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New Yorker의 「Science and Its Skeptics」를 번역한 글입니다. 필자 Gary Marcus는 과학자이자 저술가로 마음에 관한 연구를 하며 자주 그의 블로그에 글을 남깁니다.
최근 과학은 많이 얻어맞았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현대 과학자들은 너무 많이 신뢰하고 불충분하게 확인한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과학저술가이자 선동가인 존 호건(John Horgan)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30년 경력 동안 목격한 과학의 많은 실패 사례에 관해 자신의 우울한 성찰을 기고했다.
자기 경력의 ‘지층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그는 이것이 자신이 ‘과학에 매우 비판적인’ 이유를 정당화한다고 말한다)을 보고하면서 호건은 자신이 다음과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알아챈다.
자체의 과장에 부응하지 못했던 모든 ‘획기적인 발견들’과 ‘혁명들’. 끈 이론과 다른 추정 상의 ‘만물 이론들’, 자기조직화된 임계성과 다른 복잡성 이론들, 혈관신생억제제(anti-angiogenesis drugs)와 다른 잠재적인 암 ‘치료법들’, 우울증 환자들을 ‘더 기분 좋게’ 할 약제들, 알코올 중독, 동성애, 높은 지능지수 그리고 조현병에 ‘대한 유전자들’.
이 모든 것은 참이다. 끈 이론은 제시한 전망에 아직 부응하지 못했다(그리고 결코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복잡성 이론도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암에 걸리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로 알려진 항우울제들은 초기의 과장이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X에 대한 유전자’라는 어법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릇된 기대를 낳을 뿐인 언어적으로 엉성한 표현이다. 과학자와 과학자를 보도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SSRI 항우울제에 실제로 반응하는 우울증 환자도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암은, 특히 초기에 발견되었을 때 치료 가능하거나 예방 접종으로 완전히 방지할 수 있다. 호건의 경력 동안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는 보편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나 적절한 약제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는 일상적으로 처치할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호건이 글을 쓰기 시작한 1980년대에 연구하던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체 전체 염기서열 해독 장치처럼 최근에 개발된 도구와 현재 이해하는 많은 분자 메커니즘의 세부 내용에 놀랄 것이다. 1983년의 생물학 교과서를 읽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전에 쓰인 현대 역사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힉스 보존이 잠정적으로 확인되었고, 네안데르탈인의 DNA 염기서열이 해독되었고, 인간 언어와 결정적으로 결부된 최초의 유전자인 FOXP2 유전자가 발견되었고, 광유전학이 발명되었으며, 태양계외 행성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이 모두가 보증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다. 이런 중요한 주장 가운데 일부와 관련된 문제는 그것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호건은 ‘지난 여러 해 동안 과학의 가장 큰 메타 이야기(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 것)는 동료 평가를 거친 과학 문헌의 대부분이 형편없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문제는 그저 그가 거의 확실히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이야기의 절반을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호건과 《이코노미스트》가 시사하듯, 그리고 내가 지적했듯 재현 가능성의 위기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다루기 위한 빠르게 커지고 있는 거대한 움직임도 존재한다. 몇 달 후에 내가 그 문제를 다시 다루었을 때 나는 재현 가능성의 증가에 집중한 최소한 다섯 가지의 새로운 작업을 보고했다. 이후 그 목록은 계속 늘어났다. 최소한 세 가지의 새로운 발표가 있었다.
- 암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50가지 연구를 입증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
- 과학 연구에서 선도적 포털 가운데 하나인 pubmed.gov에 비판적 논평을 발표할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
- 선도적인 저널에서 재현 가능성을 향상하기 위해 설계한, 재료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논문들에 대한 새로운 증표 체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자 로지어 키빗(Rogier Kievit)이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서술하듯이 “과학의 (건설적) 비판을 위한 방법은 5년 전보다도 지금이 훨씬 더 낫다. [……] 터무니없는 발견 결과들의 반감기는 대단히 감소했고, 심지어 때때로 논문이 공식적으로 출판되기 전까지로 감소했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기예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의 총체적 변화는 최소한 재현 가능성 위기 자체만큼이나 유의미한 메타 이야기다. 그런데 종말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이런 행복한 비밀을 결코 들려주지 않는다.
구경꾼들이 과학 글쓰기에 있어서 회의주의의 증가와 더 명료한 사유를 요청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다. 때때로 나는 과학의 이런저런 분야는 ‘자체의 대중화론자들이 필요하다’고 어느 정도 생색내며 말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과학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과장으로부터 진리를 가려내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데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향한 더 큰 열광이다. 강단 과학은 그런 목소리들을 고무하기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동시에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경박하다. 가장 신중한 과학자들, 그리고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들은 모든 과학은 잠정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 항상 존재할 것이고, 심지어 우리가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은 단지 가끔 올바르지 않은 결론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과학은 자체의 핵심 이전에 밝혀진 것을 의문시하는 끊임없는 충동을 포함한 탐구 방법론과 관련된 것이다. 여러분은 과학을 사랑하는 동시에 그것을 의문시할 수 있다. 올해 초에 돌아가신 제 부친이 가르쳐주었듯이, 그 둘 사이에는 아무 모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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