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뭐냐고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주말이 사라졌다.
어쩌니저쩌니해도 회사에 다닐 때는 사원증을 찍고 나가면 퇴근이라는 게 존재했고, 주중에 지치고 힘들어도 주말이면 어쨌든 쉴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일이 있으면 누군가 해야 하고, 대부분 그 일은 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은커녕 주중 언제고 휴일을 챙기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밸붕(밸런스 붕괴)이네’라고 하기도 한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구직자들의 직장 선택 주요 기준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를 강제하기도 했으니 워라밸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긴 대세다. 그렇다면 올바른 일과 삶의 ‘균형’이란 무엇일까?
칼퇴를 강조하고 근무시간을 강조하는 언론 기사를 보면 일반적인 워라밸은 물리적 시간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9 to 6를 지키며, 야근을 하지 않고, 주말근무가 없으면 내 삶이 균형 잡혔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물리적인 휴식 시간이 워라밸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워라밸의 핵심: 어디에 중심을 두고 균형을 잡을 것인가
워라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일이나 삶이 아닌 ‘균형’이다. 균형은 어떻게 잡히는가? 균형이란 무 자르듯이 산술적으로 하루 24시간을 삼등분해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취미생활 하고 8시간은 잔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나만의 템포, 나만의 중심이 온전히 있을 때 비로소 잡힐 수 있다.
시소를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자. 좌우에 동일한 무게가 실리고 중심이 정확히 가운데에 있을 때, 이 시소는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중심이 좌측 혹은 우측으로 조금이라도 옮겨지면 이 시소는 급격히 기울 것이다.
워라밸도 이 시소와 똑같다. 누군가는 인생의 중심을 일에 방점을 찍을 것이고 누군가는 삶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게다가 이 방점은 20대, 30대, 40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적 환경에 의해서 일에서 삶으로, 혹은 반대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런 개인차를 무시한 채 9 to 6만이 당신 평생의 워라밸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짧으면 늘려서 사람을 죽였다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다를 바 없다.
워라밸 중심의 기준: 내가 언제 행복한가
무엇이 나에게 맞는 템포인지 내게 맞는 워라밸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기본적으로 주중 9 to 6, 주말 이틀의 휴식이 너무도 당연했다.
이제 소상공인이 된 내게 일반적인 퇴근의 기준, 주말의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지자면 월요일 오후 2시에도 퇴근할 수 있고 한 주 내내 온종일 일할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쉴 것인가까지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였다.
진정한 워라밸은 ‘내가 언제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임에도 어쩌면 나는 휴식, 혹은 워라밸이라는 개념조차 남이 정해준 대로 9 to 6라고, 주말엔 쉬는 거라고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밀린 이메일, 마감 기한이 지난 리포트, 시작도 안 한 연구 발표 자료 준비, 제출하지 못한 연구 제안서 등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그렇더라도 저는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과 같이 즐겁게 먹고, 아들과 ‘스타워즈’ 놀이를 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조용히 산책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일을 절대 빼놓지 않아요. 그래야 제가 행복하니까요. 저는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 제 행복에 중요한 순서대로 선택해요.
- 데니스 홍,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데니스 홍 박사가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하고, 아들과 스타워즈 놀이를 하고, 산책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꽤 유명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유명한 만큼 끝도 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업무 사이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나름대로 노력해서 내 발자취를 남기는 일’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졌기에 이 둘은 언제 행복할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전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일하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퇴근 이후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전념할 것이고, 후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취미생활 시간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에서, 서로 다른 무게중심에서 내린 결정이기에 누군가를 월급루팡이라고 혹은 누군가를 번아웃 마조히스트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같이 워라밸의 핵심은 ‘일과 삶이 물리적으로 동일한 양만큼 쓰이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시간이 쓰이도록 올바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았는가’이다.
언제 어떻게 쉴 것인가, 오롯이 나만의 호흡으로
물리적 기준의 워라밸로 재단하면 나는 분명 불행해야 했다. 한때는 분명 너무 쉬지 않고 달리느라 번아웃이 올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많은 시간을 쉴 수 있었던 회사 다니던 때보다 오히려 칼퇴도 없고 주말근무도 많은, 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 행복감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모두 각자 다르게 호흡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너는 왜 숨을 빨리 쉬느냐, 혹은 느리게 쉬느냐고 타박하지 않는다. 이같이 세상에 좋은 호흡과 나쁜 호흡은 없다. 단지 내게 자연스러운 호흡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워라밸도 마찬가지 아닐까.
칼퇴와 주말근무가 없으면 워라밸일까? 아니다. 워라밸을 찾는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며 주변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누가 뭐라 해도 본인만의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은 중심을 잡았는가.
원문: 경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