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챠라는 시스템
최초 정액 기반의 요금제에서 부분 유료화라는 과금 형식이 창설된 이후 기간제 부스트 서비스, 종량제 아이템, 기간제 아이템 등 다양한 시스템이 고안되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고객의 지불 의사와 한계에 맞춰 최대한의 과금을 끌어내는 가격 차별화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까지 가장 효율적인 모델은 확률형 아이템 판매, 즉 가챠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방식이 가진 사행성에 대한 이슈가 있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는 가챠라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방식에 따른 문제이지 가챠 자체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우 낮은 확률로 얻는 결과물(이하 SSR)이 있어야 깰 수 있는 스테이지가 있다거나 PVP 중심이라 해당 아이템을 못 가진 자는 계속 밟혀야 하는 등 게임 진행에 아주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게임에선 가챠는 사용자를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임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군요.
반면 SSR이 강하긴 해도 게임 진행상 필수는 아니라면, SSR은 자기만족을 위한 기호품 내지 사치품에 머무르게 되며, 확률형이라는 형태로 이를 구입하고 말고는 사용자의 의사에 맡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챠로 얻는 SSR을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이 경우에도 가챠는 일종의 선택형 시간 단축 서비스에 머무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SSR을 소비자의 선택적 기호품의 영역으로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가챠는 기본적으로 원하는 상품에 대해 지불할 비용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의 비용이 모두 매몰비용이 된다는 점에서 가챠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구조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낮은 확률을 딛고도 가챠를 사도록 가챠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이 여러 가지로 연구되지요.
이런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게임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최근 플레이하는 ‘콘트라 리턴’과 ‘우타 마크로스(歌マクロス)’인데요, 전자는 횡스크롤의 런앤건 스타일 슈팅 게임이고 후자는 마크로스의 캐릭터와 노래를 베이스로 한 리듬 게임으로 공통점이 눈꼽만큼도 없어 보입니다만, 시스템적으로 ‘꽝’의 효용을 높임으로써 가챠의 매력을 보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 콘트라 리턴
1-1. 왕후장상의 씨를 나눴다… 왜?
‘콘트라 리턴’(이하 콘트라) 자체는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코나미의 고전 명작 콘트라를 소재로 만든 모바일 슈팅-RPG 게임으로 전민돌격(한국명 백발백중)과 유사하게 총기의 조각을 모아서 총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메타 게임 구조를 가집니다.
총기의 조각을 모아서 새로 획득하거나 별 개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 조각은 영웅던전에서 얻을 수도 있고, 가챠에서 얻을 수도 있지요. 가챠에서 새로운 총기를 얻을 땐 아이템 자체가 떨어지고, 이미 가진 총기가 중복 당첨되었을 땐 조각으로 줍니다. 이 구조 자체는 도탑전기에서 확립된 것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렌지색 SS → 오렌지색 S → 보라색 S → 보라색 A 등 총기별로 태생적인 등급을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가챠로 물건을 판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가챠에서 나올 수 있는 물건의 개수, 즉 가챠 풀의 크기입니다. 아무리 상품을 확률로 판다고 하더라도, 나올 수 있는 결과의 경우의 수가 적다면, 확률은 금방 정복되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SSR이 나올 확률은 5%인데 SSR이 4종류 밖에 없다면 개별 SSR의 확률은 1.25%이고, 가챠를 80번만 뜯으면 얻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고 SSR의 확률을 1%로 낮추게 되면 아예 SSR 획득 자체가 어려워서 사용자가 그냥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SSR 획득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지만 그중 내가 원하는 SSR을 얻기는 어렵게 만들어서 Near-Miss 상황을 계속 만드는 것이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데 유리합니다.
일본의 가챠 게임은 캐릭터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계속 더해나감으로써 이런 가챠 게임의 구조를 유지해나갑니다만 도탑 전기나 나루토, KOF98UM 같은 IP 기반 중국 RPG 게임들은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의 숫자가 이미 제한되어있다는 문제를 안았습니다. 캐릭터의 수는 이미 한정되어있는데 손오공은 원래 세니까 SSR, 야무치는 약하니까 R 이런 식으로 쪼개버리면 각 등급별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의 수가 정말 제한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들 게임들은 캐릭터의 등급을 없애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스킬이나 특성 등에 따라서 실제로는 좋은 캐릭터와 나쁜 캐릭터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시스템적으로는 모두 대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누굴 뽑아도 SSR인 것이고, 그중 내가 원하는 SSR을 얻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하지만 이것도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있을 때나 성립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대륙의 에반게리온처럼 원작에 등장하는 에바와 파일럿 합쳐서 10개도 안 되는 상황에선 원작에 나오지도 않던 X30호기니 R15호기와 같은 가상의 기체를 끼워 넣어도 가챠를 운용할 만큼의 수량이 나오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등급을 아예 나누어 SSR에 해당하는 오렌지색 3성 기체들의 획득 확률이 낮은 명분을 확보하고, SSR들을 끝없이 쌓아 올리는 구성을 취합니다.
콘트라 리턴 역시 위 에반게리온과 비슷한 문제를 안았습니다. 물론 총기 아이템 막 찍어내는 거야 어려울 리 없겠습니다만, 각각의 총기들에 대한 차별화에서 문제를 안은 거지요. 게임상의 총기들은 돌격소총, 저격총, 로켓포, 분사기, 기관포 5가지로 나뉘는데, 여기서 이미 총기들의 특성과 그로 인한 게임플레이가 거의 완전히 결정 나버립니다.
캐릭터 게임이라면 힐러 중에도 즉시 힐을 주는 캐릭터, DOT 힐을 주는 캐릭터, 힐 량은 적지만 쿨이 짧은 캐릭터 등과 같이 여러 방법으로 분화할 수 있겠습니다만 총기 갖고는 그런 식의 차별화를 할 여지가 없지요. 물론 FPS에서는 데미지, 탄창 개수, 정확도 등으로 분화를 합니다만 콘트라 리턴은 횡스크롤 슈터거든요.
총알이 앞으로 한발 나가느냐 3방향으로 나가느냐 스플래쉬 데미지가 있냐 없냐와 같은 정도가 아닌 차별성을 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성은 이미 총기 종류에서 쪼개졌고요. 특성에 따른 수평적 차별화가 힘들기 때문에 수직적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S는 A보다 강하고, 같은 S라도 오렌지S가 보라색S보다 구하기도 힘들고 더 셉니다. 하지만 조각 모음에 의한 성급 성장(일본식으로 말하자면 한계돌파)이 게임 내 주된 성장축이기 때문에 보라색 S도 조각 모아서 6성 만들고 부지런히 강화하면 조각을 못 모아서 3성에 머무른 오렌지S보다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오렌지S 조각 모아서 4-5성 만들면 가볍게 보라색S를 제쳐버리겠지만 이건 돈이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들어가는 길입니다.
1-2. 수평 성장을 유도하는 장치들
아까 한 카테고리 내에서 개별 총기에서의 차별화는 힘들다고 해도 총기 유형 별로는 특성이 강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콘트라 리턴은 수평 성장의 동기 부여가 약해진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안게 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수집할 이유가 줄어든다는 거지요. FPS와 마찬가지로 총기의 특성과 플레이 경험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 아닌 총기는 얻을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저격 플레이를 좋아하는 유저는 저격총을 선호하고, 저처럼 닥돌을 좋아하는 유저는 SMG나 돌격소총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SSR이라고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에 안맞으면 별 감흥이 없어지고 그만큼 가챠 만족도가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신상품을 투입해도 그게 자신이 선호하는 유형의 총기가 아닐 경우 스킵해버릴 가능성도 큽니다.
콘트라 리턴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평 성장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보강해 넣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위 스크린숏에 있는 일일 콘텐츠 ‘군계대수(军械大帅)’입니다. 이 콘텐츠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각 정해진 유형의 무기로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숏은 수요일인데, 수요일은 로켓포의 날이군요. 해당 유형 무기의 성장 정도에 따라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는데 당연히 난도가 높아지면 보상이 좋아집니다.
저난도에선 저등급 무기의 조각이, 고난도에선 고등급 무기의 조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3일 차와 7일 차엔 최고 무기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티켓을 줘서 무/저과금자도 고등급의 조각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라지만 실제로는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진제 먹여서 팔기 때문에 실제로는 고과금 유저들에게 일주일에 2번 3만 원씩 뜯어가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또한 5개 유형별로 무기를 1개씩 등록해두면 추가 스탯을 주는 무기 코어(武器核芯) 시스템도 있습니다. 게임에 직접 들고 들어가는 무기는 2종뿐이고 실제로는 이 두 무기만 육성하게 되는데, 나머지 총기들도 적어도 유형별로 1개씩은 꾸준히 성장을 시키도록 유도하지요.
1-3. 모든 꽝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무기 도감
위에서 언급한 군계대수든 무기코어든 종류별 1개씩의 최강자를 모으도록 유도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최강자가 아닌 나머지 아이템은 어떠한 의미도 부여받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꽝인 것이죠. 물론 가챠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면 다 꽝이긴 합니다만 가챠를 지속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선 꽝은 꽝이지만 아주 꽝은 아닌, 절반 정도의 성공이라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는 쪽이 중/저과금 사용자의 공략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아까 언급한 것처럼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어쨌든 동급 캐릭터라는 식으로 위안 삼을 거리를 제공하거나 캐릭터 수집에 보너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비인기 캐릭터의 수집을 성장 축에 끼워 넣음으로써 꽝에 게임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자의 멘탈 데미지를 케어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콘트라 리턴은 무기 도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꽝에 게임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감은 총 5가지의 총기 유형별 도감으로 나뉘고, 현재 가진 총기와 아닌 총기를 보여주며 총기를 더 많이 수집할수록 보너스를 줍니다. 여기까진 사실 일반적인 도감 콘텐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말이죠.
하지만 실제 도감의 동작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보통은 도감은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유도하거나, 수집한 항목의 개수를 바탕으로 보상을 주곤 합니다만 콘트라 리턴의 도감은 도감 경험치에 의해 도감 레벨이 오르고, 도감 레벨이 오르면 스탯 보너스가 증가한다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도감 경험치는 새로운 총기의 획득, 기존 총기의 성급 성장에 의해 획득할 수 있습니다. 경험치 → 레벨 → 보너스의 구조기 때문에 적어도 이 도감 내에서는 최하급인 녹색 C급도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같은 성급에 대해서도 등급이 높을수록 경험치가 높긴 합니다만 어쨌든 낮은 등급이라도 경험치가 발생하고, 때로는 경험치 획득으로 인해 도감 레벨이 오르고 보너스 스탯을 받는 긍정적인 경험을 줍니다.
획득 자체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급 성장에 대해 보상을 준다는 점에선 데스티니6의 도감 시스템과 유사해 보입니다만 사용자 경험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콘트라 리턴의 성급 성장은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것이지, 이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콘텐츠는 아닙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조각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어 있고, 충분히 모이면 그냥 성급을 올리면 됩니다.
특정 아이템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 자원을 추가로 사용하는 방법도 제한되어있지만(영던 일일 제한 리셋이라거나 가차 구입이라거나), 이를 하급 아이템이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급을 높이는데 들어가는 자원은 해당 아이템에만 관여할 뿐, 다른 아이템과는 공유되지도 않지요. 그래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잡템 조각이 쌓이고 빨간불 들어와서 들어가 보면 어라 성급이 올랐네? → 도감 경험치가 올랐네? → 도감 레벨이 올랐네? → 전투력이 올랐네?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선물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도감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뭔가를 희생하거나 할 필요 없이 말이죠.
보상의 종류 또한 다르죠. 데스티니6는 위 스크린숏처럼 골드나 젬과 같은 자원을 돌려줍니다. 제가 데스티니6를 많이 플레이해보지 않아서 저 잡캐를 6성으로 진화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350젬에 4,500골드보다 큰지 작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력 캐라면 어차피 6성을 가야 하니 겸사겸사 개평 받아 간다고 생각할 텐데 그렇지 않은 잡캐를 저 젬 벌겠다고 자원 쏟아 키울 것 같지는 않네요.
반면 콘트라 리턴은 영구적인 스탯 보너스를 주기 때문에 훨씬 효용이 큽니다. 한창 성장이 정체되어있을 때 잡템 얻었더니 도감 경험치가 오르고 도감 레벨이 올라 전투력이 올라갔다. 그래서 새 스테이지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등과 같이 훨씬 좋은 경험을 줍니다.
1-4. 구조적 문제를 캐주얼하게 극복하다
지난 IGC 강연에서의 주제는 ‘중국 게임의 캐주얼함’ 입니다. 멘탈에 데미지를 주지 말고 살살 달래가면서 끌고 가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도탑전기의 BM과 메타 구조도 같은 기조에 서 있었고요.
콘트라 리턴은 그동안 도탑전기가 플레이어 멘탈 데미지를 케어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대다수 요소를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기 힘든 불리한 구조를 가진 게임입니다만 이를 매우 영리하게 보완해냈습니다. 특히 제가 높이 사는 부분은 SSR의 가치를 높여 고과금자를 대상으로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N이나 R 등 꽝에 해당할 바닥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전체 유저에 대해 가차 상품의 매력을 높였다는 점입니다.
원하는 것이 안 나와도 적당히 멘탈 데미지를 덜 받고 적당한 성공으로 위안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이 중국식 가챠의 핵심이라고 할 때, 꽝에 대한 데미지가 적다는 부분은 오히려 기존의 나루토나 드래곤볼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본질적으로 캐릭터보다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장비 장사임에도 말이죠.
2. 우타 마크로스 歌マクロス
두 번째로 소개할 게임은 일본의 우타 마크로스(이하 우타마크)입니다. 마크로스 시리즈의 캐릭터와 노래를 소재로 한 리듬 액션 게임이죠. 팬심으로 열심히 플레이합니다만 사실 리듬액션 게임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배경 화면이 너무 화려해서 노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구질구질한 노트가 등장하는 등 평가가 미묘한 구석이 있는 게임입니다만, 뭐 나쁘진 않습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구성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모바일 리듬액션 게임인 아이돌마스터와 유사합니다. 가수들을 모아서 유닛을 구성하고, 이 유닛들을 데리고 게임에 들어갑니다. 노트에 맞춰 입력하면 점수를 받고 유닛들이 자동으로 스킬을 발동하곤 합니다.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가수가 메인 상품이 아니고, 가챠에서 가수를 뽑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말이죠. 네, 이 게임도 가챠에서 캐릭터를 팔지 않습니다.
2-1. 캐릭터는 장식일 뿐입니다
가챠에선 양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마크로스는 캐릭터의 수량이 적은 IP입니다. 파일럿이나 뭐 조연까지 끼면 조금 늘 수 있겠지만 ‘가수’라고 한정 지어버리면 민메이, 바사라, 밀레느, 쉐릴님, 배추벌레, 아귀, 왈큐레 4명 해서 총 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챠 장사를 할 수 없지요.
초사이어인 손오공을 빨간 손오공 노랑 손오공 찢어진 손오공으로 불려서 장사한 드래곤볼 폭렬 격전처럼 얼굴에 철판 깔고 양을 불리는 시도도 생각해볼 만합니다만, 이 게임에선 가수가 중앙에 3D로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캐릭터 베리에이션 하나하나가 다 돈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게임은 고심 끝에 가챠를 해체하지 못하고, 원작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가챠로 파는 무리수를 둡니다. 게임 내에선 ‘플레이트’라고 부릅니다.
캐릭터 자체도 약간의 속성과 스탯 보너스를 가지긴 합니다만, 게임의 핵심이 되는 스킬도, 스탯도 모두 플레이트에 부여되어있습니다. 특히 플레이트 내부에 있는 메인 보드에 일종의 스킬트리 형식으로 여러 스탯 보너스가 깔려있고, 게임을 플레이해서 얻는 자원들을 소비해서 각각의 보너스들을 해금하는 형식으로 성장합니다.
플레이트의 희귀도는 별의 개수로 표현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보드가 더 길어집니다. 스킬트리 형식이라고 해도 선행 노드를 언락해야 후행 노드가 언락될 뿐, 한쪽 루트를 파면 다른 쪽을 파기 힘들어진다거나 하는 구성은 아닙니다.
그래서 게임의 핵심이 되는 대부분의 항목은 플레이트에 모여있고, 캐릭터는 플레이트를 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도 각각의 캐릭터와 상성이 맞는 플레이트가 있고 안 맞는 플레이트가 있다는 것과 같이 캐릭터가 게임적으로 아주 무의미하진 않습니다.
2-2. 꽝이 모여서 캐릭터와 발키리를 얻는다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트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핵심 요소가 담겼더라도 플레이트는 캐릭터에 비해 수집 욕구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주력 상품은 플레이트이지만, 플레이어의 수집 대상은 캐릭터의 옷과 발키리로 나눠집니다. 플레이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판매되는 형식이죠.
게임 상엔 플레이트와는 별개로 ‘에피소드’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특정 캐릭터의 특정 의상이나 특정 발키리와 연결되어있지요. 예를 들어 위 스크린숏에 있는 “What’bout my star?”라는 에피소드를 완수하면 셰릴 님의 의상을 한 벌 얻는 식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각각의 에피소드엔 에피소드 포인트가 있고 에피소드 포인트가 일정량이 될 때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컴플릿에 도달하면 의상이 해금되지요. 발키리 에피소드면 발키리가 해금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포인트는 관련된 플레이트의 수집과 육성으로 획득합니다. 각 플레이트는 특정한 에피소드에 속하고 한 에피소드엔 복수의 플레이트가 연결됐습니다. 그리고 해당 플레이트의 노드 중 ‘에피소드’ 노드를 열면 에피소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지요. 이게 플레이트의 조합 완성으로 컴플릿되거나, 해당 에피소드의 모든 플레이트를 다 끌어모아야 컴플릿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얄짤 없이 컴프 가챠에 걸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포인트 형식이고 목표점이 전체 플레이트를 다 모아야 할 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에 컴프 가챠 요소는 아닙니다. 이미 에피소드를 완성한 이후에도 연관된 플레이트의 에피소드 포인트를 얻으면 아무 에피소드에나 포인트를 더해줄 수 있는 만능 포인트로 전환해주기도 합니다.
2-3. 플레이트의 매력 보완 계획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핵심 스탯을 담고 많이 모으면 의상을 해금할 수 있다고 해도 이 플레이트 나부랭이 자체가 가지는 매력은 캐릭터에 비해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그 외 추가적인 장치로 플레이트의 매력을 보완하는데요. 예를 들어 이미 있는 플레이트를 중복으로 얻을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성급을 1단계씩 올려줍니다. 흔히 말하는 한계돌파죠.
보통 이 한계돌파는 제일 좋은 SSR에서나 의미가 있습니다만, 우타마크에선 조금 다릅니다. 1성부터 한계돌파로 계속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급이 올라가면 노드 트리가 확장되거나, 추가 에피소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시크릿 보드가 열리는 등의 특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낮은 성급의 중복이 떠도 에피소드 해금에 도움이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돈 내고 사기엔 다소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1일 3회, 가챠를 공짜로 뽑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우정 포인트와 같은 자원 소모 없이, 그냥 하루에 세 번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시간이 4시~12시, 12시~20시, 20시~4시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몰아서 받을 순 없고, 꾸준히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에너지 충전 한계가 작기 때문에 틈틈히 자주 들어와야 하는 게임 특성상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고요, 중국 게임에서의 밥 타임과 같이 주기적으로 사용자에게 특정 시간에 접속하는 습관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리텐션 유지에 아주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플레이트의 가치만 높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2-4. 가챠 계의 데칼챠, 데칼 가챠
처음 우타마크를 플레이했을 때 가챠 화면을 보고 정말 뿜었습니다. 가챠가 아닌 데칼 가챠라니요. 그리고 가챠를 돌린 다음에 또 한번 뿜었습니다. 캐릭터도 아닌 장면 따위를 가챠로 팔다니 이거 정말 데칼챠구나! 그런데 게임을 조금 플레이하면서 콘텐츠를 들여다보니 이게 정말 캐릭터를 팔 수 없는 게임에서 뭐든지 팔려고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정리
사실 가챠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건 캐릭터입니다. 게임적 의미를 부여해 가챠 풀에 추가하면서도 전체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쉽고, 또 게임적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캐릭터 고유의 매력으로 상품화할 수도 있지요. 캐릭터 가챠가 흔히 말하는 왕도라면 콘트라 리턴이나 우타마크의 경우는 사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사도라고 하면 이 두 게임은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보통 사도라고 한다면 부작용은 있지만 효과가 확실하거나 쉽고 빠른 길이어야 하는데 이 두 게임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길을 걷으니까요. 나라도 다르고 게임 장르도 다릅니다만, 이 두 게임이 캐릭터가 아닌 물건을 가차로 팔기 위해 선택한 방향은 가차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꽝에 시스템적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멘탈 데미지를 줄여주고 유의미한 보상을 준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어쩌다 보니 과금 관련 쪽을 연구하고 고안하는 게 직업이긴 합니다만 사실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수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행복 과금’입니다. 얼마를 쓰든 사용자가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쓴다면 그게 공급자와 사용자 모두를 만족하는 궁극의 길이 아니냐는 거지요. 뭐 지리산에서 도 닦는 이야기로 보이긴 합니다만 사실 가챠는 이 ‘행복 과금’을 이루기엔 그다지 좋은 도구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꽝, 실패로 끝나니까요.
요즘 가차에 대한 소비자 여론이 적어도 인터넷상에선 꽤 험악해 보이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건 가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차의 운영 방침상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얻어봤자 키우는 데 하세월이다, 기껏 키워서 쓸 만해졌더니 더 센 게 나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예쁜 여자가 줄을 선다던데 막상 S대 가봤자 그런 거 없더라… 하는 이야기처럼, 고난의 길인데 그걸 해낸다고 뭔가 딱히 행복해지지도 않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가챠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인데, 그중 아래쪽 즉 꽝에 대한 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콘트라와 우타마크의 사례가 재미있어 소개드렸습니다. 캐릭터 중심의 게임에서도 유저 불행도 관리 측면에서 충분히 도입해볼 만한 디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문: 잡상그룹부설게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