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쿠키점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자녀의 태명을 따서 지었다는 미미쿠키는 유기농 재료를 이용해 만든 착한 쿠키를 표방하며 각종 맘카페를 위주로 입소문을 탔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호평 글이 올라왔고, 그를 믿은 많은 사람이 해당 쿠키점을 찾았죠.
충격적이게도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다던 수제 쿠키가 모두 타 대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사다가 포장만 새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구매자들은 분노했고 결국 해당 쿠키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사기 행각인데 재밌는 점 한 가지를 관찰했습니다. 분명 의도적으로 사기 친 쿠키점의 잘못인데도 일부 네티즌은 쿠키점에 호평을 올렸던 이들을 비난하고 나섰거든요.
유기농 수제 쿠키 특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거나, 몸에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호평 글들이 갈무리되어 각종 유머 커뮤니티로 퍼졌습니다. 해당 글을 쓴 작성자들은 옮기기도 민망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유기농의 효과를 느꼈다는 간증을 한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유머 커뮤니티 비판자들의 생각과 달리, 이런 현상은 제약업계에서는 무척이나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저희는 이걸 플라세보(placebo) 효과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효과가 있다고 믿으면 효과를 보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진부한 예로는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것도 플라세보 효과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도 시원하다고 믿고 마시면 달고 맛있는 약수같이 느껴진다는 것이죠. 여기까진 들어보신 분들 많으실 텐데, 실제로 플라세보 효과가 얼마나 빈번하게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실 겁니다. 실제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1983년에 다양한 위장관 장애에 대한 치료요법으로서 메토클로프라마이드(metoclopramide)를 투여하는 게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려는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과도한 포만감(≒더부룩함),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연구진은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쪽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주고 다른 한쪽은 위의 약을 투여하는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물론 당연하게도 지금도 많이 쓰이는 메토클로프라마이드를 투여한 쪽이 더 뛰어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진짜 약을 투여한 환자 그룹의 65%는 과도한 포만감(Fullness)이 개선되었다고 보고했고, 메스꺼움(Nausea)이 개선되었다는 사람도 77%에 달했습니다.
재밌는 건 여기부터입니다. 가짜 약을 먹은 집단의 22%도 과도한 포만감이 개선되었다는 보고를 했으며, 메스꺼움이 개선되었다는 사람도 31%에 달했습니다. 평소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껍다던 사람이 아무런 유익한 성분이 없는 가짜 약을 먹고도 30% 정도가 병이 나아버린 것입니다. 미미쿠키를 먹고 유기농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는 것 정도는 양반인 수준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관찰되다 보니, 플라세보 효과를 배제하기 위한 가짜 약을 설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약을 제공하는 의료진도 해당 약이 진짜 약인지 가짜 약인지 모르게 하는 이중맹검(doble-blind) 방식이 여기에 덧붙었습니다. 가짜 약을 먹고 메스꺼움이 사라졌다는 환자들을 보다 보면 누군가는 웃음을 참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삼중맹검(triple-blind) 방식까지 등장했습니다. 약 먹는 환자나 약을 나눠주는 의료진은 물론 최종적인 환자들의 응답을 통계 처리하는 통계팀에서도 모르게 하는 식입니다. 진짜 약이 가짜 약보다 효과가 낮게 나오는, 다시 말해 진짜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면 데이터를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매서운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짜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 유독 이상한 것 아니냐는 거죠. 무작위로 배정을 한다고는 하지만 하필 가짜 약을 먹는 그룹에 경증인 환자들이 몰리고, 저런 플라세보 효과를 유독 잘 받는 사람이 몰렸을 가능성이 없다곤 말 못 하니까요. 그래서 보건 의료계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차설계(cross-over design)라는 것을 도입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서 A그룹은 진짜 약을 주고, B그룹은 가짜 약을 주는 것은 동일한데 특정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잠시 휴약기(washout period)를 가지고 난 다음 다시 시험을 시작하는 겁니다. 다만 아까와는 반대로 A그룹은 가짜 약을 주고, B그룹은 진짜 약을 주는 식이죠. 이런 방식을 택하면 A그룹에 유독 이상한 사람이 많이 몰렸더라도 그 이상한 사람들이 가짜 약을 먹었다가 다시 진짜 약을 먹기 때문에 그룹 간의 편차란 게 사라집니다. 훨씬 더 신뢰도 높은 방식인 것이죠.
현대 의약품은 이런 방식으로 철저하게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받고야 시장에 나갈 수 있습니다. 플라세보 효과가 의외로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깨닫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마저도 충분히 파악된 상태니까요.
약국에서 흔히들 보는 타이레놀이나 지르텍 같은 약들도 이 과정을 거쳐서 효과를 검증받은 것이기에,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면서 미미쿠키 사태 같은 사기를 당할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식약처의 승인을 받고 시판이 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부작용 등을 모니터링하여 재심사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심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일부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효과를 봤다는 주장을 한다고, 또는 전통적으로 그렇게 먹어온 지 오래되었다고 본인들이 파는 약은 아무런 검증을 할 필요가 없다고요. 가짜 수제 쿠키의 사례에서 보듯 단순한 미각에 대한 거짓 반응도 저 정도로 나타났고 실제 임상시험의 통제된 환경에서도 가짜 약을 먹고 나았다는 사람이 30%였습니다.
임상시험은커녕 데이터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의 약을 두고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 저는 무척 개탄스럽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의약품은 플라세보 효과를 배제할 수 있는 검증을 받아야만 하니까요. 유기농이나 수제 같은 온갖 좋은 수식어를 붙였던 쿠키의 배신,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원문: Coldtongue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