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의 『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박시종 번역, 성균관대학교 출판부)는 참 좋은 책입니다. 그 책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포괄성-총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국가는 ‘정책 쪼가리’의 결합물이 아니라 정치전략, 산업구조와 연동된 경제적 제약조건, 계급적 입장이 다른 정치-사회 세력이 합의 가능했던 역사적-체험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요컨대 유럽에서 있었던 복지국가는 ‘특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의 산물로 봐야 합니다. 이 말은 그때는 옳았던 방법도 지금은 달라질 필요가 있음을 내포합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는,
-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전략의 산물이며,
-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냉전 및 소련과의 체제경쟁이라는 ‘유럽이 겪었던 역사적 체험’의 산물이며,
- 동시에 ‘포드주의적 생산시스템’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경제발전 단계’의 산물로 봐야 합니다.
최근에는 ‘복지국가를 뒷받침하던 전제조건’이 변화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20세기 복지국가를 잘 이해하되, 20세기에는 작동했지만 21세기에는 작동되지 않는 변화의 지점도 함께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과거에는 ‘정통 맑스주의’가 교조주의적 편향을 보였다면 앞으로는 ‘20세기 전통 사민주의’에 집착할수록 교조주의적 오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복지국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이념 및 실천적 시행착오를 공부하고
- 19~20세기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고
- 19~20세기 후반까지의 유럽 정치-경제사를 공부하는 것을 포함해야 합니다.
-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럽 주요 국가의 정당사-정치사-경제사를 공부해야만 합니다. 유럽도 나라마다 다 조금씩 다를 테니까요.
미리 말하면 저는 ‘20세기 전통적 사민주의’는 변화된 사회-경제현실과 어긋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변인(變因)은 ① 세계화, ② 인구구조 변화, ③ 서비스산업의 확대, ④ 경제의 여성화라고 봅니다.
변화된 현실을 고려한 우리의 대안적 방향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한국적 실정에 맞게 정책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디테일한 정책 내용도 있지만 그것은 별도의 방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저에게 ‘20세기 유럽의 복지국가’에 관한 책 추천을 부탁했는데, 아래에서는 사회민주주의 및 복지국가에 관한 책과 20세기 유럽 선진국, 정치-경제사에 관한 책을 뽑아서 소개합니다. 번호 순서대로 다 읽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먼저 보는 게 항상 장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책
1)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의 이데올로기 쟁투사를 전반적으로 살필 수 있는 책. 강추합니다.
2) 미야모토 타로, 『복지국가 전략』, 논형
스웨덴 사민주의가 형성될 시기, 스웨덴 사민당의 ‘정치전략’을 다루는 책. 경제전략과의 연결고리도 다룹니다. 아주 좋은 책이에요.
3)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사회평론
스웨덴 사민당 내부의 이념적 스펙트럼까지를 상세히 다루는 책.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4)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초기 스웨덴 사민당의 집권 과정에서 ‘정책적 혁신’을 주도했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를 중심으로 스웨덴 사민당, 스웨덴 사민주의를 다루는 책. 비그포르스는 정책적 혁신을 주도한 사람으로 볼 수 있고, 닐스 칼레뷔는 ‘맑스주의의 현대화’를 통해 사상적 혁신을 주도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이병천 외,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 백산서당
1990년대 초반의 책이어서 요즘 관점에서 보면 패스해도 무방한 책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절판이니 중고 구입 또는 제본을 권유합니다.
6) 피터 게이, 『민주사회주의의 딜레마』, 한울
독일 사민당 수정주의 이론가였던 베른슈타인의 전기 혹은 평전 (베른슈타인은 ‘전통 맑스주의’에서 ‘사민주의’로 넘어오던 시절의 이론가-실천가였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패스해도 무방한 책입니다. 1980년대 한국 운동권에게 베른슈타인은 ‘배신자=변절자’와 동의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지 봤던 책인데 ‘참 훌륭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7) 송병헌, 『왜 다시 사회주의인가』, 당대 출판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주요 이론적 전개를 잘 요약하는 책. 칼 맑스,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베른슈타인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안 보고 패스해도 무방합니다. 절판이니 중고 구입 또는 제본을 권유합니다.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와 관련된, 경제 및 경제사와 관련된 책
1) 필립 암스트롱 외,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 두산동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주요국가 정치-경제사를 개괄한 책입니다. 아주 좋은 책으로 강추합니다. 절판이니 중고 구입 또는 제본을 권유합니다.
2)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해』, 비봉출판사 / 김호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 청목출판사
비봉출판사의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는 약간 옛날 책입니다. 절판이니 중고 구입 또는 제본을 권유합니다. 김호균 교수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만 봐도 무방합니다. 말 그대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 사민당이 아닌, 독일 기민당의 작품입니다. 독일은 기민당이 복지국가를 주도합니다. 왜? 독일 사민당에서 ‘강경 좌파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3) 한넬로레 하멜,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 아카넷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동독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교한 책.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도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절판이니 중고 구입 또는 제본을 권유합니다.
4) 전창완 외,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 당대
한국에서 제도주의 경제학을 공부했던 진보성향 교수들이 같이 엮어서 쓴 책. 20세기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주요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 기업지배구조, 기업-금융 관계, 노사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정이환, 『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 후마니타스
유럽 복지국가는 ‘정치’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노동’ 또한 사회 전체를 떠받치던 커버넌스의 중요한 한축이었습니다. ‘노동시장’의 관점에서 유럽 복지국가를 분석하는 책입니다. 아주 훌륭한 책. 여건이 되면 정이환 교수님의 다른 책 『한국고용체제론』(후마니타스)과 『경제위기와 고용체제』(한울) 역시 강추합니다.
6) 조영철,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민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는 조영철 박사님의 훌륭한 책. 강추합니다. 에스핑 앤더슨의 세 가지 모형이었던 미국, 독일, 스웨덴을 중심으로, 20세기 경제사의 전반적 흐름을 ‘제도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잘 다룹니다. 더불어 박정희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제사의 전반적 흐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책.
7) 김진방 외, 『미국 자본주의 해부』 『유럽 자본주의 해부』, 풀빛
둘 다 한국 제도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의 책으로 아주 좋은 책입니다.
8) 고세훈, 『영국노동당사』, 나남출판사
영국노동당사 전체를 개괄적으로 정리한 책.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