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파트를 구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부싸움과 가정불화가 극심해진다는 뉴스를 보았다. 실제로도 주변에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카페에 들러 카페 주인이 아침부터 싸놓은 2,000원짜리 주먹밥을 보는데 갑자기 서글픔을 참을 수 없어졌다.
누군가는 몇천 원을 더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밥을 하고, 스팸을 굽고, 랩에 예쁘게 감싸서 가지런하게 놓아둔다. 그렇게 자신의 성실함과 그로 인해 얻은 보상으로 하루 몇만 원쯤을 더 벌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누군가는 단지 부동산값이 폭등하는 지역에 몇 년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억에서 수십억을 쓸어 담는다. 매일 아침 일어나 스팸 주먹밥 수만 개를 팔아도 평생 얻을 수 없는 돈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주워 들이는 것이다.
아마 카페 주인은 10년 뒤에도 주먹밥 비슷한 것을 만들 테지만 강남에 아파트를 사두었던 누군가는 그냥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마어마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끝도 없이 떠날 수 있는 여행, 쌓아 올릴 수 있는 명품, 필요도 없는 여러 채의 주택들, 자유로운 주거 이전, 그리고 계속 더 불어나는 부를, 말이다.
부동산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이미 폭등한 지역에 안착해 여유로운 하루를 만끽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완전히 포기해 외면한 사람들, 그 중간에 낀 대다수의 사람, 즉 거의 모든 일반인 말이다. 삶에서 아직 쉴 수 없는 이유가 많고, 책임져야만 하는 것, 추구해야만 하는 것,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들이 산더미처럼 남은 사람들. 살아가는, 나아가야 하는 그런 거의 모든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부동산이 악질적인 이유는 실제로 일관되게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느긋한 태도로, 현명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일상의 행복을 누리던 어느 가족의 삶을 박살 내버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만한 어떠한 합리성 없이, 돈을 쓸어 담는 어떤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가도 얻을 수 없는 돈을 그저 주워 담는 존재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는 이야기가 일상의 평화에 침투하며, 조급함, 강박, 초조함,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스포츠 스타나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한 사람,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둔 사업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파괴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그런 사람을 보며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존경하거나 동경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차별성 없이, 단지 ‘어딘가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저 어느 땅에 눌러앉고 숨 쉬었다는 이유로 나라의 부를 쓸어 담는 존재와의 격차는 우리가 삶에 대해 믿는 거의 모든 근거를 박탈한다.
과연 성실히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노력의 가치, 공정함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앞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앞에는 종교나 인문학조차 무력해 보인다.
강남의 교회에서는 자신에게 부와 풍요를 내려주신 하느님께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기도가 올려진다. 그곳은 하나님이 승리하신 나라이자,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지방의 교회에서는 청빈한 예수를 닮자는 위안의 기도가 울려 퍼지며, 가진 것에 만족하는 하느님의 종이 되자는 ─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 ─ 예배가 행해진다.
우리는 그 명백한 분열 앞에서 종교 속에서조차 일치를 이룰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선택지란 두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분열 속에서 ‘미치는 데 합류’하거나 ‘포기’하거나. 그러나 어느 쪽도 온전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문학 역시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장자와 같이 물 흐르듯 부동산 투기에 합류하세요! 아니면, 똑같이, 장자와 같이 저 중생들의 현실에 냉소하고 자기만의 삶을 누리세요! 거의 모든 철학자가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해 분열적으로, 모순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지혜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누군가에는 위안을 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완전한 기만이 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거의 유일한, 유효한 대답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분열을, 딜레마를 끌어안고 버팁시다, 견딥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저 현실이 삶을 파괴하게 두지 말고 삶을 지켜냅시다.
하지만 그렇게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온 사방에서 돌팔매질을 견뎌야 하는 처지가 되어간다. 미쳐버리거나, 초인이 되거나. 이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살아내기가 끔찍할 정도로 힘든 세상이 되어간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