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 치료학의 권위자 라파엘 산탄드루는 그의 책 『마음의 함정』에서 우리에게 신경증을 일으키는 두 가지 요인으로 ‘끔찍병’과 ‘필요병‘을 주장했습니다. ‘끔찍병’은 앞서 쓴 글 「끔찍한 평가 기준이 불러오는 낮은 자존감」에서 다루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끔찍하다고 평가할 경우 이에 대해 직면을 어렵게 하고, 해결 가능성을 낮추어 결과적으로 우리의 자존감을 떨어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필요로 바라보는 ‘필요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필요의 의미
우리는 단어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특정 사건, 생각에 대해서 어떤 단어를 붙이느냐에 따라(어떻게 프레임화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달라지고 긍정·부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단어 ‘필요’의 뜻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 必 반드시 필
- 要 요긴할 요
‘필요’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무거운 단어입니다. 그 의미가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평상시에 우리가 말 그대로 ‘반드시’를 떠올리고 쓰지는 않지만, 본 의미에 우리의 생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2. 필요라고 절대적으로 붙일 수 있는 것
여러분에게는 살아가는데 어떤 것들이 필요하신가요? 말을 조금 더 강하게 바꿔서, ‘당신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먹을 것, 물, 보금자리? 여기에 동의하시지 않는 분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때 먹을 것은 5성급 호텔의 셰프가 만들어주는 음식이어야 하나요? 물은 프랑스산 에비앙이어야 하고, 보금자리는 타워팰리스 맨 위층이어야 하나요? 아마도 그렇다고 하실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최소한의 영양분이 있는 음식과 깨끗한(적어도 배탈은 안 날) 물, 얼어 죽지 않을 온기를 제공하는 집이라고 말한다면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를 주체로 ‘필요’라고 정확히 붙이는 데에는 이런 요소들 외에는 없겠지요.
3. 만들어낸 ‘필요’의 목록
물론 우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위 질문을 실제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요. 아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겠지요.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지?
이 질문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다면 대개 이런 것들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높은 성적, 비싼 차, 가방, 내 명의의 집, 이성 친구, 적당하거나 안정된 직장, 여행 갈 수 있는 재산 등이 되겠지요.
이것들이 너무 물리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다면, 이런 요소도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상태, 성장한다는 느낌, 원만한 교우 관계, 여가시간 등.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 물건들, 그 느낌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죠. 그것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것들이 있으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일시적이거나 얻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필요’를 붙이죠. 그것들이 마치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책 『마음의 함정』에 따르면, 대략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필요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대단한 게 필요해
- 나는 편안함을 늘 유지해야 해
- 나에게 스트레스는 없어야 해
- 나는 늘 건강해야 해
- 외롭거나 지루해선 안 돼
- 일은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해
-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해야 해
그리고 제가 만난 다양한 내담자들이 갖고 있었던 필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실수는 없어야 해
- 거부당해서는 안 돼
-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면 안 돼/나는 비난받아서는 안 돼
-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해
- 최대한 열심히 해야 해
- 후회는 없어야 해
- 나는 인기가 있어야 해
- 결혼은 꼭 해야 해
- 부모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해
- 열심히 살아야 해
그런데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이 정말 필요하신가요?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요?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인가요? 현실적으로 얻기 어려운, 행하기 어려운 것들을 ‘필요’라고 이름 붙이게 되면 우리들은 좌절과 무력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살펴보기로 하죠.
- “나는 이런 게 필요해!” → “그런데 나는 없어/있다가 사라졌어” → “나에게는 이런 게 왜 지금 없을까?” →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나의 부모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볼까요?
- “이성친구가 있어야 해” → “그런데 나는 없어/있다가 사라졌어” → “나는 왜 지금 혼자지?” “왜 오래가지 못하지?” → “내가 매력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 외모가 별로라서, 성격이 이상해서”
-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야 해” → “하지만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했어” → “왜 나는 이런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지?” →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우리는 그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없을 때의 현 상태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나 환경을 탓하게 되죠.
4. ‘필요’는 없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우리의 자존감을 보호하면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필요병’에서 벗어나서 대안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사고 실험을 해봅시다. 위에서 말한 높은 성적, 비싼 차, 가방, 내 명의의 집, 이성친구, 적당하거나 안정된 직장, 여행 갈 수 있는 재산,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상태, 성장한다는 느낌, 원만한 교우관계, 여가시간이 필요 없다고 여겨보는 겁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그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정도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우리는 이런 사고의 흐름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이성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 “그런데 나는 없어/있다가 사라졌어” → “없어서 아쉽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야” → “나는 혼자서도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어” “외로움은 친구로도 해결할 수 있어”
- “일을 잘 처리하면 좋겠어” →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는 못했어” → “아쉽지만 괜찮아, 다음에는 더 잘해봐야지”
이처럼 어떤 것에 대해서 ‘필요’를 붙이지 않으면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좌절하거나 무기력하지 않거든요. 또한 나에게 그런 것들이 주어졌을 때 감사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없다 해도, 우리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 기준들이 생겨나지만 그런 것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우리들이 불편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버린다면, 우리는 만족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존에 정말 필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먹을 것, 물, 보금자리’ 뿐입니다. 그 이외에는 불안한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필요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방해자들을 멀리할 것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살고 싶어도 쉽지 않은 이유는, 주위의 수많은 오지랖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치관은 없는데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성친구와 관련해서는 “너처럼 멀쩡한 애가 왜 이성친구 하나 없냐?”와 같은 게 일반적인 예시가 되겠네요.
이 사람의 필요에 관한 가정은 ‘멀쩡한 사람은 이성친구가 있어야 한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이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족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전후 사정은 들어볼 생각은 없이 그냥 말을 내뱉곤 하죠. 그와 비슷한 생각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나 역시 이 사람처럼 필요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필요병이 없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또 하나의 꼰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빠르게 그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그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나의 사고방식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가장 효과적인 태도입니다.
요약
- 필요(必要): 반드시 요구되는 것을 뜻한다.
-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식량, 물, 보금자리 정도이다.
-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무기력을 느낀다.
-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 없다고 여겨보자.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 이런 사고방식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자
참고
- 책 『마음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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