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고(故) 리영희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현실 정치에서 존재하는 진보/보수 역시도 ‘절반의 진리’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념의 편식(偏食)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읽었던 책 중에 『부동산과 시장경제』가 있다.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이다. 저자는 연세대 서승환 교수이다. 서승환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국토교통부 장관을 했다. ‘2006년’이라는 시점은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을 때였다.
책을 관통하는 내용도 왜 부동산을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강조하며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 입장을 ‘무조건 까는’ 방식은 아니다. 실증적-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동의 여부를 떠나 새겨들을 부분이 많다.
『부동산과 시장경제』의 최대 장점은 매우 얇다는 점이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126쪽에 불과하다. 최대 단점은 절판되었다는 점이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다(대신 e-북으로 1,800원에 판매된다). 그렇더라도 부동산에 대한 경제학적 이해에 큰 도움이 되므로 강추한다. 내 경우 국회도서관에서 대여한 후 제본해서 봤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때도 부동산이 폭등했고, 문재인 정부가 되니 부동산이 또 폭등한다고 비판한다. 보수언론은 진보 정부는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비판은 합당한 비판일까? 흥미로운 것은 ‘참여정부 비판’을 목적으로 썼던 서승환 교수의 책을 보면 보수언론의 진보정부 무능론이 부적절한, 과장된 비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러한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 부동산 경기변동의 주기와 관련이 있다.
- 부동산 정책의 속성상 ‘선제적’ 대응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내용적으로, 김수현 사회수석과 김현미 장관을 위한 변론 정도가 되는 셈이다.
부동산 경기변동의 주기
첫째, 책 내용 중 「부동산 경기변동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부분은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변동의 ‘주기(週期)’를 알려준다. 부동산 경기변동 주기를 살펴보기에 앞서 ‘거시경제 경기변동’을 먼저 살펴보면, 통계청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1982년~2006년의 기간 동안 ▴수축기는 19개월 ▴확장기는 34개월이다.
반면 토지 경기변동의 경우 1975년~2004년의 기간 동안 ▴수축기는 7년~8년 ▴확장기는 3년~4년이다(거시경제 경기변동은 ‘물량’으로 측정하고, 부동산 경기변동은 ‘가격’으로 측정한다).
경제학에서는 경기변동을 단기-중기-장기로 나눈다. 단기의 경우 40개월 주기의 ‘키친 파동’이고, 중기의 경우 10년 주기의 ‘주글러 파동’이고, 장기의 경우 50년 주기의 ‘콘트라티에프 파동’이다. 한국 부동산(=토지) 경기변동의 경우, 10년 주기, 주글러 파동에 해당한다.
참여정부 시절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에 부동산 가격이 또 상승한다. 왜 그런 것일까?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비서관이 ‘정책 실무자’로 있기 때문에? 아니면 친노-친문 성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경기변동 주기(週期)가 원래 10년 정도 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폭등했던 부동산 가격이 다시 ‘하강기’를 맞이한 시점은 2007년~2008년 경이다. 즉, 2007년~2008년을 기준으로 약 10년이 지난 2017년~2018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변동이 10년 주기로 움직인다는 것은 부동산도 상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부동산 시장’ 역시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장기 시계열 자료를 보면 부동산 가격은 물가상승률 및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된다. 한국도 그렇고, 해외도 그렇다.
부동산 시장의 속성
둘째, 『부동산과 시장경제』는 부동산 시장은 속성상 ‘선제적’ 대응이 원래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단락이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을 주문한다」와 「필요한 것은 장단기 조화이다.」라는 단락이다.
아래 표는 1978년~2002년 기간, 그러니까 24년의 기간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뒷북사(史)를 보여준다. 역대 정부는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지가상승률이 높았을 때는 ‘규제강화책’을 내놓고, 지가상승률이 낮았을 때는 ‘규제 완화책’을 내놨다. 다시 말해 과열/냉각된 후에 규제책이 ‘뒷북치기식’으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부동산 정책, 뒷북의 역사는 ‘진보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발생한 일이다.
그럼, 정책당국이 ‘뒷북치기식’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선제적(先制的) 대응은 곧 예지적(叡智的) 대응을 의미한다. 문제는 과연 선제적-예지적 대응은 실제로 가능한지다. 서승환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측모형에 의하면 1년 후에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염려되는 것으로 나왔다고 하자. 예측모형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면서 과감하게 안정화 정책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인가? […] 결정적으로 1년 후에 진짜로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해질 것인지가 불확실하다. […] 선제적인 정책을 쓰는 경우는 최선의 결과가 본전치기다. […]
이런 경우 정책집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최선의 전략은 무엇인가? […] 절대로 선제적인 정책을 집행하지 않고 뒷북치기식으로 나가는 것이 우월전략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부동산 정책이 뒷북치기식이었던 것이 우연히 나타난 현상이 아닌 것이다.
- 57~58쪽
요컨대 부동산 경기변동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선제적-예지적 대응인데 설령 ‘예측모형’이 그런 신호를 보여준다고 할지언정, 실제로 채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978년~2002년에 걸친, 24년간의 부동산 뒷북정책사(史)가 잘 보여준다. 왜 그럴까? 정리해보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 인간은 ‘원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부동산은 정책 시차가 존재한다. 특히 정책당국이 ‘공급 확대’를 결정했다고 해도 ‘실제로’ 부동산이 공급되려면 몇 년이 걸리게 된다.
- 정책 책임자가 ‘선제적-예지적’ 대응을 했을 경우, 부동산 경기가 예상과 다르면 떠맡을 위험(Risk)은 너무 크고 발생하는 이익(Benefit)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만 판단이 틀려도 덤터기 써서 박살 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진보정권이 집권하니 부동산이 폭등한다”는 주장은 정치적인 선동은 될 수 있을지언정 2가지 측면에서 사실이 아니다.
- 한국의 부동산 경기변동은 원래 10년 주기이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했건과 무관하게 2017년~2018년 기간 부동산 가격은 상승할 개연성이 매우 높았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상승을 ‘발생’시킨게 아니라, ‘대응’의 임무가 있을 뿐이다.
- 박정희가 집권하던 1978년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원래’ 부동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뒷북의 역사였다. 이것은 ‘진보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보수 그 어느 정권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 표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부동산 정책은 왜 항상 ‘뒷북’인가? 부동산 재화의 특성상 부동산을 공급하려면 ‘정책 시차’가 존재하고, 미래 부동산 경기에 대한 선제적-예지적 대응은 인간 이성의 한계로 인해 ‘원래’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1978년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은 ‘일관되게’ 뒷북 대응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인 홍춘욱 박사님 이야기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에 부동산 데이터 공개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느낌적 느낌’으로 부동산 시장을 파악해야만 했는데, 지금은 경제학적 분석이 훨씬 용이해졌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덜 알려진 공(功)’이다. 특히 실거래가 통계, 한국감정원 주택가격지수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럼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할 경우, 실제로 정책을 책임진다고 가정할 경우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 그래도 예측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거시경제와 관련하여 경기선행지수(景氣先行指數)와 경기후행지수(景氣後行指數)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발달한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서 ‘부동산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 부동산 선행지수 개발은 청와대, 국토교통부, 국책연구소, 부동산 민간 애널리스트 등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민간 애널리스트 중에는 2017년 봄 즈음부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실수요’에 근거한 것이라고 예견하고 ‘정책당국에서 강경한 대응이 나와도 잠시 효과가 있을 뿐 2018년이 되면 재차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고 경고한 애널리스트가 많았다. 그런 주장을 하면서 논거와 데이터를 제시했다. 다르게 말하면 정부 관료조직의 ‘부동산 시장 파악’의 정확도 및 속도가 민간 애널리스트보다 뒤떨어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렇든 안 그렇든 그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 예측 모형과 부동산 선행지수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에서 투기적 심리는 ‘참여자 숫자’가 적을수록, ‘정보 비대칭’이 강할수록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막는 방법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 예측 모형과 부동산 선행지수를 투명하게 공개한 이후에도, 선제적-예지적 대응에 대한 최종 결정은 결국 ‘정책 당국’이 해야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사회수석 비서관,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핵심 플레이어다.
서승환 교수가 쓴 『부동산과 시장경제』는 부동산도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상품과 구분되는 ‘부동산 상품’의 독창적 특징이 있음을 완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 때 국토교통부 장관을 했던 서승환 교수의 책은 ‘모든 게 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문이다’라는 보수언론의 선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방어해준다. 다른 한편 부동산도 ‘상품’의 일종으로 보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일부 진보의 시각에 대해서도 경기변동, 수요-공급의 작동 등을 실증적-이론적으로 논증하면서 반박한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