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연휴 동안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홍은주, 개마고원)이란 책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이고, 약 290쪽 분량이다. 경제학설사에 등장하는 43명의 경제학자와 그들이 제기한 핵심 개념 및 아이디어가 나온다. 경제학설사 관점에서 경제용어를 설명하는 책인 셈이다.
중상주의 시대 이론가였던 존 로크(1632~1704)에서 시작해 행동경제학의 카너먼(1934~)과 카오스 이론의 코라파스(1961~)로 끝난다. 그간 얼핏 알고 있던 개념들을 한번 정리해주는 의미가 있었다. 책을 보면 저자인 홍은주 박사 자신이 내공이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개념서술이 정확하고 글이 쉽다. 제대로 소화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쓰기이다. 매우 재미있게 봤고, 다른 분들에게도 유익할 것으로 생각해 메모를 겸해 서평을 쓴다.
2.
케인즈와 맬더스의 과소소비 이론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효수요 이론의 시조는 맨더빌(Bernard de Manderville, 1670~1733)이었다. 맨더빌은 시(詩) 쓰는 의사였다. 경제사상사에서 시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유일한 사례인데, 제목은 「꿀벌의 우화」이다.
「꿀벌의 우화」는 사치와 방탕함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내용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라 전체가 극단적인 수준까지 근검절약을 실천하게 된다. 경제는 박살나고, 극심한 불황을 겪게 된다. 과도한 국가개입의 문제점과 유효소비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는 케인즈가 이후 자신의 책에서 인용하며 더욱 유명해진다.
3.
경제학설사에서 노동가치론의 원조는 칼 마르크스도, 아담 스미스도 아닌 중농주의 경제학자 케네(Francois Quesnay, 1694~1774)였다. 케네는 경세표로 유명한데, 경세표의 주요 내용은 ‘국민경제 순환’이다. 요즘으로 치면 GNI개념과 유사한 국민순생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케네는 농업만이 순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노동’이고 나머지는 ‘비생산적 노동’으로 간주했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면 접하게 되는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이라는 프레임의 원조는 케네였다. 생산적 노동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가치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참고로, 80년대~90년대 운동권들이 접하던 정치경제학 책에서는 제조업만 생산적 노동이고 유통/서비스업 등은 비생산적 노동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했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추상노동학파의 아이작 일루치 루빈 그리고 정운영 교수의 『노동가치이론 연구』(까치)에도 쓰인 것처럼 ‘가치를 실현하는’(=판매되는 상품에 구현된) 모든 노동은 생산적 노동으로 봐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산업연관표는 경제학자 레온티에프가 개발한 것이다. ‘산업연관표’는 케네가 만든 경세표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4.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은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유명하다. 마샬은 케인즈에게 경제학 공부를 적극 권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마샬은 멩거, 발라(왈라스), 제본스와 함께 ‘한계효용 이론’을 개발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시조이다.
마샬은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개념을 본격 도입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Other Things Being Equal)”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이를 ‘부분균형분석’이라고 한다.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적인 분석방법론이다. 부분균형분석은 모델을 극단화하는 단점이 있지만, 다른 모든 요인들을 외생변수로 취급하기에 인과관계를 명료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만든 미분 개념을 경제학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도 마샬이다. 마샬은 미분 개념을 활용해 수요변화량을 측정하는 탄력성 개념을 만들고 이에 적용했다.
5.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무차별 곡선은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의 작품이다. 경제학에서 효용 개념은 공리주의자들의 쾌락 및 만족 개념을 경제학으로 끌고 온 것이다. 케네,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칼 맑스로 이어지는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객관적 가치론’이 중시되었다. 한계효용 개념의 등장으로 인해 ‘주관적 가격론’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효용 개념과 공리주의자들의 쾌락-만족 개념은 ‘주관적’ 개념이기에 ‘효용의 측정 가능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논리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 이론이 발달하게 된다.
효용의 측정 가능성이라는 딜레마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한 개념이 파레토의 무차별 곡선이다. 파레토는 효용의 ‘크기’를 표시하는 기수적 접근이 아니라 효용의 ‘순서’를 표시하는 서수적 접근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무차별 곡선은 시장가격이 주어져 있을 때, 같은 정도의 만족감(효용)을 주는 2개의 재화나 서비스 배합의 집합을 연결한 곡선을 의미한다. 예컨대, ‘빵과 포도주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를 의미한다.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무차별 곡선’과 ‘예산제약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소비자 선택이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19세기말 경제학자 파레토의 업적이 현대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6.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개념의 유래는 경제학자 넉시(Ragnar Nurkse, 1907~1959)이다. 넉시는 1953년의 저서, 『저개발국 자본형성의 제 문제』에서 저개발 국가들이 왜 지속적인 경제발전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지를 분석했다. 요지인즉, 자본 부족 ⇒ 투자 부족 ⇒ 생산성 저하 ⇒ 실질소득 저하 ⇒ 저축 부족 ⇒ 자본 부족 ⇒ 투자 부족의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넉시는 저개발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자본 형성’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게 형성된 자본으로 산업에 대한 ‘전(全)방위적 자본투입’을 강조했다. 넉시는 ‘최초의 자본형성’을 위한 방법으로 다음의 것을 주장했다.
- 부유층의 사치성 수입품 구매 억제
- 강제저축
- 외자 유치
전(全)방위적 자본투입을 강조한 넉시의 견해와 달리 시장집중도를 보여주는, 허핀달-허쉬만 지수로 유명한 허쉬만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불균형 성장이론’을 주장했다. 한 산업의 성장은 다른 산업의 성장과 연관성이 있기에,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산업에 우선적으로 즉, 불균등하게 투자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저개발 국가의 자본형성 어려움과 그 해법에 대한 넉시와 허쉬만의 주장을 모두 실천한 경우가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에 해당한다.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은 부유층의 수입성 사치재 소비억제, 강제저축, 외자도입, 전후방 연관효과가 매우 큰 ‘수출중심+중화학공업 중심+재벌중심+영남중심’의 불균등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넉시와 허쉬만 이론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했고, 한국에서 검증된 셈이다.
7.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는 케인즈(1883~1946)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경제학자이다. ‘피셔의 교환방정식’으로 불리는 화폐수량설로 유명하다. 화폐수량설은 MV≡PT로 표기된다. (*항등식이기에 =이 아니라 ≡이다.)
M은 통화량, V는 통화의 유통속도, P는 물가, T는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량이다. T는 실질GDP에 해당하며, PT는 명목 GDP에 해당한다. 즉, ‘재화와 용역에 대한 총화폐지출 = 재화와 용역판매로부터 받은 총화폐수입’의 등식이 성립한다. 피셔의 화폐수량설은 화폐의 유통속도(V)와 경제성장(T)이 단기에는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결국 통화량(M)의 증가는 물가인상(P)으로 귀결될 뿐이다.
피셔를 비롯한 고전학파는 단기적으로는 토지-자본-기술이 불변이라고 가정한다. 그럼, 남는 생산요소는 ‘노동’ 뿐이다. 결국 생산수준은 노동수준에 의해서만 결정되며, 임금가격의 신축성을 통해 ‘경쟁적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피셔와 달리 케인즈는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주장한다. 당대 주류적 의견이던 피셔의 ‘임금 신축성을 통한 완전고용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케인즈가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주장한 것은, 영국에서 점진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 모임이던 ‘페이비언소사이어티’ 활동가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평소 노동조합 운동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8.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은 완전고용 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자연 실업률’ 개념을 제안했다. 실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 자발적 실업
- 마찰적 실업
- 비자발적 실업
자발적 실업과 마찰적 실업을 고려할 경우, 완전고용은 비현실적인 목표이다. 케인즈도 완전고용 달성에 회의적이었다.
프리드먼이 제시한 자연 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은 “예상 물가상승률과 현실 물가상승률이 비슷할 때의 장기 균형실업률”이다. 즉, ‘안정된 물가와 조응하는 현실적 실업률’이다. 물가안정과 실업률 개념을 서로 연동한 ‘통화주의자다운’ 발상이다.
9.
밀턴 프리드먼 이론의 백미(白眉)는 고전학파의 화폐수량설과 케인즈의 화폐이론 모두와 선을 긋는 ‘신(新)화폐수량설’이 아닐까 싶다.
전통적인 화폐수량설은 화폐의 유통속도(V)와 재화-서비스의 거래량(T)를 일정하다고(=상수로) 가정한다. 반면, 프리드먼은 이들 변수가 상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프리드먼은 화폐수요(=화폐 자체에 대한 수요)에 여러 가지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 명목이자율
- 물가수준
- 물가수준의 예상변화율
- 유동성 선호
- 소득의 함수
로 파악한다. 이 중에서 ‘이자율’과 ‘소득’을 제외한 나머지 변수는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그래서 이자율과 화폐수요의 관계, 소득과 화폐수요의 관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자율과 화폐수요의 관계’를 미국의 역대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화폐수요의 이자율 탄력성은 –0.155에 불과했다. 즉, 화폐수요는 이자율에 대해 비(非)탄력적이다. 이는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논리를 ‘실증적으로’ 허물어뜨린 것이다.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론’은 이자율이 낮아질수록 화폐수요(=화폐퇴장=화폐 자체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증가할 것으로 가정한다. 그 이유는 이자율이 낮을수록 ‘이자율이 더 낮아질 것으로’ 사람들이 ‘기대’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는 매우 무리한 가정이다.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론은 ‘극단적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매우 예외적으로만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가정’으로 봐야 한다. 화폐수요에 대한 이자율 탄력성이 미미하다는 프리드먼의 실증적 반박은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이다.
또한, ‘소득과 화폐수요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화폐수요의 실질소득 탄력성은 1.394로 나왔다. 화폐수요는 이자율보다는 소득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질소득이 1% 늘어나면 실질화폐수요는 1.394%가 늘어났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소득을 둘로 나눈다.
- 항상소득
- 변동소득
항상소득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다. 월급이 대표적이다. 변동소득은 일시적으로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다. 복권 당첨이 대표적이다. 프리드먼은 이 중에서 소비와 연결되는 소득은 ‘항상소득’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경제주체들의 평균소득이 항상소득과 유사하다면 소비 성향은 상수는 아니지만, 매우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실천적으로 볼 때, 통화정책(=이자율 정책) 무용론을 주장하는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론을 실증적으로 반박할 뿐만 아니라, 통화공급(M)=물가상승(P)에 불과하다고 보는 전통적인 화폐수량설도 반박한다.
통화공급(=이자율 정책)은 ‘최소한 단기에는’ 경제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미국 FRB와 한국은행 등의 금리조절정책을 접하는 것은 프리드먼의 ‘신화폐수량설’이 금융정책당국에 의해 설득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0.
토빈세로 유명한 제임스 토빈(James Tobin, 1918~2002)은 투자결정 이론과 분산투자 이론에 이바지했다. 기존의 투자결정 이론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자, 케인즈의 야성적 충동처럼 ‘기업가 개인’의 자질을 중시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토빈은 ‘집단적 정보’가 이미 반영되어 있는 ‘주식가치’가 척도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또한, 유동성 선호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케인즈의 화폐론은 화폐를 보유하거나 아니면 (화폐가 아닌) 채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토빈은 케인즈 이론이 다분히 극단적 가정이기에, ‘포트폴리오투자=분산 투자’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자산선택 이론’을 발전시켰다.
1981년 스웨덴 한림원은 토빈을 “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 이론에 기여하고 금융적 변수가 지출과 고용 생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당시 기자들 입장에서 ‘포트폴리오 이론’은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이론이었다. 그래서 이를 쉬운 말로 설명해달라고 토빈에게 부탁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토빈이 답하기를 “투자를 할 때 위험과 수익에 따라 분산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가진 달걀을 몽땅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다”..
다음날 전 세계 신문들은 「토빈,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이론으로 노벨상 수상」이라고 제목을 뽑았다고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표현이 토빈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며 한 말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11.
한때 잘나가는 경제학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합리적 기대가설’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루카스(Robert Lucas, 1938~)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한다.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가설은 정부가 재정정책을 펼치든, 통화정책을 펼치든 시민들이 ‘바로 그 정보도 경제적 행동에 반영하기 때문에’ 정부정책은 이렇든 저렇든 쓸모없다는 것이 핵심 논지이다. 이를 ‘루카스 비판’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루카스 비판은 ‘극단적 합리주의’를 가정하고 있기에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이후 경제학의 큰 추세가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 불확실성, 제한된 합리성, 복잡계 경제학 등을 주목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극단적으로 합리주의적인 가정은 오히려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12.
필립스(A.W. Phillips, 1914~1975)는 실업률와 물가상승율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작동한다는 필립스 곡선으로 유명하다. 필립스 곡선은 1958년에 발표됐다. 필립스가 실제로 발견한 필립스 곡선의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1958년에 필립스가 발표한 내용은 1861년~1957년까지 약 100여 년간 영국의 임금과 물가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니 ‘임금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상당히 안정적인 역(逆)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면 실업률이 낮아지고(=고용증가), 임금상승률이 낮아지면 실업률이 높아진다(=고용하락).
필립스가 실제로 밝혀낸 자료는 ‘임금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역관계였지만, 필립스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역관계로 발표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100여년간 대부분의 산업이 노동집약적이었기 때문에, 비용 상승(=물가상승)의 주 원인을 임금상승으로 간주하고, 임금=물가로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필립스가 최초로 발견한 통계자료만 놓고 보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는 홍장표 교수가 매우 좋아할 만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필립스의 발견이야말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입증하는 100년간의 실증자료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상승하면 오히려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줄었다면, 임금인상이 경제성장의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소득주도 성장론자’인 것은 아니다.)
- 임금인상률증가와 실업률의 역관계는 ‘인과관계’를 반대로 하면 쉽게 수긍될 수 있다. 즉, 실업률이 축소되면(=완전고용에 가까워지면) 임금이 인상되는 경우이다. 실업률이 축소된다는 것은 경기활성화를 의미한다. 그럼, 노동력의 수요-공급 상황에서 노동력에 대한 ‘초과 수요’가 발생하게 되고, 당연히 임금인상이 발생하게 된다. 즉, 경기활성화 ⇒ 노동력의 초과 수요 ⇒ 노동의 공급측 협상력 증대 ⇒ 실업률 축소(=완전고용) ⇒ 노동자의 임금인상 순환을 추론해볼 수 있다.
- 정부에 의한 관리통화제도의 실시, 노동조합 운동에 의한 임금협상, 세계화 효과 등을 고려할 경우, ‘실업률과 임금인상률의 관계’ ‘실업율과 물가상승률의 관계’는 별개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임금인상률’이 결정되는 변수는 노동력에 대한 수요-공급 상황, 자본세력과 노동세력의 정치적-제도적-법적인 역관계 등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한 경우, ‘조직노동’의 지위 강화가 ‘미조직 노동’의 지위강화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결정되는 변수는, 경기활성화 여부,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세계화 정도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필립스 곡선’은 관리통화제도가 미약하고, 노동조합 운동이 덜 발달했던, 노동집약적이었던 경공업 자본주의 시절, 1861년~1957년까지 약 100여 년간 영국의 임금과 물가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이기에, 이를 2017년 현대 자본주의에 곧바로 적용하려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13.
경제학적 방법론을 ‘사회학-정치학 영역’으로 확대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은 게리 베커, 제임스 뷰캐넌, 조지 스티글러이다. 이들은 모두 시카코 학파의 경제학자들이기도 하다.
게리 베커(Gary Stanley Becker, 1930~)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로 경제학 영역을 넓혔다.
-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 차별계수의 개발
- 인적자본의 중요성
베커는 ‘사회관계론’ 개념과 ‘이기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가족 간에 작동되는 가족애 및 이타주의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했다. 가족을 돕는 것은 진화론적 본능 혹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평판까지를 효용함수로 넣고 기대편익과 기대비용을 고려한 ‘경제적-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평판이 강하게 작동되는, 가족들이 어려운 일을 당한 경우에는 서로 돕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평판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유산 상속의 경우에는 서로 다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리 베커는 인종적 차별을 경제학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차별 계수’를 개발했다. 차별이 경제적 생산성을 저해하고 경제적 후생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계량적으로 논증한 셈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이 ‘자본 투자’만을 중시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베커는 노동의 질을 평가하는 ‘인적 자본’ 개념을 발전시켰다. 인적자본 축적의 두 가지 방법으로 교육과 직무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학에서 ‘인적자본’의 개념이 등장하고 발전하게 된 것은 베커의 공이 참으로 크다. 베커는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제임스 뷰캐넌(James McGill Buchanan, 1919~)과 조지 스티글러(George Joseph Stigler, 1911~1991)는 정부의 비효율성, 관료와 정치인들의 비효율적 의사선택을 예리하게 비판한 경제학자들이다.
1930년대 이후 케인즈 경제학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정부의 역할과 크기는 매우 커지는데,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정치인 + 관료’의 역할과 권한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으로 치면, ‘관피아’의 권한이 커진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뷰캐넌과 스티글러는 마치 기업가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관료 역시 ‘예산극대화와 권한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봤다. 그리고 정치인 역시 ‘득표율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봤다.
- 투표
- 정치
- 관료주의
- 이익집단의 로비행위
- 정치가들의 포퓰리즘
그래서 이것들이 서로 얽혀서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자원배분(=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봤다.
뷰캐넌과 스티글러의 경고는 정말이지 유의미하다. 실제로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은,
- 기업가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고
- 관료는 규제극대화+예산극대화를 추구하고
- 정치인은 득표율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
이를 상수(常數)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실패를 중시여기는 정도만큼 다음을 상수로 간주해야 한다.
- 관료실패
- 정치실패
그래야만 우리는 시장실패-관료실패-정치실패 모두를 고려한 ‘최적화된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뷰캐넌은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스티글러는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4.
프랭크 나이트(Frank Hyneman Knight, 1885~1972)는 시카고 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이후에 더 공부해보고 싶은, 개인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경제학자였다.
게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제기하고 로널드 코즈가 외부효과에 대한 해법인 ‘코즈 정리’를 발표하는 시점은 1960년대이다. 나이트는 1930년대부터 공유지 문제에 대해 ‘재산권 획정’이 갖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트의 위대한 이론적 업적은 따로 있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철학적 기초>를 단단히 하려는 취지에서 ‘기업가’와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의 관계를 해명한 것이다.
프랭크 나이트는 188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다. (케인즈와 슘페터에 비해, 2년 이후에 태어났다.) 나이트는 원래 철학과 윤리학에 심취했다. 그런데,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집단주의의 발흥을 접하면서 코넬대학교 철학과 출신이던 나이트는 ‘자유주의의 철학적-경제학적 정당성’을 세우는 작업에 나서게 된다. (나이트는 코넬대 철학과를 나와, 코넬대 경제학과 박사를 거쳐, 시카고 대학의 교수가 된다.)
나는 ‘불확실성’ 개념을 본격적으로 경제학에 끌고 온 최초의 경제학자가 케인즈인지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이트였다. 나이트가 1921년에 발표한 『위험,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은 아마도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 혹은 ‘자본론’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지 않을까 싶다. 칼 맑스가 자본주의를 공격했던 핵심 논리는 ‘잉여가치론’이다. 부의 유일한 원천은 노동이며, 자본가가 얻는 이윤이 ‘지불되지 않은 노동’(=부불노동)에서 유래하며, 그렇기에 잉여가치는 ‘착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 맑스의 공격을 이론적으로 방어하려면 ‘이윤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그 미션을 나이트는 『위험,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을 통해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나이트는 시장경제의 윤리적 기초는 ‘효율성’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라고 봤다. 나이트가 ‘시장경제’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정부와 집단의 강제가 아니라, ‘개인들의 자발적인 교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적 계획경제와 대비되는 시장경제(=경제적 자유)야말로 ‘개인의 자발성’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이후 정치적 시민권, 그리고 언론-출판-표현의 자유와 같은 사회적 시민권을 떠받치는 ‘자유의 근간’으로 봤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의 세계이다. 나이트에 의하면, 기업가는 손해가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감수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결과로서 이윤을 얻게 된다. 즉, 기업가가 이윤을 얻는 정당성의 핵심은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경제주체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눈부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핵심 이유도 ‘모험적 기업가들’이 있기 때문으로 봤다. (*나이트 이론은 슘페터보다 철학적-논리적으로 더 단단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이트는 ‘재산상속’ 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재산상속은 기회균등이 상실되어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고 봤다. 재산상속, 부익부 빈익빈이 강화된다면 분배 결과의 도덕적 정당성은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나이트는 ‘소득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다.
‘자유시장’을 중시 여겼기에 독점과 담합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반독점 정책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이트는 경기불황 때는 조세를 삭감하고 재정지출을 늘려서 물가인상을 무릅쓰고서라도 정부가 적극적 (재정)확장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트는 1927년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로 부임했다. 나이트에게 경제학을 배웠던 제자들이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제임스 뷰캐넌 등이다.
나이트 이론은 1920년대 주로 활동한 스웨덴 사민당의 이론가 닐스 칼레비와 유사하다.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스웨덴 사민당은 오른쪽으로는 자유주의 정치세력, 왼쪽으로는 공산주의 정치세력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들 모두와 구분되는 ‘이론체계’의 정립이 중요한 시기였다.
닐스 칼레비(1892~1926)는 중앙집중계획경제에 매우 비판적이었고 시장경제를 높이 평가했다. 그 이유는 시장경제의 구매력야말로 보통선거권과 함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미시적 기초’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나이트와 완전히 동일하다.)
칼레비 자신의 표현을 살펴보자.
만일 자유로운 직업 선택과 소비 선택에 기초하여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면 노동계급의 이익이 사회적 수요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생산물뿐만 아니라 생산요소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가격 형성 그러나 공적이고 조직적 차원의 개입을 통해 구매력의 분배가 시정되어야 한다.” (신정완, 『임노동자 기금 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여강, 103쪽)
[권위주의적 사고에 맞서는 측면에서] 투표용지와 구매력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이한 방식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양자는 동질적이다.” (같은 책, 103쪽)
15.
제도주의 경제학에서 많이 등장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개념을 제기한 경제학자는 데이비드(Paul A. David)이다. 데이비드는 1985년 「클리오와 쿼티」라는 논문을 통해 경로의존성 개념을 제기한다.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쓰는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 가장자리에 미세한 톱니모양의 빗금이 있는데 이게 ‘그레샴의 법칙’과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레샴의 법칙’이란, 금본위제와 은본위제 시대에 금화와 은화가 유통되었는데, 사람들이 금과 은을 미세하게 깎아서 시장에는 불량통화를 내놓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재정고문관이었던 토머스 그레샴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라고 지적한 것에서 유래한다.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에서 나쁜 중고차가 좋은 중고차를 밀어내는, ‘레몬시장 이론’으로 유명한 애컬로프의 이론도 그레샴의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또 다른 사실은 동전 가장자리에 있는 미세한 톱니모양의 빗금을 만든 사람이 뉴턴이라는 점이다. 뉴턴은 1687년에 프린키피아를 발표해서 대박을 친다. 이후 뉴턴은 1699년 조폐국장을 하게 된다. 뉴턴이 조폐국장 시절에 만든 것이 동전 테두리에 톱니바퀴 모양의 빗금이다.
16.
컴퓨터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는,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은 1944년 경제학자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게임이론은 내 선택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대방 선택이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성’ 개념을 적극 도입한다. 그래서 나오는 개념이 ‘미니맥스(mini-max) 원리’이다. 미니멈과 맥시멈의 합성어인데, ‘최악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의미한다.
- 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나의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 1번)에 입각해서 내가 선택을 할 경우, 상대방이 취할 전략은 무엇이며, 상대방의 반응으로 인해 내가 당하게 될 최악의 상황들을 점검한다.
- 2번)에 따른 상대방의 반응으로 인해 내가 겪게 될 최악의 상황(mini)가운데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경우(max)의 전략을 선택한다.
폰 노이만의 미니맥스 전략 개념을 접하고 보니, 평소 내가 정세분석을 할 때 사용하는 ‘경우의 수’ 분석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론 중에서도 죄수의 딜레마 개념은 던컨 루스(R.Duncan Luce, 1924~)가 제기한 개념이다. 던컨 루스가 라이파와 함께 쓴 『게임과 선택』이라는 책에서 죄수의 딜레마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17.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과 아모스 트베르스키(Amos Tversky, 1937~1996)는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 카너먼과 트베르스키는 사람들이 ‘이익’에 대해서는 위험기피자이고, ‘손해’에 대해서는 위험선택자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낸다.
[실험1-이익실험] 사람들에게 선택-1과 선택-2 중 하나를 고르는 실험을 반복했다.
- [선택-1] 4,000달러를 벌 수 있는 80%의 가능성 (+한 푼도 못 건질 가능성 20%)
- [선택-2] 확실하게 3,000달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
확률을 고려할 경우, 선택-1의 기댓값은 4,000달러 × 80%(0.8) = 3,200달러이다. 선택-2의 기댓값은 3,000달러이다. 실험참가자의 80%가 3,000달러를 받는 <선택-2>를 골랐다.
[실험2-손실실험] 사람들에게 선택-1과 선택-2중 하나를 고르는 실험을 반복했다.
- [선택-1] 4,000달러를 잃을 80%의 가능성 (+한 푼도 잃지 않을 가능성 20%)
- [선택-2] 확실하게 3,000달러를 잃을 가능성
확률을 고려할 경우, 선택-1의 기댓값은 3,200달러였고, 선택-2의 기댓값은 3,000달러였다. 이번에는 실험참가자의 92%가 4,000달러×80%의 가능성으로 기댓값이 3,200달러인 <선택-1>을 골랐다.
종합하면, 사람들은 이익에 대해서는 ‘위험기피자'(risk averser)였다. 반면, 손실에 대해서는 ‘위험감수자'(risk taker)였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아니라, 손실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손실을 줄일 수만 있다면, 위험기피자가 되기도 하고, 위험감수자가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손실’에 매우 민감하다. 불확실성하에서 인간의 선택을 다루는 ‘기대이론’에서는 인간의 뇌가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에 훨씬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정책-입법-대안보다, 막말-반대-폭로를 중심으로 하는 것도 카네먼 이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람들이 ‘손실’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하다는 카너먼의 실험결과는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밸리는 ‘이익은 조금씩 주고, 손해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한꺼번에 주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마키아밸리는 개혁이 어려운 이유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둔감한 반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군주론은 1513년 출간된 책인데, 마키아밸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입증한 것을 이미 600년 전에 터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 왜 사람은 ‘손실’에 더 민감한 것일까? 아마도 진화과정과 밀접히 관련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는 99.9% 가까이를 수렵채집 사회에서 살았고, 그때 ‘적응’에 필요했던 기질들이 현재까지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 먹이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에 ‘손실’에 민감했던 것이 현재에도 계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 경제학의 주류적 흐름인 신고전파 종합은 뉴턴 물리학의 논리체계를 경제학에 차용한 것이다. 향후 경제학의 흐름이 갈수록 진화론, 뇌과학,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흡수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되는 대목이다.
18.
비단 경제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새삼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이 갖는 힘에 대해 느끼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프레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내가 재미있게 봤던 경제사상사(=경제학설사) 책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 그리고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홍은주 박사님이 쓴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개마고원) 역시 1순위로 강력히 추천할만한 좋은 책이다.
민경국 교수의 『경제사상사 여행』(21세기 북스)도 참고할만하다. 케인즈와 슘페터 이론의 개요를 보고 싶으면 『케인즈 VS. 슘페터』(요시카와 히로시, 새로운제안)가 볼 만하고, 케인즈와 하이에크에 관한 책으로는 박종현 교수가 쓴 『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김영사)이 쉽게 잘 정리되어 있고, 니콜라스 윕숏의 『케인즈 하이에크』(부키)는 역사적 전개에 따른 에피소드 중심으로 씌여진 책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