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끝내주는 잡지가 나왔어. 모노클이라고 하는.
뉴욕에 머물던 동생의 목소리에서 보물을 발견한 자의 감격이 전해졌다. 10년 전 모노클 창간호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동생의 안목은 옳았다. 이후 모노클은 잡지의 역사를 다시 썼다.
모노클의 성공 비결, 스타일
모노클의 성공 요인을 추리고 추리면 ‘스타일’이다. 더 정확히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시사 이슈를 스타일리시하게 전달한 것이 먹혔다. 이는 오너이자 발행인인 타일러 브륄레가 지닌 독특한 특성에서 연유한다. 브륄레는 종군기자 출신이다. 전장에서 총상을 입은 명예로운 기억도 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가 생뚱맞은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읽고 싶은 ‘인테리어 잡지’를 창간한 것.
잡지의 이름은 <월페이퍼>. 월페이퍼로 브륄레는 업계에 첫 번째 태풍을 일으킨다. 1990년대에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월페이퍼는 쌈박한 힙스터 상품이 되었다. (결국 월페이퍼는 타임 워너 그룹에 1억 6300만 달러에 매각된다)
종군기자 출신의 인테리어 잡지 발행인, 브륄레는 자신 안에 내재된 양면적인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 종군기자답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브리핑해주겠다는 구상을 한다. 인테리어 전문가에게 스타일은 절대적인 가치였다. 모노클의 탄생이다.
고급스러운 질감의 검정색 표지,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디자인과 일러스트. 눈 밝은 사람들은 전 세계 정치, 경제, 디자인과 같은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패셔너블함을 놓치지 않는 이 잡지에 감탄했다. 모노클을 들고 다니는 일은 자신만의 지적이고 부유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꼰대의 영역에서 ‘스타일’로 승부하다
미디어 업계 내 전통의 강자들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있었고, <베니티페어>, <뉴욕타임즈>가 있었다. 철옹성 같아 보이는 존재들이었지만 약점도 분명했다. 낡고 권위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잡지를 만들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오랜 세월 무거운 주제를 심오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세운 성곽에서 오랜 세월 유유자적하는 중이었다. 그런 만큼 <모노클>이 출현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브륄레가 <월페이퍼>를 만들며 쌓은 감각은 <모노클>이 뿜어내는 스타일의 감도를 높여주었다. 이로 인해 경쟁지들과는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가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타일러 브륄레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도중 사람들이 <이코노미스트>와 를 함께 보는 걸 목격하고 이 둘을 섞은 모노클을 구상했다는 사실이다)
모노클, 잡지를 넘다
사실 모노클에게 있어 잡지라는 매체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모노클은 잡지 광고에 실어도 격이 떨어지지 않을 만한 광고주들을 ‘골라서’ 에드버토리얼을 만들어주는 광고 제작사의 역할을 한다. (광고대행사와 클라이언트의 갑을 관계가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가 되는 놀라운 순간이다) 광고주인 리모아, 포터, 델보 같은 브랜드와 콜라보하여 제품을 만들고 결과물은 세계 각지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모노클샵에서 판매한다. 24시간 방송되는 라디오 채널도 운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노클은 단순히 잡지사가 아니다. 잡지의 컨텐츠를 오프라인에서 실재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구현해내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정도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결국 소비자는 모노클을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한다. 그리고 팬이 된다.
타일러 브륄레는 한 인터뷰에서 “좋은 저널리스트는 좋은 세일즈맨이다”라고 했다. 그는 꼰대들로 가득 찬 쇠락하는 시사 잡지 분야에서 스타일리시한 모노클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제대로 팔았다.
지금은 모두가 모노클을 들고 다니고 싶어 한다. 현재 모노클의 정기구독자 수는 18만 명에 이른다.
원문: Brand Boy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