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발생률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강력한 인과관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발견율이 상승했기 때문. 그리고 발견율이 상승한 것은 기술의 발달과 암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제도적 서포트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질병 치료의 제일 첫 단계는 질병의 진단과 원인 규명이다. 이 정도 해내는 것도 사실 큰 숙제다.
지난 2년간 수만 가지의 사회적 암 같은 존재가 한 주가 멀다 하고 튀어나왔다. 씁쓸한 감상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 정부의 취임 이래로 이렇게 여러 사회의 암부가 드러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추행/폭행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지적하기도 힘들고 사법부 농단, 유치원 문제, 갑질 문제 등. 이쯤 되면 〈부당거래〉 〈아수라〉 〈베테랑〉처럼 부조리를 다룬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최소 팩션, 혹은 다큐멘터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 첫 단계가 잘 작동했다. 법치 사회에서 범법행위를 발견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귀찮다는 핑계로, 혹은 혐오하는 감정으로 품평하며 알량한 자존감을 과시하는 동안 그들은 법이라는 방패로 완벽히 무장하고 방어에 나선다. 그 법은 모순과 궤변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법치국가에서는 법이 무기이자 방패이다.
그렇기에 공론화되어야 한다.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큰 목소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법부의 농단도 국회가 법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해답이다. 따라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저열함과 혐오적인 태도에 실망하더라도 국회의원 개인을 비판해야지, 국회의원을 비판하면 안 된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무기와 방패를 주거나 뺏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월급을 깎는다? 당연히 뇌물을 받거나 예산을 유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또 그런 사람들의 숫자를 줄인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를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지 않았던가. 아니, 애초에 그게 민주주의일까.
초법적 대응은 쾌감은 줄 수 있어도, 문제의 뿌리를 캐낼 수 없다. 질병 치료에는 ‘적절한 진단’과 ‘단계에 맞는 치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질병에 따라 치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기에 걸렸다고 수술하면 안 되듯. 무기를 쥔 자는 선출직 정부요직과 국회의원이겠지만, 그 무기를 쥐어주는 건 투표를 하는 사람이라는 뻔하디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현재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민주주의다운 해결책이라고 생각해본다.
원문: 이승원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