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번 아시안 게임 축구를 꽤 재미있게 본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번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병역에 대한 손흥민의 수난기가 한국인들의 원혼을 충족시킬 정도의 서사를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시아게임 축구는 웬만한 축빠가 아니라면 별 관심을 가질 만한 이벤트는 아니다.
아시다시피 축구는 야구에 비해 국내에서 그다지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 판돈이 커진 것은 처음엔 순전히 손흥민 때문이었다. 다른 대표 선수들 또한 선수 인생에 있어 병역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각자의 인생은 모두 소중하고 별 대책 없이 우리는 젊음을 끊고 고난의 병역을 이행해야만 했다.
그런데 손흥민의 병역이라는 판돈은 냉정하게 살펴보면 꽤 이기적인 것이다. ‘손흥민 정도라면 병역을 면제받더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국위를 선양한다’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엄밀히 보면 대중의 즐거움이라는 효용과 교환되는 성질의 것이다. ‘손흥민이 자신의 실력을 유지해서 다음 월드컵을 나가게 된다면’ 혹은 ‘챔스에서 활약해 그 경기를 시청하게 된다면’ 같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암묵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 효용이 한국 남성의 병역에 대한 원한보다 컸을 때 병역 면제는 내면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렇기에 손흥민은 아시안 게임의 우승과 상관없이 최소한의 명분이 있다면 대중의 분노를 잠재울만한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그러니 롤 대표팀에 한자리를 주어 병역을 면제시켜줘야 한다는 드립도 나왔지 않겠는가?). 이번 아시안 게임을 관심 있게 본 대중은 기본적으로 손흥민의 혜택을 바라면서 대회를 본 셈이다.
또한 병역 혜택을 위해서라면 병역만큼의 고난이 필요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지뢰 제거를 시킨다는 발상은 아마 이런 류의 감정에 뿌리를 둔 것이었으리라. 손흥민은 월드컵에서 고통을 겪었다. 투혼을 발휘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대표팀의 전력으로 인해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그는 병역 혜택을 볼 수 있는 3번의 기회를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잡을 수 없었다. 이번 기회가 그에게는 마지막이었다.
팀 차원에서 본다면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2-1로 진 것이 적절한 어그로를 끌었던 것 같다. 대표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이러면 마땅히 혜택을 받아야 할 월드스타 손흥민을 무능한 대표팀이 군대에 보내버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축구라는 경기는 우리가 독일을 이겼듯 전력이 강한 팀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게임이다. 토너먼트에 돌입하여 4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아의 강자 한국의 아시안 컵 우승은 1회뿐이며,아시안 게임 우승도 4회에 지나지 않았다(그것도 2회는 승부차기가 없었던 초기의 공동 우승이었다). 우승한다는 것이 이번 야구 대표팀의 우승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확연히 와 닿았다.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키르키스탄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는 손흥민이 겨우 한 골을 넣어 예선을 통과했다.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의 처절한 혈투였다. 전반적 황의조가 1골을 넣고 동점을 허용한 후 다시 절정의 결정력으로 한 골 더 넣는다. 그러나 후반 초반 연속골을 내주고 3-2로 역전당한다. 하지만 상대의 결정적인 실수를 놓치지 않고 손흥민이 볼을 뺏어 황의조에게 패스해 3-3, 연장까지 가게 되었다(이 실수야말로 대표팀의 천운이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황의조가 다시 페널티킥을 얻어 예상치 못했던 황희찬이 페널티킥을 극적으로 성공시켜 이긴다. 페널티킥을 찰 때 손흥민이 뒤돌아 쳐다보지 못하는 장면은 사람들의 입에 끝없이 오르내리고 감독은 인터뷰를 하며 울먹거린다. 이 명승부가 아시안 게임을 손흥민 한 명이 아닌 전체 팀의 고난으로 승화하는 계기가 된다.
캐릭터도 풍성해진다. 황의조는 절정의 결정력으로 ‘빛의조’에 등극하고 황희찬은 월드컵 때의 플레이로 먹었던 욕을 이번에는 캐릭터로 먹게 된다. 황의조가 얻은 페널티킥을 넣고 ‘내가 황희찬이다’라는 메시 세레모니를 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캐릭터가 다양해질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준결승에서 승리, 박항서 감독의 패배는 많은 사람에게 정말로 히딩크를 떠올리게 했다. 이승우는 두 골을 넣었다.
결승전이 재미있었던 것은 한일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절실한 강팀 한국이 라이벌 일본 팀을 쉽게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본의 21세 드립으로 인해 진검승부 한일전은 성립되지 못했다). 전반이 지나고 후반 중반에 들어서자 월드컵 한국-독일전이 떠올랐다. 전력이 우수한 팀이라도 골을 넣지 못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판의 승부에 그동안의 고난까지 더해져 판돈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0-0이었지만 긴장감이 넘쳤고 가장 결정적인 위기는 오히려 한국이 맞았고 조현우가 막아낸다. 마침내 연장전에 들어서게 되고 이승우와 황희찬이 한 골을 넣어 2-0으로 전반을 마쳤다. 하지만 후반 5분을 남기고 한 골을 허용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쫄깃한 경기가 되었고 경기는 2-1로 마치게 된다.
연장전에 3골이 나오는 경기는 처음 본 것 같다. 경기 내용을 떠나 절실함이 느껴지는 명승부였고 짧은 기간 연장에 연장을 거쳐 이뤄낸 승부라 하나같이 대표팀을 응원했다. 금메달 이후 축포처럼 끊임없이 터지는 손흥민과 군대에 대한 개드립들은 대표팀의 좋은 서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병역에 이토록 민감하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기도 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지도층의 불공정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전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현황을 보면 이는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기도 하다. 또한 군대라는 조직이 개인에 가한 필요 이상의 모독을 대다수가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울분과 그 보상심리를 연료 삼아 우리는 선수들을 콜로세움에 세우고 운명을 건 승부를 한바탕 즐긴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공식적인 중계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결승전 중계를 보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경기 후반 중계진들이 병역에 대해 애써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점이었다. 솔직한 진행을 하는 안정환은 (이를테면 월드컵 독일전에서 ‘욕먹기 전에 잘하지’라고 말하는) 선수들의 노력과 투혼을 꼭 메달로 보상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캐스터에게 솔직히 ‘외국 언론이 아시안 게임을 관심 있게 본 것은 손흥민 때문이었지만 이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의 강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프로 방송인/축구인답게 병역을 말하지 않는 듯 노련하게 말했다.
하지만 중계진들이 에둘러라도 병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이런 고난의 과정이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구 결승전에서 해설진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야구, 대표팀은 축구와는 반대의 서사를 만들며 우승했기 때문이다. 물론 야구 자체가 아시아에서는 몇몇 나라들에서만 활성화된 게 가장 큰 제약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