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요즘 잘 지내?
최근, 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곁을 잘 내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어서 당시에는 웃어 넘겨버렸지만, 지나고 보니 괜시리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공공연히 구실을 만들어 나간 자리에서 맘에도 없는 호들갑을 떨고 속에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털어내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했다. 정말 많이 웃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 그런 애매한 느낌.
드문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하는 이런 감정들. 분명히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들. <당신이 옳다>는 이러한 일상의 불안과 초조, 마음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법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최근에 범람하는 ‘힐링 에세이’처럼 지나치게 내면으로 파고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보수단체 시위에서 행패를 부리는 노인, 공황장애를 앓는 연예인, 강남 원룸촌에서 고독사에 이르는 청년들, 혹은 자발적으로 비행기를 추락으로 몰고 간 한 파일럿의 이야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케이스들을 통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나’의 결핍을 짚어낸다.
필요한 건 그저 작고 확실한 공감뿐
이 책에서 지목하는 결핍의 이유는 명쾌하다. 사소하게는 일상의 트러블을 감추기 위해 나의 감정을 감추고, 사소한 거짓말을 거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스스로를 차단하고 마음을 거세하려 하는 행위는 결국은 존재 자체를 삭제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를 되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호사가들은 손쉽게 현대인의 자존감 부족을 지적하고, 자존감을 북돋을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지금 이 상태의 나’를 긍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회복의 출발점을 조금 다른 곳에 둔다.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무조건적인 위로를 제안하기보다는 타인을 향한 정확한 공감의 행위를 출발점으로 삼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타인의 치유하기 위해 정확한 공감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공감의 주체가 역으로 공감받고 그 자신을 단단히 세우게 되면서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속마음에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자기 내면의 여러 마음들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통이자 축복이다. 자기 내면을 알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서 축복이고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고통이다. – 272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공감의 싸이클이 정확한 방법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모든 학습이 그러하듯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특별한 노력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특별히 공감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유달리 뛰어난 감수성이나 남다른 예민함이 없더라도 정확히, 그 상대를 겨누는 공감의 행위는 약간의 노력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정말 필요한 공감을 위한 어떤 방법들
저자는 정확한 공감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동시에 ‘공감’이라는 행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이를테면, 상대를 위해 무조건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정확한 공감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동조를 보내는 것 역시 공감이 아니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세우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몰입하는 것 역시 공감은 아니다. 행복함을 느낄 수 없는 행위는 절대 공감이 아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감은 “외부의 상황이나 조건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대화의 초점”에 두는 것이다. 막연한 칭찬이나 공허한 좋은 말로 상황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가장 우선에 두되, 이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현재의 문제에서 분리해서 볼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상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면서도 그 행위와 그 행위를 하는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는 않는다.
이런 섬세하고 정확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건강하게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로소 상대를, 또 나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로서의 공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매일 ‘파인 다이닝’에 갈 수 없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어쩌면 날 때부터 주어진 천부적인 능력 같기도 한 ‘공감’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정신과 전문의로서 커리어를 쌓아오며 겪은 혼란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 현대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 어떻게 개별 인간이 지닌 맥락들을 휘발시키는지, 그리하여 우울증이 어떻게 ‘형해(形骸) 만 남’은 ‘진단의 휴지통’이 되어가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흔히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적절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양질의 휴식을 취하고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적절한 조치 없이 방치해두면 큰 병으로 번지기도 한다. 아마 후자의 경우에 필요한 것이 증상에 대한 의학적인 처방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당장 내가, 내 주변인이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없이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멀리있는 전문가에게 나의 일상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공감의 행위를 통해 각자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이 표방하고 있는 ‘적정심리학’이라는 개념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요리인이 만든 음식은 맛있지만, 매일매일 그런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전문 요리인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양파를 다지고 닭뼈를 고아서 치킨스톡을 우려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고 그만큼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라면 마트에서 기성품 치킨스톡 큐브를 사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시 물어보자면, 요즘 어때?
모든 일에는 적합한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자주, 그리고 빈번하게 마음의 문제에 부닥친다는 점이다.
달이 차고 기울듯이 자꾸만 변하는 마음의 문제를 우리는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서 혼란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달이 차고 기우는 일은 그저 달이 차고 기우는 일일 뿐이다. 달은 제가 만들어진 대로, 제 나름의 옳은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이 옳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막연한 긍정이 아니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이라는 렌즈에 대한 긍정이다. 그리고 그 렌즈를 통해 사물을 투명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렌즈를 든 손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흔들림 자체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 흔들릴 수는 있다. 붙잡고 의지할 곳이 있으면 그렇다.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면, 핸드폰을 들고 카톡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요즘,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