무서워 공원에서 서성이던 여러 밤. 차마 누르지 못한 친구의 전화번호. 맥락 없이 붉어지던 눈시울. 그런 날들이 길어져 갔다.
병원에 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차마’ 검색마저 해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힘든 원인이 명확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성과가 없었던 거니, 성과를 통해서만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기를 썼다. 게다가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출근해서 내가 책임져야 할 팀원들의 얼굴을 보면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잘해보자.
해시온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때 밤마다, 침대에서 천장 벽지 무늬를 따라 그리며 수도 없이 했던 생각은 ‘내가 우울증일까’ 하는 질문이었다. 우울증이란 이런 걸까. 그냥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힘든 거 아닌가.
얼떨결에 시작한 책읽찌라는 뜻밖에 너무 잘됐다. 원래 운영하던 앱을 홍보하기 위해 매일 밤 페이스북 라이브로 책을 읽어주던 것이 시작이었다. 내 얼굴을 걸고 콘텐츠를 만드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떠밀려서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불안정하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날들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4년간 맛보지 못한 성취가 발생하자, 땅이 푹푹 꺼지는 것 같았던 우울감은 조용히 사라졌다. 하던 일의 결은 바뀌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2년 동안 꾸준하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영상을 발행했다. 영상을 통해 구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한 권의 책을 한 번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전달하는 지식의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접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해시태그(#)의 해시(Hash)를 딴 ‘해시온’이라는 채널을 오픈했다. 책읽찌라가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발행하는 형태로 운영된다면, 해시온은 나영석 PD의 강식당, 알쓸신잡 등 시즌제 예능처럼 사전에 흐름이 기획된 프로젝트로 운영해보고 싶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알아가고 싶은 주제를 깊이 다뤄보고 싶었다.
둘째, 400편이 넘는 영상을 제작하고 올리면서 데이터로 읽을 수 있는 트렌드와 키워드가 있었다. 해시온은 이 키워드들을 주제로 다루기로 했다. 첫 번째 키워드를 꼽으라고 했을 때, 단연 #우울이었다. 그동안 우울, 불안, 인간관계, 심리에 대한 책을 소개하면 어김없이 사랑받았다. 그런 영상이 올라간 날은 댓글이나 메시지도 많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에 영상에서라도 답을 구해보려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우울을 찾아다닌 시간들
그래서 우울에 관한 20여 편의 영상을 기획했다. 주로 내가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궁금한 질문들로 출발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고치고 다듬어 나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하나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병원을 다녔거나 치료로 나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한테 얘기를 듣다 보니 미안해지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나 이 친구에게 관심이 없었던가. 대개는 정말 마음에 그늘이 없을 것 같고, 에너지도 많고 열심히 사는 친구였는데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우울이라는 소재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전에 없던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고, 힘든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다고 담담하게 함께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커다란 위안을 받고 감사한 마음과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우울증과 관련된 전문가분들도 많이 찾아다녔다. 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이나 상담심리센터의 상담전문가 선생님들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우려를 들었다. 섣부른 지식을 전해서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이 자가진단을 하고 오판을 하면 어떡하냐고. 우울증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달라서 일률적으로 진단하거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들을 해주셨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답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아무 답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물음표만 가지고 힘들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전문가의 의견과 검증을 토대로 우울증이 무엇인지 지식적으로 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병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울증과 힘들게 사투하고 있는 분들이나 이겨낸 사람,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안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열린 눈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우울증을 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마음을 읽는 시간』 저자이자, 심리상담전문가인 한 변지영 소장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소장님도 마찬가지 우려를 표하며 여쭤보셨다.
소장님: 우울증이 부각되는 사회적인 현상의 이면에는 다른 진실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제약회사들이 부추기는 측면이 크다고 봐요. 그 외에도 자본주의적 측면에서 ‘우울’을 소재로 소비를 부추기는 성향이 커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찌라: 소장님, 저는 방금 소장님의 목소리 그대로 담고 싶어요. 저한테는 지금 질문만 있어요. 취재하다가 병원에 좀 더 쉽게 가는 것이 옳다고 보이면 그렇게 담을 것이고,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힘듦도 같이 안고 가도 괜찮다고 보이면 그런 부분도 담고 싶어요. 우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열어놓고 최대한 많은 각도에서 담고 싶어요.
소장님은 쿨하게 “그렇다면 오케이”를 외쳐주셨고, 이 프로젝트 내내 큰 도움을 주시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고 계신다.
I’m not fine 나 안 괜찮아
책읽찌라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우울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때 내가 정말 아팠던 거구나, 나에게 야박하게 굴었던 점이 미안했다. 훗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프로젝트 초기에 만난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찌라: 선생님, 제가 그때 그렇게 힘들었지만 병원에 못 갔어요. 그게 진짜 우울증인지 모르겠어서요. 도대체 우울감과 우울증은 어떻게 달라요?
선생님: 그때 병원에서, 가희 씨 우울증 아니라고 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찌라: 다행이었겠죠. 아 내가 일이 힘들어서 그렇구나, 일이 잘되면 괜찮은 거구나 하면서 집에 왔을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러면 우울증이라고 했으면 어떨 거 같아요?
찌라: … 다행이었을 것 같아요. 그럼 내가 그냥 아픈 거구나 약 먹고 나으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나는 이제 다시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 주저 없이 병원에 가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기까지는 아주 작은 관점의 차이가 필요할 뿐이었다. 내가 잘못하고, 부족하고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아플 뿐이라는.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고 괜찮지 않다고 알아차리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I’m not fine’을 시작했다.
원문: 찌라의 브런치
키워드 큐레이션 콘텐츠, 해시온
우리의 삶에서 꼭 다뤄져야 할 질문들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