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영된 ‘알쓸신잡3’에서는 출연자 사이에서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들이 다 흥미로운데, 특히 김영하 작가가 아파트와 개인주의를 연결하여 이야기한 부분이 깊이 생각을 하게 했다. 김영하 작가는 한국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로 ‘개인주의’를 꼽는다. 아파트는 익명성과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그런 단절된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걸 좋아한다는 취지였다. 일견 공감 가는 면이 있었지만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나는 반대로 한국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집단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가 주는 공고한 내부성·집단성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모종의 소속감을 주고 아파트를 둘러싼 바깥의 주택들은 오히려 ‘집단 바깥’에 있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아파트 내에서는 그 아파트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브랜드나 평수 등을 통해 집단적 서열에 속하며, 아파트 거주에 참여하지 못하면 박탈감을 느끼는 구도가 반복된다.
반면 정말로 타인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을 얻고 싶다면 아파트를 벗어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오히려 아파트에서는 묘한 공동생활의 부담이 있다. 층간소음이라든지 공유부분에 대한 문제라든지 아파트 내 시설 이용에서 타인이 간섭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아파트를 열망하기보다는 아파트가 주는 집단적 소속감을 더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아가 최근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집단 이기주의가 확산되기까지 한다. 아파트 가격을 담합하는 집단적 움직임이라든지 임대 아파트나 빌라 거주자들을 폄하하며 아파트 거주민들끼리만 형성하는 집단적 공고함이 강화되었다. 물론 아파트 안에서도 타인들과의 관계 형성을 꺼리며 개인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기에 아파트가 최적화된 공간이라고 보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그 외에도 이유는 많을 것이다. 아파트가 투자가치가 높다는 것, 대체로 교통편도 일반 주택에 비해 좋다는 것, 그 주변이 여러모로 개발되면서 편의시설이 많아진다는 점 등이 아파트를 열망하게 만드는 원인일 것이다. 아마 김영하 작가도 즉흥적으로, 어쩌면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가 때마침 방영된 것에 불과하겠지만, 내 생각에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로 개인주의를 꼽는 것은 여러모로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 않지만 10대 중반까지는 항상 아파트에 살았다. 요즘의 아파트 분위기가 다소 달라진 면도 있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아파트 내부의 커뮤니티, 아파트 집단에 대한 소속감, 아파트 사람끼리의 관계성은 그 이후 내가 경험한 어떠한 주거 형태보다 강력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아마 나도 아파트에 살지 않을까 하는데, 특정한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될 생활 공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상상되며 다가오는 면이 있다. 더군다나 아이를 키운다면 더욱 그런 집단생활을 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파트는 한국의 집단주의적인 문제가 집약된 공간에 가깝다. 근래에는 개인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은 집단주의적 인생 방식이 중심을 이룬다. 집단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집단적 편견에 따라 비교하고 평가하며, 집단 이기주의 아래 함께 뭉치며 무리 짓고 배제를 생활화한다. 아파트는 그 집단주의의 전초기지처럼 활용되는 면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가가 앞으로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