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내에서는 심사위원에게 호평을 받고 인기투표에서 높은 순위를 얻은 나플라라든지 키드밀리의 동영상 조회 수는 그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마미손은 금방 탈락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조회 수 3,000만은 당연히 넘을 테고 5,000만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방송에서 마미손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실수도 많이 했고, 방송 안에서도 고무장갑을 뒤집어 쓰고 나온 ‘관종’ 아니냐는 식으로 비웃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미묘한 호기심은 확실히 자아냈다. 그가 올린 ‘소년점프’의 가사와 동영상을 보니 이 폭발적인 인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방송에서와 달리 랩을 대단히 잘했고, 뮤직비디오도 요즘 ‘힙한’ 스타일의 다소 4차원적이고 복고풍 느낌으로 잘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써낸 음악의 가사였다.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며, 방송의 심사위원은 ‘악당들’에 불과하다고 노래한다.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 그렇다면 방송에서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다른 경쟁자를 무찌르고 올라간 출연자? 아니면 심사위원? 결국에는 방송에서 다른 이들과 싸워 이긴 1등이 주인공이 되고 심사위원을 비롯한 나머지는 조연, 그리고 일찍이 떨어졌던 이들은 일종의 악당이 되는 걸까?
아마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스운 일이다. 방송 하나에서 1등 하는 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마미손의 말마따나 인생은 길고, 그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자기를 떨어뜨린 심사위원들이나 대회는 그의 인생이라는 ‘만화’에서 지나가는 악당들이자 조연일 뿐이다. 이는 확실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세계관에 어떤 전환을 준다.
패배자와 승리자가 그 안에서 명확히 나뉘고 규정되는 방송이라는 틀은 묘한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 구경하면서 패배자를 안타까워하거나 승리자가 승리할 만하거나 어이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 안에서 규정되는 승리나 패배가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가?
그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서, 그들 마음대로 평가하고, 승리와 패배를 규정하고, 한 마디로 자기들끼리 ‘노는 것’에 불과하다. 마미손은 이러한 구도를 뒤집으면서 ‘자기 삶’으로의 전환, 자기 삶으로 중심축을 옮겨버리는 일을 해냈다. 이는 방송을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통쾌함을 주는 게 틀림없다.
그는 가사에서 모두 ‘계획대로 되고 있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계획대로 된 것처럼만 보인다. 그는 방송에 이용당하기보다는 방송을 가장 멋지게 이용해냈다.
다소 우습고 이상한 행위 ─이미 모두 그가 누군지 아는데도, 고무장갑을 뒤집어쓰고 나와 자기 정체를 숨기는 그 우스운 아이러니─로 비웃음과 관심을 끌었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상한 호기심을 갖게 했고, 그 뒤에 발표한 동영상으로 한국 힙합 역사상 거의 최고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가 더 계획대로 해나가면 좋겠다. 어떤 대회들, 어떤 방송들, 어떤 기성의 틀, 기존의 방식에 매몰되어 그 속에서 경쟁하며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데 함몰되지 않고, 계속 그만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그의 계획이 성공하길 빈다. 그래서 기성의 틀, 기성의 심사위원들, 기성제도, 기성의 자본, 기성의 승패와 기성의 논리를 박살 내는 길을 계속 걸어가면 좋겠다.
어쩌면 그런 게 진짜 힙합 정신일 것이다. 아마 그의 동영상을 본 거의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쇼미더머니 777’의 진정한 승리자는 그와 다름없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