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출산 저하, 인구 감소, 가정 파괴, 가치관 혼란이 오고 있다. 동성애 해봐야 출산율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거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
동성애를 해봐야 출산율이 늘어나지도 않는다니! 수십 년 전 우익 인사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믿기지 않겠으나 지난 3월 지방선거를 앞둔 김 모 후보가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다. 한마디 말로 성적소수자와 출산하지 않는 이성애자 양쪽을 한 번에 X 먹이는 일타쌍피의 발언이라 대단하다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분은 “동성애를 교회에서 공부했다”는데… ‘충격과 공포’지만 세상엔 신기한 사람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김 후보의 걱정처럼 우리 부부 역시 인구 감소에 일조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몇 년째 사는 탓이다. ‘으흐흐 대한민국의 인구를 팍팍 줄여버리겠어!’라며 와이프와 작당 모의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우리 부부 둘만으로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낳지 않기로 하면 으레 많은 질문, 질문을 빙자한 강권이 따라온다. “아직 2세는 없으세요?(불임이면 어쩌려고)” “하긴 요즘 아이를 안 갖는 부부도 많다고 하더라고요(눈앞에 두고 말하지 마).” “그래도 아이를 낳아봐요.(쉽게 말하지 말고).”
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의 세월은 길지 않았다. 결혼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내게 출산 이슈를 꺼내는 사람은 모두 사라졌다. 명절 고향에서도 마찬가지. 친척들 역시 출산 이야기는 피하는데, 일부 친척이 실수로 저도 모르게 “좋은 소식은 아직…” 실수를 깨닫고 얼른 말을 주워 담는다.
빽 하고 화냈느냐고? 나 같은 갈등 회피 성향의 소심이가 그럴 리가 없다. 차라리 프라이버시를 쭉 침해당하며 세월을 견뎌내는 쪽을 택하지 싸우진 못한다. 그렇기에 나의 대응책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뤄졌다. 이번 글은 우리 부부처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거나, 낳지 않을 예정인 소심이들을 위한 오지랖 대처법.
안녕 난 오지랖이고 네 프라이버시를 반쯤 조질 거야
처음엔 어찌 답해야 할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대화를 끝내고자 아무 말이나 둘러대도 결론은 똑같았다. “저도 아이 좋아해요.” “그러면 낳아야지!” “아이 싫어해요.” “그래도 자기 자식은 귀여워. 잘 생각해봐.” “아이에 대한 제 선호는 중간이에요.” “중간? 그러면 낳아보면 알겠네.”
어떤 대답도 출산으로 수렴되는 신비한 신공을 펼치는데, 더욱 신비한 것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이들은 가끔은 출산에 대한 회의를 보이기도 한다. “아이 키우는 거 너무 힘들어. 삶이 없어져. 내 삶이.” 그럴 때면 이때다 싶어 “그렇군요. 역시 아이를 안 갖는 게…” 동의를 해보지만 소용없다. “아냐. 아냐. 그래도 좋은 게 많아. 낳아. 낳고 생각해.”
나라고 아이를 싫어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2년 전 어느 주말, 층고가 높고 아주 여유로운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 카페 창밖에서 유난히 귀여운 여성 아기를 발견했다. 한고은을 작은 버전으로 줄여놓은 듯한 그 아기의 눈에 웃음이 잔뜩 묻어 있었고, 나는 약간의 흐뭇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녀가 어머님 손에 이끌려 카페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이 꼬마 놈은 자기 메뉴를 따로 안 시켜준 게 마음 상한 듯 끝없는 칭얼거림을 시전했으며, 급기야 옆 테이블에 있던 나를 예의 없이 빤히 쳐다보며 독서를 방해했다. 창밖에 있는 쪽이 더 귀여웠는데. 난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귀여운 아기가 거리를 둔 상태로 아주 귀여운 짓을 할 때는 예뻐한다.
결혼 후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치 덕담처럼 모두들 2세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고, 난 큰 의미를 던진 말이 아니라고 되뇌면서도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그래서 옛 성현들의 말씀을 뒤지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답하면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저 말을 못 하게 할 수 있을까. 고찰하고 또 고찰한 끝에 발견한 답은 단순한 진리였다.
진심은 통한다
그래! 비출산에 대한 의문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해 답하자. 피하지 말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아주 후려 갈겨 주겠어. 그 후 “아이는 없으세요?”라는 질문의 답변 양상.
네. 와이프랑 전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로 하였어요. 둘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대를 잇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죠. 내 삶이 끝나갈 때 나를 닮은 어떤 존재가 세상에 남아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나의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만, 내 분신은 남아 내가 못다 한 세상 여행을 계속해나간다는. 하지만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괜찮습니다. 할아버지 연세가 92세이어서 호상이었거든요. 유품 대다수를 둘 데가 없어 버리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은 자기 인생이 끝난 후에도 무언가 남을 거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점점 옅어질 추억 한 조각뿐, 기대하는 것보다 남는 게 많지 않다. 결국 다음 세대는 그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 생은 내가 살아내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나도 와이프도 자기 인생을 충만히 채우는 걸 원하고 여기에 지금 또 다른 존재가 들어갈 공간은 없다. 당장은 우리의 판단대로 우리 인생을 만끽하자. 그게 인간으로 태어난… 저기요? 듣고 계세요?
누군가 물을 때마다 열과 성을 다해 비출산에 이르게 된 내 사유를 풀어냈더니 다신 묻는 사람이 없더라. 역시 북핵 문제든 비출산 문제든 진심만이 통한다는 걸 알게 됐다. 듣는 이가 왠지 넌더리 내는 표정을 보이는 건 아마도 오해겠지.
P.S.
당연한 이야기지만 출산이 필수는 아닙니다. 내 성향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라면 소심한 이들에게도 결혼이 행복할 수 있죠. 당연한 이야기네요.
원문: 주간 개복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