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이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모습을 극단적으로 나타내는 아주 재밌는 모습을 보게 됐다. 디지털 타임스 김모 기자의 ’갤럭시 S5 초도물량 전량 폐기’와 관련된 보도다.
대략 저녁 9시쯤이었다. 트위터에 삼성이 갤럭시 S5 초도물량을 전량 폐기한다는 디지털 타임스 기사가 산발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현재 디지털 타임스의 기사는 삭제돼서 링크를 할 수가 없기에 내가 찍어놓은 스크린샷을 첨부한다.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첫 문단에 있다.
삼성전자가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5’의 출시를 한 달 앞두고 초기 생산 물량 130만대를 전량 폐기키로 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핵심 기능으로 내세웠던 지문인식 센서의 인식률이 낮고 디자인 등 제품 전반에 대한 혹평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내부 판단에서다. 지난 95년 ’애니콜 화형식’에 이은 두 번째 품질경영 결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이 기사는 트위터뿐만 아니라 각종 커뮤니티에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갤럭시 S5 폐기에 대해 보도한 건 디지털 타임스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검색 결과에 기사가 2개 뜨는데, 기사 2개가 모두 디지털 타임스에서 보도한 것이고, 기사를 쓴 기자마저도 동일하다. 기사의 제목은 각각 이렇다. (기사가 둘다 사라져서 역시나 링크는 스크린샷으로 대체한다.)
- 삼성, 1조규모 ‘갤5’ 전량 폐기 파격결정… 왜? – 3월 5일 20시 18분 입력 (3월 6일 종이신문 3면 기사)
- 삼성 출시 앞두고 ‘갤럭시S5’ 130만대 전량 폐기… – 3월 5일 20시 26분 입력 (3월 6일 종이신문 1면 기사)
8분 차이를 두고 사이트에 입력된 기사다. 처음엔 제목만 바꿔서 검색 유입을 노리는 기사인가 싶었는데, 두 기사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먼저 입력된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다. (다시 한번 같은 기자가 쓴 기사라는걸 상기하자.)
그러나 이날 삼성전자측은 “기 생산분을 지문인식 및 디자인 상의 문제로 전량 폐기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면서 “4월 11일 출시일정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마지막 문단의 내용이 8분 후에 입력된 기사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제목만 비슷할뿐 두 기사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먼저 입력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강조는 내가 했다.)
갤럭시S5에 탑재된 지문인식 솔루션은 협력업체의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센서, 알고리즘, 기타 시스템 기술 등 지문인식 솔루션 구성 요소 가운데 일부를 협력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여기에 삼성전자의 자체 기술을 결합한 방식이다.
8분 후엔 관련 내용이 이렇게 변한다. (강조는 내가 했다.)
그러나 삼성 자체 기술로 알려진 지문인식 센서의 인식률이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치고, 외관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묘하게 같은듯 다른 내용이다. 이런식으로 기사가 쓰여져서는 안된다. 그것도 8분 늦게 나온 기사에서 말이다. 이런 문제점 외에도 들풀님이 지적했던 관계자 저널리즘을 이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늦게 입력된 기사의 일부다.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의 주된 요인은 갤럭시S5의 지문인식률이 떨어지고, 디자인에 대한 혹평이 제기된 측면이 강하다”면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새롭게 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보도한 내용들에서도 취재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마지막에서는 “정통한 고위 관계자”라는 밑도 끝도없는 취재원을 언급한다. (정통한 고위 관계자가 기자 본인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생긴다.) 또한 기사에서 언급한 초도 생산 물량 130만대도 근거가 전혀 없다.[1] 삼성전자 정도 되는 글로벌 기업의 초도 생산 물량을 기자가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 애널리스트들이 부품 공급업체들을 역추적해가며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생각해보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애시당초 4월 11일이었던 출시 예정일이 초도물량을 전량 폐기하고도, 4월 말이나 5월 초로 미뤄질거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그렇게 빨리 디자인을 바꿀 수 있나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를 마치 그걸 사실인양 포장한 이 기사는 죄질이 아주 나쁘다.
여기까지도 기가 막힌데, 더 웃지 못할 일은 잠시 후에 일어났다. 8분 후에 올라온 기사가 인터넷에 퍼지고 디지털 타임스에 트래픽을 몰아다주자, 기사가 수정됐다. 먼저 입력된 기사에서 마지막 문단(삼성전자측에서 폐기설을 부인한 인터뷰가 담긴 문단)이 사라지고, 그 문단이 인터넷에 퍼진 8분 후의 기사 마지막에 생겼다. 비교를 위해 수정된 후의 기사를 스크린샷으로 찍어놨다.
외신의 경우 기사에 수정 사항이 생기면 어떤것을 수정했는지를 명확하게 표시한다. 추가할 내용이나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기사를 업데이트 한 후, 기사 말미에 왜 수정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단순한 오타 하나를 수정해도 어떻게 쓰여진 오타를 어떤식으로 바로잡았는지를 기사 말미에 적는다.
이런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고 기자 마음대로 기사를 수정했기에, 초반에 기사를 읽었던 사람들은 사실과 정반대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남들보다 조금 빨리 기사를 공유했던 사람들은 역시나 정반대의 내용으로 기사를 공유하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런 식의 보도는 기자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정확한 정보원도 없고, 오로지 디지털 타임스에서만 이 내용을 보도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기사 말미에 앞 문단의 내용들을 한방에 부정해버리는 인터뷰까지 있다. 이쯤 되면 그 인터뷰마저도 실제로 한 건지, 아니면 기자가 개인의 생각을 인터뷰의 형식으로 적어넣은 건지 의문스러워진다. 트래픽을 만들기 위해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기사를 내고, 그걸 스스로 부정하는 ‘자작나무’ 타는 냄새가 난다는 얘기다.
물론 김모 기자의 개인적인 삼성 내부 정보원을 통해서 들은 루머를 기사 형식으로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바로 다음날 아침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올라온 폐기설 부인 글을 보면 기자는 이렇게 마치 사실인양 보도하지 말았어야 했다.
디지털 타임스의 이 기사가 뜨고 2시간쯤 후에 뉴스1에서 갤럭시 S5 폐기설이 사실무근이라는 기사가 떴고, 디지털 타임스는 결국 기사를 내렸다. 시간이 부족했는지 지면에서는 1면에 그대로 기사를 발행했지만 말이다.[2] (아마 3면도 수정 할 시간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확인해보려고 디지털 타임스의 지면을 다운받으려고 했더니, 회원가입과 윈도우를 요구해서 포기했다.)
잠깐의 해프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디지털 타임스는 약 2시간 가량 꽤 상당한 트래픽을 얻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디지털 타임스에는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나 사과문 또한 올라와 있지 않다. 오보 덕분에 오늘 오전 삼성전자 부품공급업체의 주가는 요동쳤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곳을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사실을 보도한다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완전히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은폐하고 트래픽을 모으길 꾀했다. 이런 기사를 가장 중요한 뉴스라며 1면에 올려놓는 곳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3] 언론에 뜬 내용을 독자가 믿지 못하고, 독자들이 다른 곳에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주기를 바랄 때, 그 언론은 존재 가치가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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