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나는 모든 것에 지쳐 있었다
잘 맞는 전공과 멋진 교수님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심지어 남들보다 1년을 더 공부해 들어온 학교였다. 애정을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문제는 과도한 애정이 오히려 나를 넘어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데 있었다. 타고난 소심함을 억지로 참아가며 ‘인싸’가 된 나는 마치 언젠가부터 아주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서 있었다. 서울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담양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티브이 광고화면에서 보았던, 흰 눈이 가득 쌓인 대나무숲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을 뿐이다
참고로 그때는 낮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는 여름이었는데, 한겨울의 새하얀 대나무숲을 떠올리고 담양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 버리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충동의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누가 요구한다면 ‘내 마음속의 여행 온도계’가 올라갔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내 마음속에는 ‘여행 온도계’가 하나 있다. 체온이 급속도로 올라가면서 심한 감기몸살을 앓는 것처럼, 마음속 여행 온도계의 눈금이 쭉쭉 올라가서 39도쯤이 되면 나는 끝내 항복하고 만다.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 『내성적인 여행자』, 386쪽
일상에서 멀어진 곳에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성적인 여행자’라고 소개한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는 삶을 무려 15년째 반복하고 있는 여행 중독자다. 남들이 단 한 번 결심하기도 힘든 일을 이렇게나 대범하게 반복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내성적인 여행자’라고 정의한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는 데 남들보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 흔히 ‘붙임성 없다’고 묘사되는 소심한 성격에, 툭하면 미아가 되어버리는 소문난 길치가 15년 차 경력의 베테랑 여행작가라고?
사실 나는 아직도 여행을 떠날 때마다 두렵다.
사고나 불운이 닥치면 어떡하나, 무척 걱정스러워서 떠나기 전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여행 온도계는 이렇게 속삭인다. 사고가 무서워서, 질병이 두려워서,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운이 두려워서 피하기만 한다면, 도대체 뭘 새로 시작할 수 있겠냐고.
- 앞의 책, 387쪽
여행 에세이집인 『내성적인 여행자』를 읽다 보면 ‘내성적’이라는 말과 액티브(active)함의 결정체인 ‘여행자’라는 명사의 조합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먼 곳으로 떠나서도 여전히 타고난 소심함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여행이라는 과정에서만 생기는 필연적인 과정들이 실시간으로 충돌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건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따라보자. 그녀는 계획에 의존하지 않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정신없는 맛집 지도와 엑셀에 적힌 빽빽한 일정표가 이끌지 않는 그런 여행 말이다. 이것은 그녀가 ‘타고난 보헤미안’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려다 여행할 이유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뻔한 경험 덕분이다.
이상하게도 뉘른베르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다. […] 그렇게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내가 신발을 벗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종일, 양말도 없이 맨발로 낯선 도시를 걸었다. 아무도 내 발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무렇지 않음’이 정말 좋았다.
- 앞의 책, 24~25쪽
뮌헨에서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다가 잡힌 물집 때문에 단화를 사 신었지만, 그마저도 발이 아파 마침내 벗어든 신발을 들고 맨발로 뉘른베르크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내게 거대한 비유처럼 다가왔다.
아주 멋스럽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발이 망가지는 구두에서, 그보다 굽이 낮은 단화로, 결국엔 맨발로 내려오는 여행의 과정은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시달리던 내 과거를 절로 떠올리기 만든다.
다시, 그날의 담양을 떠올려보자면
나를 하루아침에 담양으로 떠나게 만든 것도 여러 가지 종류의 강박에 지쳐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기껏 재수까지 하며 온 학교에 적응하는데 보기 좋게 실패하고, 소심한 나를 이용하는 것만 같은 주변 사람들이 미워서 나는 그만 영영 떠나고 싶었다. 들뜬 기분으로 버스 티켓을 예매한 것도 잠시, 하지만 여행은 상상했던 것과는 영 다르게 흘러갔다.
지도상으로는 터미널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민박집은 실제로는 택시를 타고도 20분 이상 들어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티브이에서 광고로 본 대숲의 장엄함을 상상하고 찾아갔던 죽녹원은 수많은 관광객의 이름이 문신처럼 새겨진 대나무가 가득했다. 가장 기대했던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는 알고 보니 걸어서 5분이면 끝나는 매우 소심한 코스였다. 이 모든 엉망진창 앞에서 나는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당시의 경험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바로 그런 변수들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택시를 잡아주던 터미널 근처의 주민분. 먼 곳까지 홀로 찾아온 어린 학생이 기특하다며 손수 저녁밥을 차려 주신 민박집 사장님, 그곳에서 만나 나를 막내딸처럼 태우고 다니며 계획엔 없었던 다양한 여행지들을 구경시켜 주신 옆 방의 투숙객 가족분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지쳐 떠나간 여행에서 나는 ‘사람’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서울행 버스 안에서 느꼈던 뭉클한 감정들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더블린의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더블린 사람들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 또 다른 택시기사에게는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세요?’라고 물어보았다.
기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나의 침대죠. 저는 우리 집 침대가 가장 좋아요.’
- 앞의 책, 138~139쪽
여행을 간다고 인생이 뒤바뀌지는 않겠지만
집보다 공항이 더 익숙한 이 ‘프로 여행러’는 여행을 간다고 삶에서 ‘극적인’ 반전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쉽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왜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일상의 현재진행형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담양이란 낯선 도시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지겨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는 간단한 정답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도 생기면서 말이다.
참고로 그해 여름의 짧은 여행이 내 삶 자체에 끼친 영향은 “0”에 가깝다. 여전히 나는 많은 것에 지쳐 있고 매일같이 많은 것에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것은 나를 괴롭히는 것에게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언제든지 맨발로 뛰쳐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언젠가 딛게 될 그 발걸음은 절대 단순한 도피가 아닐 것이기에, 작은 모험을 끝내고 돌아올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한다. 쉴 틈 없이 째깍거리는 내 마음속 여행 온도계의 눈금 소리에 오늘도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이유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야 할 때, 우리 안의 소중한 꿈을 지켜야 할 때, 잔잔해 보이기만 하던 의식의 표면을 헤치고 나와 적들과 싸울 수 있는 용감한 괴물은 바로 우리 안의 가장 멋진 가능성, 잠재된 영웅적 투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앞의 책, 385쪽
※ 해당 기사는 해냄출판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