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국토정책 브리프 684호』의 제목은 「지표로 본 지난 40년간 부동산정책의 성과와 과제」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 40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내용이 정말 재미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3가지다.
- 지난 40년간 한국 전체 도시면적의 약 20%에 해당하는 ‘택지’가 추가로 공급되었다.
- 주택매매가격, 토지가격, 전세 가격 모두 가격 변동의 진폭이 경향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 부동산 가격은 거시경제의 경기변동 주기처럼 부동산 경기변동의 양상을 보여주고, 가격 상승기와 가격 하락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택지는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으로 1989년 104.2㎢가 공급되는 등 1982~2017년 사이 연평균 28.1㎢, 총 1,011.8㎢가 공급됨” ― 출처: 보고서
1982년~2017년 사이에 추가로 공급된 택지 면적은 총 1,011.8㎢이다. 이를 평수로 환산하면 ‘3억 평’이 살짝 넘는다. 보고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국의 총 토지면적은 300억 평이다. 이 중에서 도시 면적은 5% 정도이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15억 평이다. 둘을 종합해보면, 한국 총 도시면적의 약 20% 분량에 해당하는 주택이 추가로 공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비율이며, 어마어마한 분량 아닌가?
이러한 수치가 놀라운 이유는 ‘주택 공급 가능성’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기본적인 변수는 아래와 같다. 나머지는 ‘부수적 변수’라고 봐야 한다.
부동산 가격의 기본 변수
- 실물적인 수요-공급
- 화폐-금융적인 수요-공급
주택공급 필요성을 제기하면 흔히 나오는 반론이 “땅이 어디 있냐”이다. 실제로 땅은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엘리베이터 개발 이후, ‘위로’ 지을 수 있다. ‘위로’ 더 짓는 도심, 고밀도 개발은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쓴 『도시의 승리』라는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부동산 정책’을 실제로 책임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서울지역 역시 부동산 추가 공급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고, 공급을 위한 정책수단 역시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지점은 부동산 시장의 가격 변동 폭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 전국 주택매매가격 변동률은 4.6%(1987~1997) → 3.9%(1998~2008) → 2.0%(2009~2017)로 점차 축소됐다.
- 전국 전세가격 변동률 역시 7.5%(1987~1997) → 4.2%(1998~2008) → 4.3%(2009~2017)로 점차 둔화 추세이다.
- 지가변동률 역시 9.1%(1987~1997) → 2.0%(1998~2008) → 1.8%(2009~2017)로 점차 축소되고 있는 추세이다.
세 가지 지표 모두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압축성장 + 세계 최고의 압축 인구 밀도 + 세계최고의 도시화를 했던 나라이다. ‘글로벌 기준’을 염두에 두되, ‘한국적 특수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2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이뤄졌다. 한국은 달랐다. 불과 50년 만에 웬만한 유럽 국가 수준을 따라잡았다.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은 부동산에서도 변동 폭의 증가 그 자체가 중요 문제로 대두된 배경이다.
- 주택매매가격 변동률
- 전세가격 변동률
- 지가 변동률
그런데 이 세가지의 진폭이 모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정부의 관리능력이 과거보다 개선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 정부의 관리능력은 왜, 어떻게 개선된 것일까? 그것은 부동산 분야에서 정책당국이 수요관리 정책수단과 공급 정책수단을 발전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경제학의 역사에서 ‘거시경제학’은 1929년 대공황의 산물이다. 거시경제학 자체가 경기변동 때문에 발생하고, 주요 내용 역시 정부 대응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고 있다. 덧붙이자면 케인즈주의자와 통화주의자 혹은 신고전파 종합이 기본 대립 구도이다.
거시경제학이 경기변동을 다루는 학문인 것처럼, 부동산 정책 역시도 부동산 경기변동의 관점에서 ‘정책수단’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학에서는 ‘경기불황’일 때 적극적 재정정책과 확장적 금융-통화정책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경기변동의 경우도 ‘부동산 하강기’와 ‘부동산 상승기’ 각각에 대해서 적절한 정책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거시경제학의 ‘정책수단’은 재정정책과 금융-통화 정책이지만, 부동산 정책의 정책수단은 금융정책과 조세정책 등이 그 역할을 한다.
이 말은 동시에, 부동산 하강기 때, 조세정책과 금융정책을 활용해서 역대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를 꾀했던 것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한’ 정책으로 봐야 한다. 이는 경기불황일 때 거시경제학적으로 이를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거시경제학에서 재정정책, 금융-통화정책, 그리고 부동산 정책에서 금융-조세 정책은 모두 수요 관리 정책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우, 외국과 달리 부동산에서 유동성 관리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실행된다. ‘거시적’으로는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에 의해 결정되지만, ‘미시적’으로는 기재부와 금융위의 LTV와 DTI 조절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유럽 선진국보다 부동산 가격을 더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이유는 외국과 달리 ‘법-제도적’ 수준에서 LTV와 DTI 조절정책을 통해 유동성 관리에 필요한, 이중적 정책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는 조세 정책 역시 ‘거시적 수단’과 ‘미시적 수단’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보유세, 공시지가, 공정거래가액비율은 각각 ‘섬세함’을 달리하는 정책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수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발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요관리 정책수단이 섬세하고,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시지가, 공정거래가액비율의 ‘무조건’ 100% 상향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약간의 버퍼’를 남겨두는 게 더 바람직하다.
이와 별도로 공급정책에 대한 적절한 정책 tool 역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거시경제학의 경우 다양한 ‘선행지표’가 개발되어 정부의 정책 대응 능력을 보완해준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가격 예측모형을 만들어서 ‘선제적 대응 능력’을 보완해줘야 한다. 그럼, 가격의 진폭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관리’할 수는 있다. 참고로 거시경제학의 미션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1987년부터 2017년까지의 장기 시계열 곡선이 보여주는 함의이다. 특히 ‘부동한 하강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토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주택매매가격 기준으로 부동산 하강기는 크게 4번 정도 나타난다.
- 1990년~1992년의 하강기
- 1997년~1998년 하강기
- 2002년~2004년 하강기
- 2006년~2008년 하강기
이 중에서 하강기의 진폭이 가장 큰 경우는 IMF 구제금융 직후에 발생한 1997년~1998년 하강기가 아니라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택 230만 호가 공급되었던 1990년~1992년의 하강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규모 공급 확대는 ‘IMF 구제금융 사태’보다 더 강력한 가격하락을 불러올 정도로 ‘가격 안정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수요 및 투기적 수요에 미달하는, 찔끔찔끔 소규모 공급을 확대하는 경우, 오히려 ‘가격상승’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팍~팍~ 대규모 공급’을 확대할 경우, 부동산 가격은 ‘확실히’ 떨어진다.
참고자료
원문: 최병천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