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지심리 치료학의 권위자 라파엘 산탄드루의 책 『마음의 함정』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비합리적 신념이 가진 문제점과 합리적 신념으로의 변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어, 이번 글을 통해 평가척도와 자존감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일상 사건 평가척도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하철이 도착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어르신이 새치기할 때
- 친한 친구에게 민폐를 끼쳤을 때
- 미처 모르고 레포트 기한을 넘겨서 제출했을 때
-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여러분은 각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 척도에서 한 번 선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만약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각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제대로 상상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 새치기를 당하면 짜증은 날 테지만 곧 잊어버릴 것이고, 조금 심한 비매너라면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 공감받을 것이다.
- 친구에게 민폐를 끼쳤다면, 일단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 친구에게 그런 것은 아니니 친구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힘쓸 것 같다.
- 레포트 제출이 늦었다면, 점수가 깎이는 게 확실하니 짜증이 날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건 바뀌는 게 없으니, 오전까지 내려고 노력하겠다.
- 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면 그 당시에 그 사실에 대해 끔찍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많은 생각들이 들 것 같고, 이전에 기대했던 방식으로 삶을 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이 생길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평가척도
현재까지 1624명이 응답한 ‘낮은 자존감 체크리스트‘에는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13.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끔찍하다
이 항목을 선택한 사람은 941명으로 참여자 중 반 이상이 선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결과에 따라 그들의 평가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폐를 끼치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치기를 당하거나, 레포트 제출을 넘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것만 딱 떼어서 그다지 나쁘지 않게 평가할까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 중에는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레포트 제출이 늦어도 ‘끔찍하다’와 같은 평가를 내립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고 과정이 이어지겠지요.
레포트를 제한 시간 내에 내지 못했으니 이미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나는 좋은 성적을 못 받을 것이고, 좋은 성적을 못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공부를 못한다는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고, 또… (끝나지 않은 부정적인 사고)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은 또 어떻게 평가할까요? 이미 상향 평준화된 나의 평가 기준은 최악의 상황을 평가할 때에도 상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끔찍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민폐 끼치는 것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끔찍하다’라고 평가할까요? 아마도 저 척도를 벗어난 더 가혹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희망은 없다’라든가 ‘삶이 끝났다’든가 말이죠. 그리곤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겠지요.
+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건 왜 ‘끔찍하게’ 느껴질까요? 내가 민폐를 끼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상대가 나에 대해서 ‘나쁜 평가’를 내릴 것이고, 이는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곤 하는데, 남들도 그렇게 평가하거나, 평가한다고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기에 이런 사건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끔찍하다는 평가가 불러오는 것들
사건에 대해 끔찍하다는 평가는 보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곧바로 연결되곤 합니다. 라파엘 산탄드루에 따르면 한 사건에 대해서 ‘조금 나쁘다’라고 평가할 경우 적당한 불만을 느끼고 말 것이지만, ‘끔찍하다’라고 평가한다면, 불안과 우울을 느낄 것이라고 합니다.
- 레포트 제출 늦음 → “늦었어, 너무 끔찍해” → “이런 것도 제대로 확인 못 하다니 난 멍청해” →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 우울함, 불안함
모두가 이런 사고방식을 거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끔찍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순간,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감정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직면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레포트 제출이 늦은 사건에 대해서 ‘조금 나쁘다’라고 평가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을 거칩니다.
- 레포트 제출 늦음 → ‘조금 나쁘다’ →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쓰지 뭐”
조금 나쁘다는 평가는 레포트 제출이 늦은 것에 대해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하게 합니다. 조금 나쁜 것을 해결하는 것은 조금의 에너지, 조금의 능력이면 되니까요. 이 정도만 필요하니 자연스레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문제를 끔찍하게 평가하고, 나의 전반적인 문제로 확대시킬수록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이미 많은 것들을 망친 부족한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을 어렵사리 추스르고 반복하지 않을 계획을 세우는 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투입하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강박적으로 기한을 체크한다거나, 이전의 과제를 만회하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지나치게 과제에 올인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까?
라파엘 산탄드루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평가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 객관적으로
- 건강한 비교를 통해
- 열린 마음으로
- 건설적으로
-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여러 기준이 있지만, 본인이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한 가지만 마음속에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에게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가?
이렇게 말이죠. 부정적인 평가를 반복해온 사람이라면 일단 멈춰서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그렇게 끔찍한 일일까?”
사실 나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 중에 ‘끔찍하다’라고 평가할 일들은 많지 않습니다. 과거를 떠올려보세요. 걱정했던 것만큼 ‘결과적으로 끔찍한 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말 그대로 끔찍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면, 여러분은 온전한 삶을 살아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건에 대해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조금 더 쉬운 팁을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적용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내 소중한 친구가 레포트 제출을 제시간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대략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혹은 “이번 수업 하나 나쁜 점수를 받는다고 네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실제로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며, 그 친구가 다음에 잘 해낼 수 있으리란 판단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평가 기준을 나에게도 적용할 때입니다.
요약
-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훌륭하다~끔찍하다”까지의 척도로 평가를 내린다.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평가척도는 나쁜 쪽으로 상향 평준화되어있다.
-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직면과 해결을 어렵게 한다.
- 그러니 적절한 평가 기준을 적용하자. 소중한 친구에게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적절한 기준을 찾기가 수월하다.
참고
- 라파엘 산탄드루 (Rafael Santandreu Lorite)의 책 ‘마음의 함정’ (EL ARTE DE NO AMARGARSE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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