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부터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노예근성으로 공짜로 일해서는 안 된다.
2018년 전경련 행사에 폴 크루그먼이 초청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전경련 부회장은 폴 크루그먼에게 “정부가 강제로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고 고자질(?)을 했다. 그러자 폴 크루그먼은 전경련의 기대와 달리 이렇게 말했다.
52시간이나 일한다고요? 한국은 선진국 아니었습니까?
폴 크루그먼의 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그중 핵심은 한국 경영의 후진성이다. HR, 시스템, 프로세스, 혁신성 등등 어느 것 하나 경제 규모에 걸맞은 수준이 없다. 지금의 경제 규모는 정상적인 게 아니다. 하청을 쥐어짜고, 비정상적인 노동력을 갈아 만든 모래성 위에 놓여있다. 사상누각인 것이다.
“그냥 사람 쓰지 일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하냐”는 말을 노하우랍시고 말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성실이 미덕이고, 야근과 철야가 성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나라. 신입은 일 가르쳐주고 경력 쌓는 걸 은혜로 알고 무급으로 일해야 하고, 하청업체는 대기업 포트폴리오 쌓는 걸 영광으로 알고 공짜로 해줘야 하는 나라.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시스템, 프로세스, 혁신의 필요를 사람을 갈아가며 대충 때워온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 8시간 일하는 동료보다 더 잘하려고 12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8시간 일해야 나오는 결과물을 공짜로 해주는 사람이 만들었다. 스스로 부지런하다 여기는 워커홀릭들. 돈보다 열정이 더 가치 있다는 이상주의자들이 일은 많이 하고 대가는 적게 가져가니까 생태계 자체가 죽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은 수면시간과 여가시간을 빼앗긴다. 나비효과로 기업들 전반에 시스템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람을 갈아 해결하려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인간은 성인 기준 개인차는 있겠으나 8시간 정도 수면을 취해야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수면을 통해 강화되기 때문이다. 렘수면 시에는 기억의 강화가 일어나고, 비렘수면 시에는 무의식적으로도 뇌가 활동하는 능력의 강화가 일어난다.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비율은 1:3이고, 90분 주기로 반복된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귀중한 수면을 빼앗기면서 일한다.
마치 모든 게 노동자 탓인 양 글을 썼지만 본의는 그게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은 큰 영향력을 가진 경영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영향력이 적다 하더라도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을 했으면 대가를 받자. 일을 한 만큼 대가를 받자.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원문: 여현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