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를 위한 길은 꽤 길다. 평균적으로 5~6년 정도는 걸린다. 이런 길고 긴 과정의 마무리는 역시,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최종 발표(디펜스)를 하고, 지도교수를 비롯한 커미티에게 서명을 받는 게 아닐까 한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학생의 실수로 생기는 어려움도 많이 있다. 학위 과정 중에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아주 많은 유형이 있지만, 그 중에서 실수임을 알아 채기 어려운 한 가지만 골라서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 있다면, 아마 이 글이 도움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자세하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 적이 있다면, 이 글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교수가 하라는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교수가 자꾸 논문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기만 하고, 논문 진도는 안 나가고, 도대체 교수는 생각이 있는 건지, 이 교수 밑에서 배울 게 있는 건지, 내가 졸업이나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일단, 교수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다. 정확히는 교수가 뭘 하라고 말하게 놔둬서 문제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학생 본인이 쓰는 거다. 물론, 처음에는 지도교수가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하는 거 해 보면서, 연습도 하고 실력도 쌓고 논문도 읽으면서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박사 말년차 때 까지 계속 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진다.
교수는 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면 성과를 내서 졸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해서 졸업할 수 있을만한 (대체로, 출판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는지 안다면, 그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슴 속에 명심하자.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물론 지도 교수 말고, 다른 교수들도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른다.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거고, 그래서 박사학위를 주는 거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지 2~3년차가 되면, 일단 어느 정도 연구가 어떤 건지 감은 잡았다고 보고, 그 단계에 들어서면, 더 이상 논문의 주인이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본인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주인이 되기를 꺼려하고 있다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것 저것 시켜보기 시작한다. 학생이 감을 잡고 연구 주제를 정하고 연구 방향을 정하고 연구 방법을 정하기 어려워 하는 것 같으면, 지도교수는 도와주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게 한다. 그러다가 학생이 언젠가 주인임을 선언하고 나서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이 시도라는 게 그야말로 시도다. 앞서 말했듯이, 교수도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시켜볼 거다. 근데 당연히 안 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연구하는 거니까.
학생이 이 몇가지 시도를 해 보고 나서, 잘 안 되었을 경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관련 논문들을 읽어 보고,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고, 대안을 생각해서 교수에게 말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닌지를 따져 줄 거다. 이건 좋은 경우.
두번째는, 교수가 시키는 (사실은 시킨 게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를 한 것) 대로 “열심히” 해 보고 안 됐기 때문에, 다시 교수를 만났을 때,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 본다. 아주 안 좋은 경우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대체로 대답을 해 준다. 왜냐하면, 그게 직업이기 때문에. 학생의 질문에 답을 주려고 노력 하는 것.
문제는, 박사 수준의 연구에서 교수의 대답이라는 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왜냐하면, 교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다. 아마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보면, 교수는 또 뭔가 이것 저것 말 해 줄꺼다. 그러면 학생은 또 돌아가서 시킨 대로 열심히 해본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교수가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는 졸업이 어렵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학생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맨날 했던 말을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했던 것은 교수인데 왜 졸업을 못 시켜주겠다는 건가? 학생은 불평 불만이 아주 많을 것이고, 화도 날 것이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기분일 것 이고,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뒤집고”, “바꾸고” 했던 적이 없다. 학생의 도움 요청에 반응을 했을 뿐이다.
학생의 연구 내용은 그 학생이 가장 잘 안다. 연구의 큰 줄기는 지도 교수가 파악하고 있을 수 있으나, 세부적인 사항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지도교수는 그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지도교수가 자기 논문을 쓰게 만들면 안 된다. 자기 논문은 자기가 써야 한다. 물론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방향을 정하고 여러가지 결정을 내려도, 졸업 후에 돌아보면, 결국 자기 논문은 지도교수가 기여한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어쨌든, 학생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기 논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졸업할 수 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 박사학위 이며,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졸업논문을 완성할 가능성도 매우 낮을 것이다.
최종발표 때 지도교수를 놀라게 하지 말자.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연구에서 배제하고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도교수는 학생이 어떤 주제의 연구를 어떤 흐름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지도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자기가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 상황은 어떤 상황이며, 졸업 논문 전체의 구성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 시간 계획은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시켜줘야 한다.
만일 교수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법한 것들이 있다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 볼 것이며,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교수가 지적을 해 줄 것이고, 어쩌면 해결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알려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교수는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학생 본인이 준비가 되었다 안 되었다를 어떻게 판단하든, 지도교수는 학생이 졸업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 할 것이고, 아마 뭐가 잘 못 됐다면서 연구를 다시 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끊임 없이 업데이트를 시키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종발표를 하려고 하는 내용에 지도교수가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안 된다.
간단하게만 업데이트 시키는 경우에도, 만날 때 마다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매주 혹은 2주마다 지도 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학생의 경우에도 이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다. 교수가 지난 미팅 때 했던 이야기를 전혀 기억 못 하고,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당연하다. 교수는 원래 학생 연구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한다. 학생은 교수랑 일대일로 만나는 거지만, 교수는 만나야 할 학생도 많고, 자기 연구 생각하는 것만 해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교수가 학생 연구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아마 그건 학생 연구가 아닐 거다.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가 위에서 길게 말 한 것이 정리가 잘 안 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교수도 잘 모른다.” 교수가 멍청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잘 모른다. 그래서 연구다.
한 가지를 더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자. “그런데, 교수가 잘 알게 돼야, 학생이 졸업을 한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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