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한 상식으로 아는 사실 중에는 생각보다 발견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실이 많습니다. 예컨대 A형, B형으로 나누는 혈액형 분류체계인 ABO형 혈액형은 1901년에 처음 밝혀졌습니다. 건전지가 발명된 지 15년가량 지난 시점이고, 무궁화호와 같은 디젤기관차가 발명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인간의 혈액에 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 수혈은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 간에만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A형은 A형에게, B형은 B형에게 수혈을 받아야 하죠. 그런데 A형에게 B형 혈액을 주입해서 환자가 사망해도 원인을 몰랐으니 수혈은 일종의 사이비 요법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인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한 이후에야 수혈이 공식적인 의료행위로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대량의 수혈을 필요로 하는 외과 수술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친숙한데도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손 씻기입니다. 물론 과거의 인류도 손을 씻기는 했습니다. 당장 조선 시대 문학 등을 찾아봐도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고대 로마의 공중욕탕 문화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손을 안 씻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런데 현재와 같은 방식의 손 씻기는 대략 170년 정도 전에 발명된 것입니다. 수혈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값비싼 대가들을 치르면서 말이죠.
170년 전, 그러니까 대략 1850년 즈음의 의사들은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물론 필요한 경우엔 목욕을 하긴 했겠지만 현재의 의사들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손 소독제와 살균 비누로 손을 씻어대는 것은커녕 시신을 부검하다가도 수술을 하러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어떻게 의사가 그러냐는 비난은 잠시 접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미생물이 특정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를 못했으니까요.
우유 브랜드로 친숙한 세균학자 파스퇴르가 식품이 미생물에 의해 부패한다는 것을 밝히고 미생물 소독법을 개발한 것이 1862년이고, 그의 영향으로 외과수술에 소독법을 도입하는 것이 대략 1880년대의 일이니 초등학생더러 미적분을 왜 모르냐는 질책을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일입니다. 물론 책임과 별개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외과수술에 소독법을 처음 도입한 조셉 리스터가 당시에 쓴 논문을 살펴보면,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그가 소독법을 도입하기 전에는 외과수술을 받은 35명의 환자 중 16명의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백분율로 보면 대략 45.7%의 환자가 사망한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산모들의 경우도 상황이 나빴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의사 제멜바이스가 관찰할 바에 따르면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산모의 18%가량이 산욕열(출산 후 감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여고 동창 다섯 명이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면 그중에 한 명이 사망했다는 말이니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발생하던 셈입니다.
그런데 제멜바이스는 여기서 특이한 현상 하나를 발견합니다. 의사들이 아이를 받는 병동은 사망률이 18% 정도인 데 비해 조산사인 산파들이 아이를 받는 병동은 사망률이 5% 정도에 불과했거든요. 그는 어쩌면 그런 차이가 손 씻기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시대에 놀라운 발견을 한 것입니다.
당시 의사들은 지금과 같이 특정 과에서만 일하는 경우가 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감염으로 곪아 터진 환자의 상처를 열심히 치료하다가 아이를 받으러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경우는 시신을 해부하다 아이를 받으러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임산부의 생식기를 만지고, 또 아이를 만지다 보니 감염이 안 일어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던 겁니다.
반면 조산사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런 유해한 병원균을 접할 가능성이 낮으니 손을 씻지 않더라도 감염의 위험성이 낮았고, 덕분에 산모들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주목한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산모를 보러 가기 전에 염소 용액으로 손을 씻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18%의 사망률이 1%대로 떨어졌습니다. 그가 옳았던 셈입니다.
이런 의료 상황에서의 손 씻기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손 씻기는 다양한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003년에 발행된 1980년대부터 2003년까지의 손 씻기 연구를 종합한 분석 연구에 따르면 손 씻기는 감염성 소화기 질환의 위험성을 40%가량 낮춰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Val Curtis, 2003).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설사와 같은 질환은 손만 잘 씻어도 40%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그뿐 아니라 감기, 결막염 등의 다른 질병들도 마찬가집니다. 손을 충분히 잘 씻으면 수인성 감염질환의 50-70%를 예방할 수 있고, 감염 위험이 낮아지면 감염질환에 무분별하게 항생제가 사용되는 문제적 현상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의 손 씻기 습관은 굉장히 처참한 수준입니다.
공중화장실에서의 관찰조사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해 2015년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 씻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중 손을 씻는 비율은 54.6%이고 여성은 72.1%에 불과했습니다. 동일한 관찰조사를 통해 비교한 결과, 미국의 경우 남성의 75%가 손을 씻고 여성의 90%가 손을 씻는 것에 비하면 한국의 위생 인식이 무척이나 떨어집니다.
손 씻기가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7.6%에 달하는데도 실제로 손을 씻는 사람의 비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요? 대다수 사람은 ‘습관이 안 되어서’와 ‘귀찮아서’를 꼽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런 습관을 어린 시절부터 잡아주면 쉽게 개선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하면 변화가 있었을까요?
2010년에 재밌는 연구가 하나 진행됐습니다. 모 지역의 두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손 씻기 교육의 효과를 검증한 것입니다. 한 학교는 8주간의 손 씻기 교육을 진행했고, 다른 학교는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손 씻기 지식과 행태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정에서의 손 씻기 습관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김영임, 2010).
이런 결과는 비단 초등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2014년에 대학생 대상으로 진행된 손 씻기 교육 효과에서도 교육을 받은 집단의 손 씻기 행태가 교육을 진행하지 않은 집단의 손 씻기 행태보다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최은희·장인순, 2014). 이런 최근의 연구는 물론 과거 여러 연구에 기반해, 정부에서는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보건 교육을 내실화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입니다.
조금 얘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보건소의 백신 접종 담당자이고, 한국에 신종플루나 메르스 따위의 국가적 전염병 재난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물량 부족으로 인해 한 가족당 최대 3개의 백신만 제공이 되는데 5인 가족이 백신 접종을 받으러 왔습니다. 초등학생 아이 둘, 부모,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다섯 명이 왔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시겠습니까?
일반인이라면 고려할 게 한둘이 아니겠지만 보건의료인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가장 필요성이 높은 환자에게 접종하는 것이 맞고, 면역력이 약해 감염에 취약한 아동 두 명과 노인에게 접종해야만 합니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 가봅시다.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손 씻기 교육을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할까요? 아동에게 시행된다면 노인에게도 진행해야만 합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알려주는 올바른 손 씻기 방법
원문: Coldtongue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