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유행, 베스트셀러의 흥행이라는 것에는 박탈감이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주변 사람 혹은 주로 접하는 영역의 사람들이 소비하고, 공유하고, 누리는 것에 나도 ‘소속’되고 싶다는 욕망, 그런 것들을 점점 ‘나만 모르게’ 되어간다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 사람들에게 책을 소비하게 만든다. 그렇게 보면, 베스트셀러의 소비 역시 핫플레스, 핫한 아이템 등에 대한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도서 마케팅의 승패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최근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출판사 중심의 팬덤 관리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그 팬덤 내의 집단적 취향의 획일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집단적인 소비의 취향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달 나게끔 유도하는 이미지와 유행의 마케팅으로 독자-소비자를 끌어당기고자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책 소비자는 특정한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그런 앎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기 자신의 성장에 대한 욕망으로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갈수록 유행하는 책을 소비하는 군집에 자신도 ‘합류’하여, 나도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심리가 크게 작동하고 있다. 그럴 때, 그 작가와 SNS나 팟캐스트, 방송 등으로 형성된 여러 방면으로의 친밀감도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책 마케팅 시장에서 가장 대규모로 광고비가 소모되는 곳은 인터넷 서점의 배너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 채널의 페이지들이다. 인터넷 서점의 배너광고들은 책을 실제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있다. 한 마디로 타깃팅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배너 광고는 보통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의 순위에 진입한 책들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베스트셀러’이고 ‘화제’인 책을 구입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소외되고, 박탈되는 듯한 느낌을 조장하는 것이다.
SNS 채널에 카드뉴스로 제작되어 홍보되는 책들도 보통 권당 몇백만 원씩의 광고료가 투입되는데, 이런 채널 홍보에 뛰어난 이들이 책의 내용 자체를 훌륭하게 전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책의 핵심과 다소 엇나가더라도, 그 책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으며, 그 무언가를 얻지 않으면 대단히 손해라든지, 대단히 뒤처질 수 있다든지, 대단히 아쉬울 수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지점을 건드림으로써, 소비자의 불안을 조장한다. 그런 불안, 안달 남, 소외에 대한 강박을 통해 책을 소비하게 만든다.
당신의 피곤하고 불안한 일상에 ‘엄청난 위로’를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따뜻한 책 한 권. 그러나 실제로 그 책이 주는 위로는 내가 그 책을 소비함으로써 집단의 취향, 흐름, 유행에서 뒤처지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데서 오는 안도감에 가깝다. 엄청난 시대적인 통찰력을 주어, 사회에서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할 것 같은 책 한 권. 하지만 그 책이 주는 것 역시 실제의 생존력보다는 단지 화두가 되는 그 책을 손에 쥐게 된 데서 오는 잠깐의 안심에 불과하다. ‘유명 셀럽’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역시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때 가장 적절히 이해된다.
다른 책을 예로 들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 필자가 쓴 책을 예로 들어보자. 『고전에 기대는 시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소비되려면 사람들이 단지 이 책에 실린 고전들에 흥미가 있고, 고전을 읽어 보고 싶고, 내용이 궁금해서는 안 된다. 그 정도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미 세상에 넘쳐나고, 훨씬 즉각적인 방식으로 채워질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소비되려면, 모두가 ‘고전 읽기’의 열풍에 휩싸여서 고전을 모르면 박탈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주변 영역 혹은 내가 자주 접근하는 세계에서 일종의 화두여서, 이 책을 통해 그런 주변 영역에 참여하고, 관계 맺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 책을 읽지 않는 일에서 모종의 소외감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이 책 내용의 일부, 글귀가 마음에 든다든지, 몇몇 고전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로는 ‘적극적인 소비’가 일어나기 어렵다.
반면 『청춘 인문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당시는 바야흐로 인문학의 열풍이란 게 시작되던 무렵이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문학책 한 권씩은 읽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특히, 청춘들은 취업 준비라든지 위로라든지 꿈이라든지 멘토라든지 하는 여러 측면에서 인문학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 청춘들 사이에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대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 소외감, 불안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책은 소비된다. 실제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결국 책의 소비 역시 핵심은 그 내용이 얼마나 양질이며, 얼마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등보다는 그 책의 ‘테마’가 속한 맥락이 훨씬 중요하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도 휴대폰을 신형을 바꾸고자 하고, 모두가 간다는 핫플레이스를 찾아가는 욕망과 비슷한 욕망이 책의 소비에도 작동한다.
그렇기에 소위 ‘스타 편집자’ 혹은 스타 기획자, 마케터가 생기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책들이 내용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사람들의 빈틈을 파고들어 불안, 박탈, 소외 등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켜서 특정한 책이라는 물질적 대상에 손을 가져가게 할 수 있는지 감각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양질의 좋은 책들을 스스로 찾아 나서주는 독자란 얼마나 귀한 시대인가. 그런 독자 한 명이 휩쓸려 소비한 뒤 내다 버리는 독자 1,000명보다도 소중한 그런 시대다. 작가에게도, 출판 생태계에도, 이 사회와 문화에도 말이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