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김○○ 씨(가명)는 이제 집 밖을 나서지 않습니다. 온종일 집에서 게임만 하며 지냅니다. 요즘 ○○ 씨처럼 게임에 빠져 삶을 내팽개친 이들이 많습니다. 셧다운 제도 등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해 보입니다.
게임 중독을 다룬 뉴스를 볼 때마다 사안을 바라보는 그 얄팍함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게임을 많이 하니 문제, 고로 게임을 못 하도록 막겠다’는 발상은 마치 “자꾸 콧물이 흐릅니다! 코를 틀어막아야겠습니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임을 도피처로 삼아본 적 있는 내 경험 상 게임 중독은 원인이 아닌 증상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아닌 ‘흐르는 콧물’이란 소리다. 김○○ 씨에게도 한땐 김○○ 씨만의 목표, 김○○ 씨만의 취미, 김○○ 씨만의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때 김○○ 씨는 한때 잘나가는 가수 지망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처를 받고 감당하지 못해 게임 중독 집돌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불행한 마음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무언갈 경험하고 고통을 느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해석한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혹은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앞선 경험을 토대로 고통에 대응한다.
안타깝게도 경험-반응 메커니즘은 수학처럼 명확하지 않다. “바다는 왠지 무서워. 이유는 잘 모르겠어.” 마음속 뒤죽박죽 들어앉은 온갖 기억들이 때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엉망진창이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며, 소심한 영혼들이 세상을 거부하고 게임중독 같은 자기 파괴적인 세계로 빠지는 이유다.
미국 인포그래픽 기업 파운더&파운더스(Funders & Founders)의 계산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만나는 사람은 대략 8만 명쯤 된다고 한다. 미국의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거칠게 추산한 수치로, 자료에 따르면 인간의 평균 수명 78.3세, 만난 사람을 기억하기 시작하는 평균 연령은 5살, 하루에 만나는 새로운 사람은 3명. 그렇게 (78.3-5)×3×365.24=8만 명이 된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난 지금까지 대략 3만 8,000명을 만났다. 아까 낮에 몇 명이나 떠오르는지 기억을 짜내보았으나 100명이 채 안 됐다. 특이하게도 이 100명은 내가 자주 만난 순서가 아니었다. 서너 번 스쳐 지나간 신촌 막걸리 행상 아저씨가 100명 안에 들어가 있으며, 딱 두 번 만난 모 철학자와 역시 두 번 만난 젊은 여성분도 포함돼 있다. 회사 동료들 이름도 적었다.
반면에 옛날 회사 건물 뒤 아침 먹으러 다니던 돈가스집 주인아저씨는 존재는 기억하지만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난 만난 사람의 일부만 그것도 만난 기간과 무관하게 기억할까. 그건 우리 기억의 작동법 탓이다. 우리 기억은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우리 기억의 작동법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 낯선 사람 7명과 독서 모임을 하기로 한 후 첫 모임을 가졌다고 치자. 박보검처럼 생긴 남자 A,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좋아한다는 여자 B 등. 당신은 이때 마치 작업대 위에 올리듯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켜 머릿속에 두는데, 이 당장의 기억이 ‘작업 기억’이다. 그런데 다음 모임 때 미처 책을 못 읽어 빠진다. 그다음 모임 역시 급한 일로 못 간다. 만난 지 시간이 흐르며 모임 멤버들에게 대한 기억은 흐릿해진다.
어떻게 생겼더라? 무슨 책을 좋아한다고 했지?
만난 사람들은 특별한 특징으로 예컨대 ‘A=조금 큰 박보검’, ‘B=조르바 여자’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이렇게 어떤 대상을 특징화하는 걸 심리학에선 ‘암호화’라고 한다. 긴 시간이 지나도 기억나는 ‘장기기억’은 암호화로 이뤄진다. 사람뿐 아니라 먹은 음식, 겪은 활동 모두 마찬가지. 내가 만난 3만 8,000명 중 어떤 이유로든 암호화된 이들이 바로 그 100명이다.
장기기억을 칠판에 그리면 단어와 단어들이 이어져 있는 연결망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망은 객관적이라기보단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의지해 있다.
- 경험: 동아리 모임에서 박서준처럼 생긴 남자를 만나서 말을 붙였으나, 잘 대답하지도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등 배려가 없더라. 그러더니 자기는 에일을 좋아한다며 진짜 맥주 좋아하는 사람은 에일을 마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에일은 허세 떠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술 같다.
- 연결망: (박서준 류 잘생김) – (배려 없음) – (에일) – (허세)
같은 경험이 반복되거나 한 번의 경험이라도 강렬하다면 박서준만 봐도, 에일만 봐도 눈살을 찌푸리는 비논리적이지만 강렬한 연결망이 형성된다. 사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만의 연결망을 만들어가고, 편견과 오해는 있을지언정 살면서 대부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감각이 예민하고 생각 많은 소심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마음속 연결망은 절대불변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난 말을 더듬었다. 운동은 못 했으며 공부는 중상쯤 됐다. 대단한 왕따 경험은 없으나 때때로 악의 없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 오래전 할아버지 장례식, 장지인 안동에서 고향 부산으로 오는 길에 어찌저찌 부모님 없이 나 혼자 친척들만 가득한 자동차를 타게 됐다. 졸다가 슬쩍 깼는데, 친척들은 내 부모님 욕을 했다. 돈을 베풀어야지 혼자 다 가지려 한다는 뒷담화였다.
대단한 폭행을 당한 것도 아니다. 뒷담화 역시 친척 사이에도 있을 법한 것이다(유산 상속 다툼은 이어지고 말았으나). 그럼에도 인간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보여주는 경험들은 벌어질 때마다 내게 커다란 충격으로 남았다. 인간은 모두 가면을 쓴 이기적인 존재며, 기회가 생기면 공격할 거라는 과장된 믿음은 영화 속 BGM처럼 내 삶에 백그라운드로 깔려 있었다. 뒤통수치는 사람을 만나면 보통 “이 사람은 나쁘군”하겠지만, 난 “사람이란 존재는 역시 나쁘군”이라고 확대 해석한다.
우울한 시기엔 책과 게임으로 이뤄진 혼자만의 세계로 틀어박히는 쪽을 택한다. 게임 중독 집돌이로 망가질 순간은 적어도 3번은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상처를 온전히 치유해주지 못했다. 세상에게 대한 내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힘들어)-(세상은 이기적)-(혼자)-(외로워)-(외로워서 힘들어)-(힘들어서 혼자 있을래) 악순환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마음속 연결망은 절대불변이 아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에 따라 연결망을 다듬는다. 앞선 ‘박서준-에일 불쾌 경험’을 한 사람이 박서준 닮은 맥주 덕후와 사랑에 빠진다면 앞선 연결망 따윈 깡그리 사라질 테다. 옛 이별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 애인이라는 뻔한 명제를 심리학은 굳이 어렵게 ‘인출 유도 망각’이라고 한다. 특정한 기억 항목 사이의 연결망이 강해지면, 다른 기억 항목의 연결망은 약해진다는 뜻이다.
혼자여도 괜찮아. 집돌이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해.
소심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우린 언젠가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특히 소심한 이들에겐 사람 하면 떠올리는 따뜻한 연결망이 잔뜩 필요하니까.
소심한 여러분에게 다행인 이야기를 하나 전하자면, 심리학은 특정 기억을 어렵게 떠올릴수록 다음부터 그 기억을 꺼내기 쉽다고 전한다. 마음속 연결망 중 어렵게 맺어진 것들은 더욱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 소심한 당신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긍정한다면 그 경험은 무엇도 쉽게 바꿀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가 될 거라는 이야기다. ‘느리지만 확실한 배움’이랄까.
원문: 주간 개복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