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퀸’이라는 밴드의 정수를 대승적 차원에서 서사와 연출에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얼핏 이 영화는 많은 예술가에 대한 영화가 그러하듯 천재적 뮤지션의 광기와 집착 그리고 파멸에 대한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평범하게 연출되어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의 감독이었던 브라이언 싱어는 광기와 천재성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인도 소수 파사르계였던 태생이나 게이였던 성 정체성, 에이즈로 인한 이른 죽음과 같은 좋은 떡밥을 쉽게 물지 않고 그저 배경처럼 건조하게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보다는 친구 연인과 같은 소중한 사람들 간의 유대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인정을 회복하는 가장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서사를 따른다. 그런데도 이 어찌 보면 촌스러운 영화는 이상하게 마음을 울린다. 이건 단지 사람들의 추억을 후벼판 결과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 감독은 ‘퀸’의 패셔너블하면서 변화무쌍한 음악 속에서도 어떤 건전함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학창시절 ‘퀸’의 앨범을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다. 락부심을 가진 풋사과였기에 ‘퀸’을 아주 좋아한다(아직도 그렇게 말하기는 살짝 힘들 것 같다)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퀸의 ‘greatest hits’ ‘live killers’ 만큼 테이프가 닳도록 들은 앨범은 없었던 것 같다.
퀸의 음악은 지금 들어봐도 상당히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을 이겨낸다는 것은 굉장한 재능과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또한 한 밴드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다양한 스타일에 놀라게 된다.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와 어떤 다른 노래들과 비교할 수 없는 기묘한 스타일은 그들이 놀라운 밴드라는 것을 보여준다. ‘another one bites dust’나 ‘killer queen’ ‘bicycle race’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play the game’ 같은 곡을 한번 함께 들어보라.
하지만 그 음악들에는 기본적으로 마치 매일 근사한 옷을 바꿔 입는 사람과 같은 화려함이 배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귀에 한 번에 꽂히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음알못의 아무 말 대잔치는 양해하시길), 이를테면 비요크나 쳇 베이커처럼 정신을 후벼 파는 미친 음악을 만들거나 루시드 폴처럼 섬세하게 에너지를 응축하며 구도자적인(?) 자세를 취하는 음악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프린스 같은 외계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는 그때도 지금도 내게는 여전히 자극을 주기 위해 훌륭한 부분을 거칠게 이어붙였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다른 곡과는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함과 현란함, 부분 부분의 훌륭한 멜로디에 압도되어 버리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음악 평론가들의 말에 솔직히 조금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맥락에서 퀸의 음악을 다시 돌아보면 그럼에도 한편에는 ‘we will rock you’ 나 ‘we are the champion’ ‘save me’ 같은 곡들이 떠오른다. 이런 곡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올림픽에서 연주하는, 완전히 살아 있는 곡이다. 퀸은 자신들의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자극과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정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곡들에는 보편적인 멜로디와 상투적이지만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메세지가 실려 있다.
감독의 전형적인 연출은 그러한 퀸 음악의 의지에 조응한다. 또한 ‘guns and roses’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처럼 영상 자극에 음악이 끌려다니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퀸 음악에 내재한 풍부한 드라마성에 집중하게 한다. 중반까지의 플롯은 그 멜로디와 구성이 처음 시연되었을 때의 놀라움을 함께하는 데 집중한다. 마치 늦게 도착한 프레디를 기다리다 지친 멤버들이 ‘we will rock you’의 인트로를 연주할 때 마침 도착한 프레디가 합류해서 싸움을 뒤로하고 음악에 몰두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음악 영화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는 음악적 아름다움을 영상이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감독은 상당히 겸손한 태도로 퀸의 음악에 헌사를 바친다.
영화 마지막을 장식한 웸블리 공연의 오프닝은 얼핏 거슬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저기 수천 미터 상공에서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인파를 줌인하며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거기 진정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왠지 장중함을 짜내는 것 같은 혐의가 들 수도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도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를 떠올려 보면 그렇게 그려야만 했다.
에이즈로 죽음을 선고받은 프레디 머큐리는 그 공연을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게 진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기어이 ‘we are the champion’으로 끝난다. 그의 예고된 죽음과 대조되는 이 활기는 뻔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거의 수십 년간 인류의 마음을 움직인 곡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단지 어떤 음악적 완성도, 음악성을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 아닐까? 한 곡 안에서도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 끊임없이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는 그 정신도 그런 생명력, 의지의 한 모습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