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는 입사를 갈망하고, 회사 안에서는 퇴사를 갈망한다. 현재 부는 퇴사 열풍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회사 밖에선 회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스펙을 쌓으며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회사 안에선 조직의 부품으로 쳇바퀴 도는 듯한 삶에 염증을 느끼며 퇴사를 꿈꾼다. 어쩌면 취준생의 다음 단계는 직장인이 아닌 퇴준생일지도 모른다.
직장인들은 왜 이렇게 퇴사를 갈망할까? 2017년에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서 ‘요즘 퇴사 욕구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으로 조사한 결과 남녀 직장인 496명 중 65.3%가 “그렇다”(매우 35.1%, 대체로 28.4%)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퇴사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퇴사 이유는 ‘낮은 연봉'(52.1%)이 꼽혔고 ‘낮은 직무 만족도'(30.2%)와 ‘과다한 업무량'(28.6%), ‘불편한 상사 및 동료 관계'(24.1%), ‘해당 업무의 적성 문제'(21.9%) 등이 뒤를 이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요인 5가지를 꼽아보았다.
1. 업무
나는 두 번의 퇴사 경험이 있다. 첫 번째 퇴사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다니던 직장이었다. 사실 입사 후 6개월부터 그만두고 싶었지만,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최소 2년은 채우고 직장을 나왔다. 첫 직장에서 6개월 만에 퇴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업무’ 때문이었다.
인문대 어문계열을 전공하고 나니 취업 문은 좁았고 나 또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취업난 속에서 졸업 전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부모님도 매우 만족하셨다. 그렇지만 난 일이 재미가 없었고, 의미를 찾기도 어려웠으며, 힘들기만 했다. 적성에 맞고, 의미 있는 업무는 어쩌면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내 첫 번째 직장은 업무는 고려하지 않고 회사의 이름과 안정성만을 보고 선택했고 결과는 퇴사로 돌아왔다.
직장생활의 what과 why를 결정하는 업무가 내가 원하는 것과 맞지 않을 때 퇴사를 결심한다. 때론 내가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했더라도 부서 이동이나 회사의 신규 사업 확장 등의 이유로 새로운 업무를 할당받는 경우도 많다. 이러면 조직 내에서 상사와 논의해 보고 업무 조정을 받을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 조직에서 세심하게 개인의 업무를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그 이후부터는 개인의 선택이다. 이처럼 내가 하는 업무가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을 때 퇴사를 결심한다.
2. 사람
함께 일하는 사람 또한 직장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에 업무가 싫기도 했지만, 조직 내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존경하고 따를만한 상사가 있었다면 퇴사 결정을 미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휴~ 5년 후, 10년 후 내 모습이 저렇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그 조직에 더이상 남을 이유가 없었다.
업무적으로 배울 것이 없는 상사,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서 업무 지시를 하고 감시하는 상사, 인격적으로 믿고 따라가지 못할 상사를 견디기 힘들 때, 그리고 상사뿐 아니라 동료나 부하직원과의 불화 등이 계속될 때 퇴사를 결정한다.
사람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만큼 직장생활에서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퇴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3. 보상
나의 두 번째 퇴사는 전공과 경력을 리셋하고 도전한,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장에서였다. 이 직장은 내가 하고 싶었던 업무를 할 수 있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일해도 행복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도 서로의 성장을 돕고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3년 만에 그 직장을 그만뒀다. 보상 때문이었다.
급여도 매우 적었을뿐더러, 매우 영세한 규모의 회사라 복지는 물론 내가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단지 물질적인 보상뿐 아니라, 조직의 비전과 안정성이라는 보상이다. 작은 조직일수록 경영자의 비전과 마인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보상을 앞에 두고 나는 더 이상 이 직장을 다닐 수 없었고, 이직을 결심했다.
4. 건강
매우 안타깝지만,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을 잃어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 사례도 많이 본다. 소위 말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이 자신에게 독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은 건강이 나빠진 것의 책임을 근로자 본인에게 돌리기도 한다. 물론 100% 업무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건강이 안 좋은 것에 대한 책임을 본인의 관리 소홀로 치부하고 퇴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을 앞둔 여성이 자주 마주하는 퇴사 사례다.
5. 더 나은 삶
직장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늘 반복되는 업무는 내게 성장의 기회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져 영혼 없이 눈앞에 닥친 일을 쳐내기만 한다.
난 좀 더 도전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데 조직에서는 늘 내게 그저 그런 업무와 역할만 부여한다.
내가 가진 역량을 발휘하고 품은 큰 뜻을 펼치기엔 조직이라는 틀이 너무 작다.
직장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매달 받는 급여를 받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해서 더 큰 것을 이루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 더 나은 삶을 위해 퇴사를 결심한다.
퇴사하면 행복할까?
퇴사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한 실업자 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용시장에 한파가 새로 취업을 하려는 청년뿐 아니라 재취업 시장에도 거세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체 실업자 87만 4,000명 중 30.0%인 26만 2,000명이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지 못한 ‘1년 이전 취업 유경험 실업자’였다.
1년 이전 취업 유경험 실업자 비율이 30%대에 진입한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보통 10%대에 머물렀던 1년 이전 취업 유경험 실업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대를 넘어섰다. 2012년 유럽발 재정위기 이후에는 20% 중후반대로 더 높아졌다. 최근 들어서는 줄곧 25% 내외를 맴돌았지만 지난해 9월과 10월 26.1%, 27.8%로 높아지다가 지난해 11월 급증했다.
- 세계일보, 2018.1.1.
이처럼 20대의 신입사원 고용 시장뿐 아니라 재취업 시장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긋지긋하고 힘든 현재의 회사, 퇴사만 하면 꽃길이 열릴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아래의 5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최소 4개 이상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 퇴사를 실행하는 건 어떨까?
1. 퇴사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가? 회사에게 있는가?
퇴사의 원인이 회사 때문이 아닌 나 때문이어야 한다. 힘든 업무 환경,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눈도 마주치기도 싫은 상사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려고 한다면 ‘이성적으로’ 한 번 더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직장이라도 내가 현재 힘들어하는 환경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단순히 지금의 힘든 환경을 벗어나고자 퇴사를 결심하면 퇴사 이후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조직 내에서 내가 힘든 상황을 바꾸고 극복하기 위해 충분히(물리적으로는 최소 1년 이상) 노력했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고, 1년 전과 똑같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관점을 조금 바꾸어 이렇게 생각해보자. 1년이란 시간 동안 나 또한 힘든 환경을 마주하는 데에 있어서 내공이 쌓일 것이고, 조직 개편으로 눈도 마주치기 싫은 상사가 다른 부서로 가게 될 수도 있고, 인력이 보충되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나눌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적당히 좋아하면 됩니다.
일본의 철밥통 회사인 아사히 신문을 자진 사퇴하고 월급과 물질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이나가키 에미코의 한 마디다.
2. 퇴사 후 최소 6개월간 기본적인 생계를 위한 자금이 마련되어 있는가?
많은 직장인이 퇴사할 때 간과하는 것이 급여다.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날마다 통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바로 빠져나가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불만이 많았는데, 퇴사하고 나면 그 쥐꼬리만 한 월급마저 간절해진다. 매월 한번씩 통장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들어오는 월급은 없어졌지만, 기본적으로 나가는 지출은 여전하며, 소득이 없을 경우 그 지출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퇴사 전, 퇴사 이후 기간 동안 필요한 생활비를 충분히 확보한 후 퇴사하는 것이 좋다. 바로 이직을 하거나, 개인적인 비즈니스를 할 계획이라도 혹시 그 계획이 어긋날 것을 대비해 퇴사 후 퇴소 6개월간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고 퇴사하는 것이 좋다. 단순히 생계를 이어나가는 차원에서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3. 퇴사 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직장에 다니는 동안 퇴사 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준비해서 퇴사해야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퇴사할 경우 힘든 상황에서는 잠깐 벗어날 수는 있으나 이후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퇴사 후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충분히 준비하고 퇴사하는 것이 현명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직을 계획 중이더라도 직장을 다니면서 옮길 직장을 확정해놓고 퇴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4. 직장을 벗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준비되어 있나?
같은 일이라도 직장 안에 있을 때 하는 것과 혈혈단신으로 나와서 하게 될 때는 차이가 매우 크다. 경력이 늘어나면 업무에 대한 노하우도 쌓이고, 자신감도 생긴다. 굳이 조직 내에서 같은 월급 받고, 눈치 보며, 위아래 간섭받으며 일하느니 나가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매우 좋은 시도이다.
다만 조직 내에서 회사의 이름을 걸고 일할 때와 퇴사 후 명함에 찍힌 내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일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퇴사 후 업무 경력을 살려 개인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게 될 경우 최소 2-3년은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월 최소 200만 원 이상의 순이익이 보장될 때 퇴사한다.”처럼 나름의 정량적 기준을 세워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력직의 경우 이 부분은 특히 더 중요하다.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서 해당 업무에 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은 확보해 놓는 것은 물론, 다른 회사에서도 나를, 내 능력을 탐내서 나를 모시고 가고 싶어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퇴사도 능력이다.
5. 가족 혹은 가까운 지인과 퇴사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퇴사 후의 삶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퇴사 후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를 수 있다. 이럴 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지지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나는 두 번의 퇴사 모두 그렇지 못했다. 특히,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 주위의 단 한 사람도 나의 퇴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첫 번째 퇴사 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나의 첫 번째 퇴사를 안타까워하신다.
가족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부작용으로 이후의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왜 그만뒀니?”라는 말만 돌아오기 때문에… 사실 몇 가지 이유로 나도 가끔씩 그 자리가 아쉽기도 하지만, 후회는 없다. 퇴사 후의 삶은 여러 가지로 불안정하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의 동의와 지지는 더욱 중요하다.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마치며
직장인에게 퇴사는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까지 따라다니는 숙제일 것이다. 그렇다.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퇴사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든 일이다. 매일 아침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아래의 문구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나를 의존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능력 있고, 단단한 나를 만들어 퇴사한다면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한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낭만직딩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