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안현수 3관왕과 부활, 정말 축하합니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는 요즘 인터넷에서 파벌싸움 희생자가 돼 있습니다. 거꾸로 대한경기빙상연맹은 복마전(伏魔殿·비밀리에 나쁜 일을 꾸미는 무리들이 모이거나 활동하는 곳) 그 자체입니다. 빙상연맹은 끊임없는 파벌 싸움 때문에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놓친 무능한 집단이죠. 정말 그럴까요? 다 큰 성인들이 하는 일을 두고 그렇게 무 자르듯 너는 선, 너는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쇼트트랙에 파벌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이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쇼트 황제’ 안현수를 만든 것 역시 (본인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파벌이었는지 모릅니다. 언론 기사로 확인할 수 있는 안현수 성인 무대 데뷔 뒤 첫번째 파벌 충돌 사례는 2005년 4월 10일에 터졌습니다. 남자 대표팀 8명 중 7명이 태릉선수촌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수촌 입촌을 거부한 선수들은 서울 송파구 B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자팀 헤드코치로 선임된 A코치는 특정선수를 편애해 그 선수의 메달 획득을 위해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런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고 코치 교체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들은 또 A 코치가 지난해 특정 회사의 스케이트를 신도록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유일하게 입촌한 선수는 안현수였습니다. A 코치가 편애한 특정 선수 역시 안현수였고 말입니다. A 코치는 한국체육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한국체대파 대부이자 한국 쇼트트랙 대부였던 전명규 감독 밑에서 운동했던 인물입니다. 안현수는 전명규 감독이 발탁해 처음 국가대표로 뽑혔습니다.
안현수는 1월 춘천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긴 했으나 성인무대에서의 국제경기경험은 전무한 ‘풋내기’. 전 감독은 “경험만 부족할 뿐 기량면에선 손색이 없는 선수”라며 “전력이 노출된 이승재나 민룡보다는 안현수가 낫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전명규 감독이 한 시대를 풍미한 기술이 바로 ‘에이스 밀어주기’입니다. 철저한 팀 플레이로 에이스를 ‘보호’했던 거죠. 그래서 당시 기사를 보면 김동성은 3000m에서도 안현수와 적절히 호흡을 맞추며, 한국선수들의 ‘방어벽’을 뚫기엔 역부족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안현수는 대표팀에 뽑힌 지 1년이 지난 2003년 2월 7일 간판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로써 전날 1500m에서 리자준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던 안현수는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3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간판스타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월드컵 4차대회에서 강호 안톤 오노(미국)를 꺾었던 안현수는 이번 대회에서 리자준까지 압도함으로써 세계정상으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 때는 전 감독이 물러난 상황. 대신 전 감독 에이스 출신이었던 A 코치가 남자팀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가 안현수를 통해 계속 이 전술을 구사하려 하자 반발을 산 겁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이해 1월 안현수가 대표팀 선배에게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5년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저랑 성시백이가 한 선배로부터 두들겨 맞았어요. 그 선배가 경기 전날 우리 둘을 방으로 불러서 금메달을 양보하라고 강요했는데, 제가 말을 듣지 않았거든요. 결국 그 일이 터지면서 코치도 물러나고 그 선배는 대표팀에서 제명됐었죠. 선배한테 금메달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 천하의 죽일 놈이 됐고, 이기적인 선수로 내몰렸어요. 선배한테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 건, 그렇게 강요하는 선배의 상황과 그런 강요가 허락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전 깨끗하게 운동하고 싶었어요. 워낙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저라도 그런 부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엔 혼자 잘난 척 한 셈이 됐죠.
비(非)한체대파라고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던 거죠. 물 밑에서는 서로 치고 박는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던 겁니다. 파벌이 있다는 건 누군가 일방적으로 왕따를 당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또 파벌 싸움이 있다는 것하고 파벌 싸움 피해자라는 것 역시 조금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파벌 싸움은 2006 토리노 올림픽을 겨우 넘긴 뒤 2006 쇼트트랙세계선수권대회 때 다시 문제가 됩니다. 파벌이 다른 선수들끼리 방도 쓰지 않고 비행기 좌석도 바꿔달라고 했던 그 사태죠. 실력으로 쿠데타를 제압할 수 있었을 때는 안현수에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릎을 다치고 맙니다. 에이스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거죠.
대한빙상경기연맹은 16일 “안현수가 오늘 서울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대표팀 훈련을 하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펜스에 심하게 부딪혔다. 인근 을지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왼쪽 무릎뼈 골절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 뒤로부터 안현수는 2년에 걸쳐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고 길고 지루한 재활 과정도 거쳐야 했습니다. 세상이 그를 기다려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빠진 남자 쇼트트랙 에이스 안현수(성남시청)의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4일 캐나다 퀘벡에서 끝난 쇼트트랙 월드컵 5차 대회 5개 종목 가운데 4개를 휩쓸었다.
기사에는 늘 ‘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이 따라다녔습니다. 안현수가 빠졌는데도 대표팀 성적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황제’ 안현수(성남시청)가 부상으로 빠져 전력 약화가 우려됐지만 안현수의 공백은 성시백(연세대)이 훌륭히 메웠다. 성시백은 이날 남자 500m 결승에서 41초161을 기록해 찰스 해멀린(캐나다·41초220)을 제치고 우승했다. 전날 1500m 1차 레이스 우승과 이날 5000m 계주 우승까지 대회 3관왕.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현수가 ‘왕따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이 파벌문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을까요? 의견이 엇갈립니다.
2010년 파벌 논란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공동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었던 정준희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은 “과거 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는 지금 사분오열됐다. 지금은 파벌보다는 특정 지도자 중심의 춘추전국시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A쇼트트랙 코치는 “파벌은 여전하다. 빙상연맹 B임원의 독재 속에 ‘제 식구 감싸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 등장한 ‘2010년 파벌 논란’은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57)가 이해 3월 아들 팬카페에 올린 글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안 씨는 당시 ‘태광트레이딩’이라는 닉네임으로 안현수 팬카페 게시판에 “빙상연맹과 코치진이 부상이 아닌 선수를 부상이라고 매스컴에 흘리고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선수에게 출전을 양보하게 했다”며 “현수는 파벌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왕따를 당했다. 같은 선수의 부모로서 모른 척한다는 게 정의롭지 않은 것 같았다”고 썼습니다.
부상이 아닌 선수는 2010 밴쿠버 대회 때 2관왕을 차지한 이정수(25·고양시청)였습니다. 진상조사를 시작한 대한체육회는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것은 전재목 코치의 강압적인 지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체육회는 그러면서 2009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 때 당시 마지막 경기인 3000m 슈퍼파이널이 열리기 직전 일부 코치와 선수가 모여 대표에 뽑히면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이 대표 선발전이 중요한 건 안현수가 소치에서 동메달을 딴 뒤 러시아 매체 코메르산트와 인터뷰하면서 2010 국가대표로 뽑혔다면 러시아로 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기 때문입니다.
—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다면 러시아로 귀화하지 않았을 겁니까? А если бы прошел отборочные соревнования тогда, ни за что, наверное, не приехал бы в Россию?
— 그는 “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답했다. Не поехал бы,— уверенно сказал он.
나중에 ‘짬짜미 사태’라고 이름 붙은 이 논란 때문에 정말 안현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걸까요?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쇼트트랙 부조리’를 조사하겠다고 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수가 몸도 완전치 않았고 또 여러 가지로 현수가 몸이 완전했다면 완벽하게 좀 했을 텐데 그것보다도 현수가 운동할 수 있게끔, 다시 부활할 수 있게끔 이렇게 격려해주고 지켜봐주고 해야 되는데 뭐 안현수 아니라도 대한민국의 쇼트트랙은 되니까 그냥 나 몰라라 했던 게 문제가 됐던 거지, 쇼트트랙 선발전에서 그런 부조리는 저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현수가 떠나가게 만든 사람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윗분들이 다쳤을 때 잘 감싸주고 또 이 선수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끔 올림픽에서 3관왕 하고 세계선수권 5연패 했어도 또 다치고 나니까 아무런 뭐 관심도 없고 또 아무런 뭐 지원도 없고 이러다보니까 이런 문제, 떠나게 된 거죠. 올림픽 선발전에서 문제 있었던 것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 선발전은 2009년 4월에 열렸습니다. 당연히 섭섭했을 겁니다. 대표팀 훈련을 하다가 다친 건데 제대로 된 보상도 없었고, 선발전 결과를 토대로 대표 명단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안현수 하나를 위해서 9월로 일정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전지 훈련도 떠나야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현수는 9위로 탈락하고 맙니다.
컨디션이 좋지 못해 대표 선발전에 빠졌다고 해도 그를 뽑아줄 수는 없던 걸까요? 이렇게 하지 못하게 된 것 역시 안현수 때문이었습니다. 안현수는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 선발전 없이 발탁됐습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생겨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표로 뽑을 수 없도록 규정을 바꾼 겁니다.
2009년 대표 선발전 때 안현수는 특혜라면 특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빙상연맹은 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을 ‘동호인을 제외한 전 시즌 일반부 등록선수’로 완화했습니다. 이는 안현수가 부상으로 2008년에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도 선발전에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아버지가 터뜨린 짬짜미 사태로 일정이 바뀌면서 뽑히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일정이 바뀔 걸 예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연맹에서 대표 선발전 일정을 조정한다고 하자 안현수는 반발했습니다.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선발전이 9월로 미뤄진다는 건 1년 동안 4월 선발전에 맞춰 몸을 만들어온 선수에게는 정말 힘이 빠지는 일이다”고 글을 올렸다. 안현수는 다음 달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한 달 동안 입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9월로 선발전이 미뤄지면 훈련 시간과 컨디션 회복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이와 함께 특정 선수가 발목을 다쳐 선발전에 나설 수 없자 몇몇 선수를 봐주려는 연맹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짬짜미’ 문제는 다 덮고 예정대로 대표 선발전을 하는 게 맞았을까요? 이 사건을 터뜨린 장본인이 아버지였는데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문화관광부는 대표선발 일정을 조정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게다가 이 선발전은 “짬짜미를 막게다”며 사상 처음으로 ‘타임 레이스’ 형태로 치렀습니다. 특정 선수를 죽이겠다는 의도보다 공정성을 강조하는 게 더 시급했던 상황인 거죠. 결국 준비가 되지 않은 안현수는 또 한번 탈락하고 맙니다.
여기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집니다. 안현수 소속팀 성남시청이 사라진 겁니다.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당선된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조조정 칼을 빼들었던 것입니다.
안현수와 러시아에서 1년6개월간 동고동락한 황익환 전 성남시청 코치는 “성남시장(당시 이재명)이 ‘난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직장운동부 1명 인건비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도 전 부서가 아닌 체육팀에만 적용했다”며 “지방자치단체들이 긴축을 해 현수를 데려갈 팀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2011년 러시아 빙상연맹의 귀화 제안을 수락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성남시청이 사라진 뒤에도 안현수는 이듬해(2011년) 2월 열린 전국겨울체육대회 때 3000m에서 우승한 뒤 이렇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안현수는 “주변에서 전성기 때 기량이 나온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4월 대표 선발전에서 반드시 복귀해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며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소속팀 없이 훈련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을 겁니다. 결국 안현수 아버지는 4월 12일 러시아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많이 고민했겠죠. 다시 한국에서는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결국 이달 17일 대표 선발전 때 안현수는 5위로 탈락했습니다. 5위는 예비멤버로 누군가 다치면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지만 그는 새 길을 찾으러 떠납니다. 대표전 일주일 뒤 안현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08년때 부상 당한 이후로 2년을 재활만 해왔어요.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부상이 그렇게 힘들고 무서운 건 줄 제대로 느꼈어요. 부상과 재활보다 더 어려운 게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잘하는 후배들은 너무 많고, 전 자꾸 위축되고…, 좀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 치른 마지막 대표팀선발전이 저한테는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경기였어요. 이제 조금씩 감이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요. 러시아에 가서 체력을 보완한다면 이전의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부분이죠. 과연 제가 소치올림픽에 나간다면 어느 나라 국기를 달고 뛸 지에 대해서요. 지금 이렇게 러시아로 떠나는데 과연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표팀 선발전을 잘 치를 수 있을까요? 공정한 룰을 통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연맹과 오랫동안 잡음을 일으키는 바람에 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전 이제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팬들은 아니시겠지만, 전 제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 안 해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여기서 제 가슴에 와닿은 말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죠. 가슴에 응어리가 쌓였을 겁니다. 금메달 양보하지 않았다고 선배한테 맞아야 하는 건 확실히 비정상적인 문화니까요. 쌓이고 쌓이다 폭발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순수한 피해자로 한국을 떠났던 건 아닙니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났던 겁니다. 당시 한국에는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보니 그 기회를 줄 수가 없었고요. 반면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파랑새가 사는 땅이었습니다. 자국에서 열리는 소치 올림픽 때 자국 첫 번째 쇼트트랙 메달을 기대한 러시아는 안현수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줬습니다. 프로 선수로 치면 비싼 돈을 들여서 특급 자유계약선수(FA)를 모셔온 거죠. 혼자만 독실을 쓰게 해줬고, 황익환 전 성남시청 코치를 개인코치로 고용해줬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끔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타고 싶었던 스케이트, 편안한 환경, 아낌없는 지원들…, 이게 모두 가능한 곳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고, 올림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안현수는 러시아에 간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심지어 여자 선수들을 따라잡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선수를 믿고 기다려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안현수 개인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절대 이렇게 못해줬을 겁니다.
그런데 유독, 안현수에게만 이렇게 해줘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그게 특혜 아닐까요? 한때 세계 최정상이었지만 부상으로 재기가 불투명한 선수에게 매달리다 유망주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결과론으로 보면 당연히 잡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먼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안현수는 자기가 직접 기회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그걸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가 안현수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빙상연맹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조직입니다. 그걸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빙상연맹 문제 때문에 안현수가 부활하지 못했던 걸까요? 제가 보기엔 안현수가 선택을 잘한 것뿐 그의 귀화 문제까지 빙상연맹 책임으로 돌리면 그만이라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법처럼 보입니다. 무조건 안현수=선, 빙상연맹=악 구도로 보지는 말자는 말씀입니다.
위에 인용한 코메르산트 인터뷰를 다시 한 번 인용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 러시아는 어떤 점이 더 좋습니까? Что лучше? Сейчас уже лучше?
— 시설도 좋고, 재활 치료도 더 잘 받을 수 있습니다. База лучше. Лечение лучше.
— 그래서 사는 게 더 즐거워졌습니까? А жизнь твоя? — спросил я.— Лучше?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Он не ответил.
파벌싸움에 휘말려도, 기나긴 재활이 기다리고 있어도, 끝끝내 국적을 바꿔야 해도 그는 스케이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조국을 떠나 ‘사는 게 더 즐거워졌냐’는 질문에 답을 못해도 빙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안현수는 대한민국 국적보다 스케이트가, 대한민국보다 올림픽 메달이 더 소중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이니까요.
기사 원문: Kini’s Sportug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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