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집권 초기, 국제유가는 배럴당 140불대를 돌파하는 와중에, 강만수의 고환율정책으로 환율도 1500원대를 향해 하늘을 뚫고 있었다.
유가폭등 + 환율 폭등 크리가 연속으로 터지니, 국내 휘발유가격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 되었다. 당시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500원대에서 2,000원대로 수직상승하던 참이었다. 임기 초기에 유가가 그모양이 되니, 정부는 오만 욕을 다 퍼먹고 있었다. 그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름값을 올릴 수 있는 4가지 주체
1) 산유국이 기름값을 올림 -> 산유국 책임
대형 금융사의 석유 투기가 더 큰 책임이지만 그냥 편하게 산유국으로 하자. 실제로 당시 대형 금융사는 엄청나게 석유를 사재기하고 있었으며, 일부 헤지펀드는 원유선물을 사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유조선 내에 있는 기름을 통째로 사버리는 호기까지 부렸다고도 한다.
2)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환율 폭탄을 맞았음 -> 정부 책임
참여정부 말기 달러당 900원대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MB정부 이후로 슬금슬금 오르더니,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결국 1500원대까지 치솟아 버렸다. 그러나 뻔히 예상할 수 있었던 키코사태에, 그 많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없었던 건 정부의 무능이다. 결국, 환율 관리에 완전 실패하고 시장 폭주를 부른 MB의 책임이 작다고 하는 말도 거짓말이다. 물론 글로벌 위기인만큼 MB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그 역시 잘못이지만.
3) 엄청나게 흑자내는 정유사
정유업계는 당시에도 메이저 회사들은 거의 1조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MB정부와 언론은 정유업계가 많이 남겨 먹으니, 토해 내라는 소리를 했다. 뒤에서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정유사들의 이익은 국민들의 뒤통수를 쳐서 얻은 것이 아니라, 뼈빠지게 기술개발하고 수출해서 번 돈이다. 정당하게 세금 내고 나면, 그들이 향유할 수 있는 정당한 이익이다.
4) 맨날 골프치러 다닐 거 같은 주유소 사장
역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요즘 주유소 사장들 골프치러 다니기 매우매우 힘들다. 한달한달 버티기도 힘든다. 동네 주유소들이 ‘직영 셀프’로 바뀌는 것을 많이들 보셨을 것이다. 이는 주유소 사장들이 못 버텨서 나오는 현상들이다.
정말 정유사와 주유소의 책임인가?
MB 정부는 알뜰 주유소를 마구 만들어서 기름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고 유통마진을 최소화하고 석유값을 낮추겠다고 말했다. 비난의 추를 정유업계와 주유소 사장들에게 돌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겁한 행동이었다. 그저 정부 욕먹기 싫으니깐, 국민들 중에 일부를 끌어내서 대신 조리돌림을 시키는 것이다. 정유사나 주유소는 정말 억울했다.
정유사의 흑자는 주유소에 납품하는 휘발유나 경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익의 대부분은 비정제상품(나프타 등 화확원료제품)에서 나오며, 이 상품들은 대부분 수출한다. 우리나라의 5대 주요산업에는 석유화학이 꼭 들어가며, 우리나라 정유사의 경쟁력은 매우 뛰어나다. 실제로 정유사의 정제마진은 4%에도 못 미친다. 이걸로 그 거대한 공장의 감가상각을 쳐내고, 흑자까지 내었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주유소는 더 억울하다. 주유소의 판매마진은 현재 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2008년 당시에는 7% 수준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벌써 절반 수준으로 마진이 줄어든 것이다. 이 마진율로 카드 수수료 내고, 서비스 휴지 돌리고, 세차장 공짜로 돌려 준다. 5만원 주유하면 2,000원 남는데, 이걸로 세차 한번 돌려주고, 휴지 하나 주고 나면 얼마 남을까 생각해 보라.
시판 휘발유 가격의 세금비중은 50%를 넘는다. 휘발유는 국제 원유가격이 매일 공시되기 때문에 원가구조가 엄청나게 파악하기가 쉬운 상품이다. 배럴당 원유가격을 파악하고, 리터당으로 나눠 본다. 여기에 세금을 붙여 계산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이걸 진짜 열심히 파헤쳐서 기사도 열심히 쓴 기자가 중앙일보 노태운 기자이다. 2010년 당시 노태운 기자가 자기 블로그에 올린 휘발유 가격 분석 그림이다.
이 표 하나만 보더라도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주유소 업계가 아예 단 한푼의 비용발생도 없이 노마진으로 판매한다 하더라도 리터당 120원 밖에 낮추지 못한다. 요즘 신용카드만 잘 써도 리터당 150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는데…
노태운 기자의 결론은 그래서 “세금을 낮춰야 한다”였고, 내 결론은 “그래도 세금을 낮출 수는 없다”였다. 특히 휘발유는 차량용으로만 쓰이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서 소비를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이유이다. 일부 생계형으로 억울한 곳은 선별적으로 보조해주는 수 밖에 없다고 봤다.
책임을 미루는 정부의 모습, 문제를 키운다
땅은 좁고 차는 많은 나라에서 휘발유 가격이 폭등을 하면 국민들은 누구나 화를 낸다. 그럴때 리더십이 나온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 욕을 먹으면서 열심히 사정을 설명한다.
2. 생깐다.
3. 다른 욕먹을 놈을 내세워서 같이 깐다.
이명박은 3번을 택했다. 이것은 정말로 비겁한 리더십의 전형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었으니 지난 5년간 매우 피곤했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정부는 알뜰주유소를 지어대면서 안그래도 포화상태인 주유소를 더더욱 과포화로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국내 적정 주유소 숫자를 대략 8천 개 수준으로 잡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주유소는 현재 12,000개를 넘어가는 중이란다.
경쟁이 격화되어 우리가 싼 값이 재화를 쓰는 것 자체야 뭐가 나쁘랴. 그런데 정부까지 뛰어들어서, 이미 포화상태인 시장에 더욱 공급을 밀어넣는 행위는 어떤 경제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시장만능론자도 욕하고, 케인즈주의자도 욕하고, 맑시스트도 욕한다.
국가의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진짜 아니다. 굉장히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국가경제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분야이면서, 국민 개개인의 편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그냥 ‘국민들이 휘발유 비싸게 쓰니깐 불쌍해서 정부가 나서야겠다’ 수준도 아니고, ‘해외에서 자원개발 많이 해 오면, 짱짱 멋짐’ 수준도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이 수준조차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비겁함으로 기업과 국민들을 파렴치로 몰아붙였다. 그 댓가를 우리가 아직도 치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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