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 글은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내가 경제학 공부한 것을 한번 회고형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책이 좋다 나쁘다를 언급하는 것보다 내가 공부하고 읽은 책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먼 어설픈 반숙에 불과하지만 내가 공부한 것들이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비전공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고등학교 2학년
경제학의 “ㄱ”자도 모르던 내가 경제학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사회과 선택과목인 “경제”를 접하면서부터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조순 선생님이 쓰신 『경제학원론』을 고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옮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데 수요와 공급부터 시작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까지 미시와 거시의 굵직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쓴 것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요즘 신입생들 몇몇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경제과목 부교재로 『맨큐의 경제학』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맨큐의 경제학』이 그만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라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맨큐의 경제학』이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맨큐의 경제학』이 수식 없이 쉽게 씌어진 책이지만, 그 내용은 정말 깊다. 친구 중 한 명이 『맨큐의 경제학』 내용을 수학을 써서 복기하는 것을 시도했는데 중간에 힘들어서 때려치웠다고 할 정도. 물론 경제학 원론에 있어서 지금까지 나온 책 중 최고는 Acemoglu, Laibson, and List의 『경제학원론』이다. 이 책은 첫 챕터 오프닝 질문부터 강렬하다. “페이스북은 과연 공짜인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인데, 이에 대한 답은 여러분들께서 한번 생각해보시길. 답은 이 글 맨 마지막에 올리겠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문과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처럼 나도 고등학교 때 목표는 서울대 경제학과였다.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는 바람에 못 가긴 했지만, 어쨌든 수능을 본 후 진학을 결정한 것은 아주대학교 경영학과였고,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름 선행학습(…)을 한답시고 이런저런 경제, 경영 관련 책들을 읽었다. 이때 읽은 대표적 책 두 권이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쓰고 조순 선생님이 번역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다. 부크홀츠의 책은 저 당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 경제학의 사조인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서 최신 경제사조까지 쉽고 재미있게 개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지금 생각해보면 부크홀츠의 책은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준다기보다는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토드 부크홀츠가 이해한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전을 그대로 알려주는 것도 아니거니와,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칼 마르크스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고작 몇십 쪽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케인즈의 『일반이론』 같은 경우는 정말이지 과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거의 반 졸면서 읽어서 그냥 ‘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다시 읽어본 『일반이론』은 말 그대로 “경제학의 고전”이었다. 불황에 정부가 왜 시장에 개입해야 하고 그 정책 수단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단 한 줄의 수식도 없이 논리정연한 글로 풀어낸 케인스의 능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충분한 경제학 지식이 갖춰진 이후에 『일반이론』같은 경제학의 고전을 읽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지만 경제학 내공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주화입마의 지름길이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대학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학년 1학기 때 처음 배운 책이 Alpha C. Chiang이 쓴 『Fundamentals of Mathematical Economics』인데, 이 책은 고등학교 미적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면 독학으로도 쉽게 경제학의 가장 기본인 “최적화(Optimization)”을 배울 수 있다. 사실 경제학의 본령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혹은 “주어진 예산 제약으로 최대한의 효용”을 얻는 것임을 상기해보면 “경제학=최적화“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충분한 수학적 기초가 있다면 이 책으로 경제 분석을 공부하는 것은 좋은 도전이 될 수 있다. 번역본도 국내에 정식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더 쉽게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번역 투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기본 과제이지만.
두 번째로 공부한 책은 Edwin Mansfield 교수가 쓴 『Microeconomics』였다. 당시 경제원론1을 수강한 내 동기 대부분은 『맨큐의 경제학』으로 공부한 데 반해 나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을 기초한 1세대 산업조직론의 대가인 이규억 선생님께 경제원론1을 공부한 덕분에 바로 미시경제학으로 들어갔다. 다만 수리경제학과 최적화 기초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미시경제학을 공부하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이준구 선생님이 쓰신 『미시경제학』을 참고서 삼아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Mansfield 책은 저자가 작고하면서 현재 절판된 상태인데, 미시경제학책답게 미분을 정말 많이 썼다. 지금 나오는 책들 중에서는 Pindyck나 Varian보다 더 수학을 많이 썼으니까. 반면 이준구 선생님 『미시경제학』은 수학을 최소화하면서 정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써진 책이다. 『맨큐의 경제학』으로 경제학 기초를 다졌다면 미시 파트는 이준구 선생님 책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듯하다. 물론 미시경제학의 세부분야로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대학교 1학년 2학기
1학년 2학기 때는 경제원론2를 통해 거시경제학 파트를 배웠다. 이 때 내가 배운 교재가 안국신 외 3인 공저 『현대 경제학원론』이었다. 조순, 정운찬 공저 『경제학원론』과 함께 고시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경제학원론 책이라는데, 당시 나로서는 정말 이가 갈리는 책이다. 쉬운 말이나 개념도 어찌나 그렇게 꼬아서 어렵게 설명하는지.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마음에 안 들어했던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맨큐의 경제학』 거시 파트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낫다.
대학교 2학년
2학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미시와 거시를 공부했는데, 미시는 이준구 선생님 책으로 공부했고, 거시는 맨큐의 『거시경제학』으로 공부했다. 아마 맨큐의 『거시경제학』이 가장 많이 쓰이는 교재일 것 같은데, 당시 교수님 말씀으로는 거시경제학 교과서 중 가장 균형 잡힌 시각에서 서술된 책이라고 한다. 즉 좋게 말해 말 많은 거시경제학 학파에서 어느 한 쪽에 편중되지 않고 잘 쓴 책이고, 나쁘게 말해 개성 없이 무난한 책이다.
맨큐와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교재가 얼마 전까지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Olivier Blanchard(올리비에 블랭샤)가 쓴 『거시경제학』이다. 블랭샤 책은 맨큐와 반대로 케인지언 입장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좋게 말해 개성 있고, 나쁘게 말해 편향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블랭샤 책을 더 좋아한다. 이건 호불호가 명확하고 다분히 케인지언에 편향되어 있는 내 성향과도 연관되어 있다.
하나 더 첨언하면 요즘은 Stephen D. Williamson이 쓴 『Macroeconomics』도 많이 쓰는 듯하다. Williamson의 책은 Representative Agent를 이용해 거시경제학 문제에 미시경제학적 방법론을 적용해서 해결하는 경제학의 최근 트렌드를 따라 씌어진 책이다. 수학은 앞서 두 책보다 좀 많이 사용하지만, 그만큼 논리적으로 명징한 장점이 있다. 사실 IS-LM 같은 경우는 학계에서 언급하지 않은 지 한참 지났는데 아직까지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Williamson 책이 갖는 가치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지금 현재 가장 추천하는 교과서는 Williamson 책이다. 물론 충분한 경제학 지식과 수학 실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입대 이후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교양 경제 서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가 공저한 『괴짜경제학』, 팀 하포드가 쓴 『경제학 콘서트』 모두 내 군대 입대를 전후해서 나온 책이다. 두 권 다 정말 좋은 책이다. 특히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저반에 어떤 경제학적 원리가 적용되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경제적 사고를 익히기에는 좋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들은 세상 모든 일을 다 경제학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경제학 환원주의”역시 지나치게 강하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들이 비판을 받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인 경제학 환원주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경제학 환원주의의 원류는 결혼, 가정생활, 이혼 등 일상의 문제에 경제학을 적용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 대학교 교수인 Gary Becker의 『A Treaties on the Family』부터일 것인데, 정작 중요한 이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까지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되고 있다. 한국의 지적 풍토가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복학 이후
복학한 이후에는 재무 관련 전공 수업들 듣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복학한 이후부터 졸업할 때까지 인상 깊게 읽은 경제학책들을 언급하자면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쓴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과 『세속의 철학자들』 정도가 있다.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책 두 권은 앞에서 언급한 토드 부크홀츠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 같은 경우는 경제학자와 사상에 대해 하일브로너가 간략하게 언급을 하고, 그다음에는 주요 저작에서 중요한 부분을 원전을 그대로 가져와서 보여준다. 『세속의 철학자들』 같은 경우도 토드 부크홀츠보다 훨씬 장중하고 잘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나 개인적으로는 토드 부크홀츠의 책보다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책을 더 좋아한다
학부 졸업 이후
학부 졸업한 이후에는 회사 다니면서 먹고살기 바빠서 경제학 관련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다시 경제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기 시작했는데, 이때 읽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화와 그 불만』, 『시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 로버트 스키델스키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조다단 와이트 『애덤 스미스 구하기』 / 러셀 로버츠 『보이지 않는 마음』 / 아마르티아 센 『자유로서의 발전』, 『불평등의 재검토』 / 한순구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 토머스 셀링 『미시동기와 거시행동』 /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넛지』 / 댄 애리얼리 『상식 밖의 경제학』
이 책들은 모두 정말 좋은 책들이다. 스티글리츠의 『시장으로 가는 길』은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 직전에 출간된 책으로 스티글리츠의 그때까지 주요 업적을 수식 없이 순수한 글로만 풀어서 서술한 것이다. 스티글리츠를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소위 “좌파 비주류 경제학자”로만 오해하고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스티글리츠는 좌파 비주류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주류에 위치한 경제학자다.
반면 스티글리츠의 다른 책 두 권은 이와 반대다. 세계화를 하되, 선진국의 입장에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추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책은 정말 좋은 책이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그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딱히 읽는 것을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느 정도 영어가 된다면 저들의 논문을 읽는 것을 차라리 추천하고 싶다. 특히 하이에크는 경제학 분야 최고의 학술지인 Amerian Economic Review 선정 ’지난 100년 간 출간된 최고의 경제학 논문 20’ 중 하나인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를 보면 그가 가진 지식과 정보에 관한 놀라운 혜안을 알 수 있다.
스키델스키는 영국 최고의 케인스 전문가로 그가 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 이전까지 출간된, 주로 가십에 치중하는 케인스 전기와 달리, 케인스의 삶과 학문적 업적을 종횡으로 엮으면서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1,000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정말 잘 읽힌다. 백미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리평화회담에 영국 대표단 중 한 명으로 참석한 케인스가 연합국의 가혹한 배상정책에 반발하여 사퇴하고 귀국한 후 쓴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다루는 부분. 케인지언의 사상적 기초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케인지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케인스의 학문적 업적과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와 『보이지 않는 마음』은 둘 다 소설이다. 전자는 애덤 스미스 본인이 가장 높게 평가한 책이면서도 정작 사람들에게는 간과되고 있는 『도덕감정론』을 다루면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책이고, 후자는 인간의 행동에서 경제학 원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소설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둘 다 선생님께 추천받아서 읽은 책이고, 정말 쉽게 읽히면서도 중요한 개념들을 빼놓지 않고 익힐 수 있는 책이다. 절판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둘 역시 정말 강력히 추천한다.
토머스 셸링은 로버트 아우만과 더불어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다. 아우만이 수학적 모델로 게임이론을 설명하는 이론가이자 수학자라면 셀링은 핵무기 군축협상에 자문을 한 실무가다. 그가 쓴 『미시동기와 거시행동』은 게임 이론적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분석한 책이다. 게임 이론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고, 한순구 교수가 쓴 책 역시 마찬가지. 다만 한순구 교수 책이 토머스 셸링 책보다 더 쉽게 읽힌다.
『넛지』와 『상식 밖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주목받아서 읽어본 책이다. 둘 다 정말 잘 쓴 책으로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책 두 권 역시 정말 좋은 책이다. 다만 둘 다 쉽게 읽히지 않는, 전문성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센의 사상에 관심이 있지 않다면 그렇게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경제발전과 불평등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대학원 진학 이후
대학원 진학한 이후에는 내 공부에 바빠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과 공부 이야기하면서 몇 권 읽었는데,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 라구람 라잔 『폴트라인』 / 라구람 라잔, 루이지 징갈레스 『시장경제의 미래』 /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라구람 라잔의 『폴트라인』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책으로 시주의 허다한 책들과는 달리 그 원인을 정치적 이유에서 찾고 있다.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고, 라잔과 징갈레스의 『시장경제의 미래』는 바람직한 시장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어떠한 요인들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책은 제도와 규범이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역사적 예들을 통해 분석한 책인데, 애쓰모글루 논문을 요즘 공부하면서 다시 보니 저 책보다는 논문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수식 없이 예를 통해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충분히 훌륭한 것. 마지막으로 페르낭 브로델의 책은 더 붙일 말이 없다. 자본주의가 18세기 산업혁명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발흥하기 시작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제도인지를 알 수 있다.
추가로
이 글의 첫 번째 버전을 쓴 이후 지금까지 추가로 읽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 엔리코 모레티 『직업의 지리학』, 배너지와 뒤플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그니지와 리스트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 미안과 수피 『빚으로 지은 집』 등. 이 책들도 모두 경제학 각 분야의 거장들이 쓴 책이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제 현상을 이해하거나 혹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책들이다.
좋은 경제학책을 고르는 원칙은 멀리 있지 않다. 자극적인 제목을 멀리하고 검증된 저자를 찾는 것, 그리고 저자의 평소 언행이나 저작을 살펴볼 것. 이 원칙만 지킨다면 좋은 경제학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읽고 공부한 것을 회고하면서 경제학책들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여러 책을 읽었지만, 여기서 생략한 책들은 경제학보다는 경영학이나 재무에 가깝거나 금융공학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우리 일상생활은 곧 경제다. 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자전적 회고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누차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회고를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경제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아직도 갈 길이 먼 반숙에 불과하다.
원문: 정재웅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