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는 정말로 로버츠 때문에 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물론 로버츠의 책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누가 감독을 했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로버츠의 투수진 운영을 비판하지만 다저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선을 그나마 가장 잘 틀어막은 팀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공격(정규시즌 경기당 5.41 득점, 전체 1위)
- DS 양키스(정규시즌 9이닝당 4.13 실점) 상대 35이닝 27득점 9이닝당 6.94점
- CS 휴스턴(정규시즌 9이닝당 3.30 실점) 상대 44이닝 29득점 9이닝당 5.93점
- WS 다저스(정규시즌 9이닝당 3.74 실점) 상대 52이닝 28득점 9이닝당 4.85점
레드삭스의 이번 포스트 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이다. 다저스의 투수+수비진은 오히려 올해 9이닝당 가장 낮은 실점을 기록했던 휴스턴보다 거의 경기당 1점 가깝게 덜 실점했다. 결과론으로 욕을 먹어야 한다면, 어쨌든 리그 최고의 투수+수비진을 갖춘 팀보다 훨씬 덜 실점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물론 로버츠의 불펜 운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경기를 보면서 결과론적이 아니라 투수 교체 시점에서 ‘이건 왜 그러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코라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그러지?’ 싶어도 어차피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뭐라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로버츠의 선택이 좀 더 많이 틀렸을 뿐이고, 코라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좀 더 많이 맞았을 뿐이다.
상반된 결과가 전적으로 두 감독의 능력 차이에서 온 것일까? 나오는 구원 투수마다 계속 처맞는 것을 감독 탓만 할 수는 없다. 앵무새처럼 바에즈 바에즈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그렇게도 찾던 바에즈가 스티브 피어스에게 홈런을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결국 야구는 선수가 한다. 누굴 내도 처맞는 구원 투수진과 누굴 내도 틀어막는 구원 투수진의 차이, 혹은 누굴 내도 못 치는 타자들과 누굴 내도 공략하는 타자들의 차이가 아닐까.
보스턴 레드삭스 수비(정규시즌 경기당 3.99 실점, 전체 공동 5위)
- DS 양키스 상대 36이닝 14실점, 9이닝당 3.50점
- CS 휴스턴 상대 45이닝 21실점, 9이닝당 4.20점
- WS 다저스 상대 53이닝 16실점, 9이닝당 2.72점
정규시즌 경기당 3.99점을 내줬던 레드삭스의 투수+수비진은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쉽 시리즈를 거치면서 그들이 1년 동안 해왔던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킴브럴은 거의 매 경기 실점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단지 다저스 타자들이 양키스와 휴스턴이 보여줬던 것처럼 레드삭스의 투수+수비진을 공략해내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게 좌우놀이 때문이라고? 그나마 유리한 매치업을 가져가기 위한 좌우놀이라도 안 했더라면 점수를 더 못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저 정도로 점수를 내지 못한 것이 단순히 라인업을 잘못 짜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야구를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이유는 30개 팀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화끈한 타선(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헛소리를 진리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레드삭스는 2004, 2007, 2013, 그리고 2018년 모두 화끈한 불방망이로 상대 팀을 두들겨 패고 우승하면서 그게 헛소리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하는 팀이다)과 펜웨이파크라는 극단적인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 리그 팀을 합쳐서 경기당 평균 실점 5위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긴 위력적인 투수진과, 야수들의 수비력을 갖춘 팀이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 코라의 공도 있다. 세일, 프라이스, 포셀로, 이발디, 로드리게스. 즉 레드삭스의 모든 선발 투수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모두 구원으로도 등판했다. 등판 로그만 보면 김성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혹사였다. 왜 그래도 안 퍼지냐고?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충분히 이길 게임을 내주는 선택을 하면서도 정규 시즌엔 철저히 관리해서 힘을 비축해뒀기 때문이다.
코라가 잘한 것이라면 시즌을 길게 보고 때론 이보 진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저런 힘 비축은 시즌 막판에 삐끗했더라면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던 다저스에게 가능한 팀 운영이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굳이 이렇게 긴 글을 쓸 이유도 없다. 100승, 103승 팀을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108승 팀(그것도 전혀 무리하지 않고 관리하면서)이 90승, 96승 팀을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92승 팀을 꺾었을 뿐이다. 포스트 시즌을 합쳐 레드삭스는 2018년 총 119승을 올렸다.
그리고 내 기억에, 1998년 총 125승을 거뒀던 양키스 이후 한 시즌 이보다 더 많은 승을 올린 팀은 없다. 더 나은, 역사에 남을만한 팀이 우승했다는 말이다.
원문: 박성용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