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중상위권 4년제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동아리 및 이것저것 활동도 하고 대학 친구도 만나는, 그게 23살까지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20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그리고 공익 생활을 하며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전형적인 20대의 모습’은 대학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서울 4년제 대학생의 삶’이 인구분포로 따지면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점은 여행하면서도 많이 배웠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유럽 배낭여행은 당연하게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서 가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동행으로 만난 어떤 20대에게 유럽 배낭여행은 1년간 편의점과 극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며 준비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추억이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 이들이 그들의 커뮤니티 내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어쩌면 매우 소수의 삶임을 우리는 당연히 잊고, 아니, 전혀 모르고 산다.
소위 금융 혹은 재테크에서 나오는 말은 매우 합리적이고 근사하다. 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마코위츠의 이론. 최적의 투자점을 제시한 CAPM.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자산 배분부터 나이대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생애주기 포트폴리오까지, 너무나 좋은 이론들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은 수익률로 나타나는 ‘%’에만 집중하느라 그들의 방법론을 따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일반적인 투자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극소수라는 것을 잊고 있다. 이런 ‘호모 이코노미쿠스’에게 투기자산에 배팅한다는 것은 카지노 딜러에게 돈을 던지고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업해 대략 4,000여만 원의 초봉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소수의 ‘여러분’이 아닌, 나머지 일반적인 경우의 삶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월급이 150~200만 원 정도라는 사실을 안다면 ‘여러분’은 놀랄지도 모른다.
자취를 하지 않거나 아껴 쓴다면 더욱 남겠지만, 아니라면 이 중 대략 생활비와 세금 등으로 보통 60~80만 원가량이 지출된다. 만약 자취를 한다면 방값으로 40~50만 원가량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 이렇게 한 달 고정비만 120~130만 원가량이 든다. 그렇다면 남는 돈은 고작 30~70만 원 정도다. 중간값인 50만 원을 1년간 모아도 겨우 600만 원, 10년을 모아도 겨우 6,000만 원이다.
사실상 직장이 아닌 이상 연봉의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목돈이 들어갈 경우 이마저도 다시 제로로 수렴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리의 마법’은 그냥 신기루일 뿐이다. 슬프지만 ‘티끌 모아 티끌’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투자’ 혹은 ‘재테크’라는 단어는 실천하고 싶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고 현실적으로 별 효력도 없다.
이런 와중 로또보다 현실적인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비트코인(암호화폐)이다. 기존 투자라는 것들이 겨우 1년에 5%, 10%, 많이 벌어봐야 20%인 와중에 하루 만에 몇십 퍼센트씩 수익이 난다. 일주일만 지나면 2배, 3배, 10배, 20배가 되는 마법의 문이 열렸다.
1,000만이 1억이 되려면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단 몇 달 만에 그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뉴스와 지인들의 소식을 통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거기다 심지어 24시간 투자도 가능하다. 이처럼 완벽한 화수분이 어디 있는가!
〈나루토〉 속 ‘팔문둔갑의 체문’은 일시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결국 사망에 이른다. 비트코인이라는 꿈 또한 그랬다. 멈출 줄 모르고 2,000만 원 까지 상승했던 가격이 1,500만 원, 1,000만 원, 800만 원, 600만 원…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도 짧았지만 현실로 되돌아오는 시간 또한 짧았으며 그 고통은 배가 되었다.
암호화폐 거래소 고객의 대부분이 20~30대 남성이라 한다. 그중에는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20~30대’가 대부분 포함될 것이며,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실제로 나 또한 몇천만 원으로 몇억, 몇십억을 벌었다가 다시 원금으로 복귀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고는 했으니.
문제는 하루에 수십 퍼센트씩 움직이던 비트코인이라는 아이템이 ‘투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넘어서는 안 되는 ‘사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암호화폐에 투자는 하지 않고 시세만 지켜보던 나조차, 주식 시세를 보며 마치 거래정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 전 재산을 투자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떨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아마 마약같이 좀 더 유행하는, 좀 더 변동성이 큰, 좀 더 대박이 날 그 무언가에 새롭게 투자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런 이유로 모멘텀 효과 또한 점점 더 강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