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야키의 기원은 대략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말기에서 에도 시대 초기. 나름 역사가 깊은 요리다. 고기가 닭이나 토끼, 혹은 생선이었다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 원래 ‘스기야키(杉やき)’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는데 미리 구워놓은 고기나 생선을 설탕과 간장 대신에 된장과 채소를 넣어 삼나무로 만든 상자처럼 생긴 용기에 담아 끓여내는 요리였다.
간에이(寛永) 20년, 서기로 1643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리 이야기(料理物語)』라는 문헌에 등장한다. 『요리 이야기』는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와 레시피를 모아놓은 책으로 현재의 부추시(府中市)에 해당하는 무사시노쿠니사야마(武蔵国狭山) 지방에서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1633년부터니 1630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저술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작자도 미상. 단 책의 보존상태는 상당히 좋아서(일본 국회도서관에 있다) 에도시대 초기 및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그리고 무로마치 시대 말기의 요리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9개 항목으로 나누어 440가지 요리를 소개하고 마지막 항목에서는 요리하는데 필요한 간단한 팁 같은 것까지 포함되어, 에도 시대 전반에 걸쳐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요리책이다. 일전에 ‘다쿠앙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투고하면서 일본 국회 도서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이 책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전국 시대 당시의 ‘짬밥’에 대한 기록까지 있어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다루는 요리의 가짓수가 많은 책이다.
여하튼 스기야키라는 요리에 소고기를 넣어 끓인 것이 간사이 지방의 ‘규나베(牛鍋)’고, 오늘날의 레시피와 비슷하게 말기에 에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먹기 시작한 게 스키야키다. 에도 말기에서 메이지 초기 이전까지는 일본에는 설탕이 귀했기 때문이다.
류큐 열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여 사탕수수 재배로 설탕이 풍부하게 공급되기 이전까지 일본은 설탕 대신에 밀당을 주로 이용했고 밀당 또한 제조방식이 번거롭고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에도 시대에도 서민들이 얻기는 힘든 식자재였다.
그런데 황교익이 주장하는, ‘스키야키가 불고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 설은 일본의 식문화연구가나 사학자, 그리고 요리평론가가 대부분 부정하는 이야기다.
일단 스키야키가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부터다. 반대로 ‘불고기’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이미 왕왕 등장했다. 서울시립도서관에도 당시의 신문기사들이 마이크로필름으로 보존되어 있고, 불고기라는 요리의 명칭은 당시 신문들의 요리 코너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 스키야키가 불고기의 원류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스키야키의 원류에 해당하는 스기야키와 규나베가 고기를 미리 구운 후 양념에 버무려 끓이는 요리라면, 스키야키는 처음부터 끓이는 음식이라 불고기의 원류라 보기 힘든 면도 있다. 일단 일본의 요식업계에서는 1960년에 도쿄 미나토구에 있던 ‘하세진(はせ甚)’이라는 가게가 스키야키 붐을 일으킨 가게로 알려졌고 이게 그 동네 상식이다.
그 이전까지는 소고기를 식재료로 삼을 수 있었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만 간간히 먹던 요리로 알려졌다. 사가(佐賀) 지방의 소고기만을 고집하는 가게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사가규(佐賀牛)의 인기를 견인한 가게로도 유명했으나 아쉽게도 2010년에 문을 닫았다. 아자부쥬방 일대에 이 ‘하세진’의 이름을 딴 가게가 문을 열었지만 이 역시 현재는 폐점한 상태.
반대로 불고기의 경우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중기에 완성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싶다. 일단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간장이 처음 등장한 건 후한 시대 말기의 일이고, 본격적으로 간장이 한반도에서 소비되기 시작한 건 통일신라 시대 이후부터기 때문이다.
육조시대에 저술된 『수신기(搜神記)』에 고구려의 맥적이 소개되긴 하지만 이 책은 요리나 풍습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당시 중국인들의 시선이나 감각으로 보기에 괴이하고 이상한 것을 소개하는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이며, 따라서 맥적에 관한 부분의 신빙성이 없고 상당히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애당초 『수신기』의 내용은 ‘괴이한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귀신이나 토속 설화가 대부분이고 이게 당나라에서 대박 히트를 친 괴기스러운 소설이나 희곡의 등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삼국지연의나 수호지 등에 등장하는 과장된 표현의 원류가 『수신기』다.
물론 고기를 얇게 저며 구워 먹는 풍습이 이미 고구려 시대에 존재했다는 증거로서는 활용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뉘앙스 적으로는 ‘오오오 저기 저 추운 동네 사는 쌈박질 잘하는 새끼들은 고기를 얇게 저며서 간장에 버무려서 구워 먹는대~ 미친 거 아님?ㅋㅋㅋ 하여간 촌 동네 새끼들은 안 돼” 정도인 거라고 보면 되겠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왕왕 등장하는 한성부 일대의 불고기와 너비아니는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약간 전골의 형태로 발전한 게 맞지 싶다. 맥적에서 전골에 가까운 형태로 바뀐 것에 대해 일부 국내 사학자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곤 한다. 특히 한성부 일대와 황해도 지역을 제외하면 여전히 구이에 가까운 형태로 유지된 것이 그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불고기는 칭기즈칸이라는 양고기 전골과 오히려 더 비슷한 요리로 ‘변질’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또 몰라도, ‘스키야키=불고기의 원조’라고 보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냥 ‘아집’인 거지.
여담이지만 불고기 매니아들이 맥적의 전통이 이어진 요리 중 하나로 손꼽는 ‘언양 불고기’도 간장을 베이스로 양념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다. 1950년대 신문이나 요리 레시피 등을 살펴보면 언양 불고기는 소금으로 살짝 간을 맞추어 그대로 구워내는 이른바 ‘소금구이’였고, 나이를 지긋이 잡수신 어르신들도 ‘언양 불고기’는 소금구이로 아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문: 김찬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