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 씨는 지금의 백종원 열풍을 너무나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가 자라서 성인이 되던 시기는 분명 ‘결핍’의 시대였을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먹거리의 결핍은 물론이고, 사회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마저 결핍된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그는 유독 결핍에 집착한다. 아니, 그의 눈에 결핍되어 보이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말들이 나온다.
고된 삶의 여건으로 인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던 결핍의 시기를 구태여 재현하려는 이들은 ‘사회적 자폐’고, 질이 떨어지는 재료의 맛을 감추려고 말초적 자극이 강렬한 조미료 범벅을 하던 음식을 좋다고 찾아 먹는 것은 ‘맛없는 음식’을 먹는 이상한 행위가 되는 거다. 당뇨병 환자의 잡곡밥이 보릿고개 넘기려 먹던 잡곡밥과 같을 리 없는데도!
이런 식이니 이제 백종원 열풍도 이상하게 읽힌다. 그에게는 ‘맛없는 음식’을 만드는 끔찍한 조미료인 설탕을 마구 퍼부으라는 백종원이 이해가 안 되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이 자꾸 열광을 하는 거다. 결핍을 증오하는 그의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면, 백종원은 윤리적 일탈을 감행함으로써 대중에게 그릇된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철부지인데 말이다.
설탕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그래서 그는 야수의 심정으로 설탕의 심장을 쐈다. 캬 멋있다, 불의에 항거하는 나.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나를 포함한 또래 세대는 황교익과 같은 결핍에 시달리며 자라지 않았단 점이다.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보다 선택권이 많았고, 선택의 가짓수보단 교조적으로 특정 선택지를 강요하는 이들에게 시달려왔다.
본인이 결핍의 시대를 살아본 입장에서는 이게 더 나은 선택지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인간들이라면 신물이 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아등바등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시기는 진즉 끝났는데 그런 얘길 왜 들어야만 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요리방송을 하던 백종원은 달랐다. 묻지도 않고 돼지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들이붓는 아저씨가 아니라, 그냥 본인 취향껏 알아서 하라고 했다. 설탕? 황교익 씨 말대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방송에서 처음 보다 보니 웃겨서 밈이 된 것이지, 그는 설탕을 들이부으라고 강제하지 않았다. 황교익 본인도 조롱 조로 성대모사를 하지 않았나, “괜찮아유~”.
이게 설탕을 들이붓는 죄악감을 씻어주는 마귀의 간교한 속삭임일까, 아니면 당신 알아서 하라는 인생 선배의 넉넉함일까. 참고로 저 말 뒤에는 의례 “적당히 넣고 싶은 만큼 넣어유~”가 붙었다.
본인의 경험에만 갇혀 우매한 중생을 꾸짖으며 끝없이 본인의 정당함을 강변하는 구세대들의 작태야말로 ‘사회적 현상’이다. 세태도 정확히 읽지 못하면서 대체 어떻게 평론을 한다는 걸까?
원문: 한설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