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달 동안 새로운 브런치 매거진을 구상했다. 현대인의 다른 ‘일’ 혹은 ‘미래적 노동’에 관한 글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러다 박성미 작가의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할 권리」라는 글을 만났다. 그녀의 글을 줄이면 이렇다.
- 새로운 활동의 등장: 디지털 시대, 이제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활동 자체가 달라졌다. 상금은 존재하지만 월급은 존재하지 않는, 조건 없이 해내는 자발적인 노동이 여러 사업의 근간이 된다.
- 자발적 노동의 가치: 돈을 버는 일에 얽매이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가 값없이 누리는 수많은 콘텐츠가 탄생했다. 자발적 노동이 멈추어진다면, 우리가 매일 즐기는 많은 미디어 사이트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 생계의 딜레마: 공공 지원사업의 허와 실. 공공에 득이 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고,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창조 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져온다.
- 돈이 되는 일과 생산적인 일은 다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보라. 기업에 돈을 벌어다 주는 광고는 사용자를 불편하게 하고, 이윤을 기대하지 않고 공유되는 콘텐츠는 페이스북의 가치를 높인다. 돈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에 쓰이고, 사람들은 의식주 문제 때문에 비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
- 언어의 힘: ‘돈이 되지 않지만 생산적인 일’을 요약해주는 단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존재를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추상적인 이름 대신, 진짜 이름이 시급한 때이다. 작가는 비시장 경제나 자유 생산과 같은 단어 몇 가지를 추천한다.
-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지속할 권리: 기본 소득을 일과 놀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활동을 할 자유라고 표기했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박성미 작가의 글은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활동. 자발적인 노동, 돈이 되지 않는 일과 같은 표현 속에서 나는 ‘소극적 소득(Passive Income)’이라는 첫 번째 주제를 선택했다.
소극적 소득의 정의
소극적 소득이란 무엇일까? 소극적인 사람들의 경제활동이나 소극적인 방법으로 번 돈을 칭하는 말일까? 영어로는 Passive Income이라고 불리고, 직역하면 ‘수동적인 수입’이 된다. 이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의 반대어인 적극적 소득(Active Income)을 먼저 살펴보자.
적극적 소득은 우리의 활동에 따라 돈이 벌리는 수입 통로를 이야기한다. 경제학적인 해석은 한 사람이 자신이 제공한 서비스에 합당한 돈을 버는 것인데, 이는 당신의 월급, 시급, 얹어 받는 팁, 특정 서비스에 따른 수수료 등이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참여 중인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물질적인(신체적인) 참여로 돈을 버는 방법이다.
- Investopedia 참고
소극적 소득은 이와 반대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소극적 소득으로는 가진 집에 임대인을 들여 월세를 받는 것, 투자금을 가지고 동업자로 회사를 창업한 후 직접 출근은 하지 않지만 회사 활동에 따른 수익을 받는 것 등이 있다. 이런 예시들은 쉬이 범점할 수 없는 부촌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신 물결에 빗대어 소극적 소득의 다른 예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박상미 작가의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할 권리」의 시선을 빌려보자. (지금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야말로 소극적 소득이다. 당장은 이윤이 없으나 미래에 일어날 수입을 위해 하는 투자나, 재미와 심적 보상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 이들은 음악이나 공예를 포함한다. 한 사람이 사장과 말단 직원의 역할을 다 해내는 단독 기업가(solopreneur)나 정보를 상품화하여 돈을 버는 정보 기업가(infopreneur)의 창업 아이디어.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어야만 하는 고독한 청춘들의 경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아르바이트가 적극적 소득이라면, 개인의 취미와 취향에 더 합당하지만 많은 시간은 할애하지 못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야말로 소극적 소득원인 셈이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이 아닌 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 쥐어질 경제적 자유를 나는 ‘소극적 소득’이라 부르고 싶다.
소극적 소득의 현재
영어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두 시장에서의 소극적 소득을 따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먼저 영어권의 북미를 보자. 이곳에서 블로그는 소극적 소득의 대표적 도구이다. 블로깅은 컨설팅, 온라인 수업, 자료, 전자책 등의 활동들과 연계되어 프리랜싱만으로는 꿈꿀 수 없는 돈을 벌어다 준다. 각각 사이즈만 다를 뿐, 제공하는 서비스의 모습들은 비슷하다. 개인 블로거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공유한다.
가장 추천되는 방법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같은 요일에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다. 콘텐츠는 인센티브 나 옵트인(Opt-in)이라고 불리는, 유용하지만 무료인 자료들로 독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얻는다. 이메일 주소를 모으는 것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만들어내고, 가장 먼저 이메일 구독자들에게 나누어준다. 한 분야의 전문 블로거가 되기 위해 이 활동을 지속한다. 그동안 구독자들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는 어떤 특정 질문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블로그를 가장 먼저 방문할 만큼의 신뢰 관계를 뜻한다.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출판을 하거나 온라인 코스를 판매한다.
블로그와 연동된 컨설팅 서비스나 피트니스 클래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블로그가 다른 사업 아이템을 끌어낸 경우다. 개중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블로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 중에는 취미였던 블로그로 돈을 벌게 된 이후에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투잡을 뛰기도 한다. 그들은 사이드 허슬러(Side Hustler)라고 불린다.
또한, 계속 많은 시간을 할애해 콘텐츠를 만들지는 않지만, 한번 올려놓은 글과 전자책으로 연속적인 수입을 내는 작가들도 있다. 소극적 소득의 교과서적 정의가 잘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나의 직접적 참여 없이도 통장에 꼬박꼬박 새겨지는 숫자들이 소극적 소득의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물질적 결과물의 최대치가 아닐까.
외국의 경우처럼 아주 다양하지는 않지만 한국에도 블로깅을 통한 소극적 소득의 사례가 있다. 제주로 내려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아이엠피터 씨의 블로그 메인 페이지에는 통장 정보가 적혀 있다. 구독자 중 몇 퍼센트가 매달 그에게 돈을 부쳐준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백만 원, 천만 원이 넘는 가치일 수도 있는 그의 콘텐츠. 누구도 하나의 콘텐츠에 합당한 값을 정확히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구독자의 작은 성의와 참여가 소극적 소득이 되어주는 멋진 예다. 팟캐스트 및 강의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신다는데, 한국에서도 블로깅에서 시작된 소극적 소득의 파장이 작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의 소극적 소득으로는 큰 규모의 강의와 소규모의 수업을 함께 하는 여러 작가와 온라인 교육자들이 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극적 노동자들로 보고자 하는데, 실은 그들의 활동들이 적극적 소득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서비스는 ‘책’이라는 콘텐츠를 위한 부가적 활동이라는 점 때문에 세미 소극적 노동자라 이름 붙여본다.
한번 만들어놓은 영상이 꾸준히 수입이 되어주는 유튜버들의 경우, 한 영상에 예상외의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고, 영상을 만드는 일 자체는 적극적 활동이지만, 인터넷에 공개한 이후로 꾸준히 얻는 수익은 소극적 소득이다. 이전 영상으로 돈을 버는 순간이 바로 새로운 영상을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블로깅이나 유튜브, 전자책 시장만이 소극적 소득의 사례인 것은 아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말로 하는 팟캐스트부터 손으로 하는 공예까지, 작은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박성미 작가의 글도, 1) 일도 놀이도 아닌, 2) 생산적이지만 예술은 아닌, 3) 자원봉사라고만 하기에는 희생을 넘어선 모든 활동을 아우른다.
소극적 소득의 활동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경제적 이윤을 이끌어낼 투자이다. 그리고 투자라고 해서 매번 큰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과 전문성이 만나야만 수입이 생기는 세상의 많은 분야처럼, 개개인의 재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콘텐츠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센스도 큰 작용을 한다. 투자적 의미를 지닌 경제활동. 이것에서부터 소극적 소득은 시작된다.
소극적 소득의 미래
정보 나눔을 흥미롭게 여기는 사람들은 인용과 좋아요 버튼, 공유하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소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활동의 성장 버전이 바로 유튜브이다. 유튜브에서는 유투버 자신들이 좋아하는 화장품과 책, 영화와 문규루등을 찬양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의 주 소득원은 광고. 유투버들은 영상이 조회된 숫자만큼 수수료를 받는다든지 영상에서 언급한 제품의 회사에서 스폰을 받는다. 광고, 광고, 광고… 이 외에는 정말 돈을 벌 방법이 없는 걸까? 콘텐츠의 생산활동 자체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들이 있다. 바로 고객들에게서 직접 투자를 받는 크라우드펀딩과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다.
크라우드 펀딩의 대표주자로는 킥스타터(Kickstarter)가 있고, 크리에이터가 구독자를 모아 모금하는 사이트로는 패트리온(Patreon)이 있다(미래적 노동 시리즈의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예정이다. 기대해주시라!). 블로깅 사이트인 미디엄(Medium)에서도 최근 유료 멤버십을 시작했고, 중국에서도 돈을 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의식주를 책임져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날. 놀이와 일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어떤 분야에도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에 합당한 돈의 자유가 주어지는 날.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줄 변화들이 생겨났음이 분명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극적 소득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 믿어본다.
소극적 소득이 전 수입을 대체하는 그날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일개미의 삶보다는, 날이 좋은 날에는 공원에 나가 기타를 연주해도 먹고살 걱정이 없는 베짱이로 살아가고 싶다고? 날이 추워 밖에 나가 연주를 할 수 없는 겨울에는 개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거기에서 얻은 수입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이고 싶다고?
박상미 작가의 말처럼 기본 소득이 자발적 노동과 생산적 활동을 위한 선불 급여가 되어 자발적 활동의 보상 시스템이 되어줄 수도 있다. 소극적 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소극적 노동자의 재능과 모든 활동이 수입의 100% 이상을 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라면 더없이 좋겠다.
물론 벌어들일 ‘돈’ 전에는 질이 있어야 한다. 콘텐츠의 모습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만 그 내용이 중요하니까. 끄적거린 낙서로 보이는 하나의 글이 사실은 어느 비운의 화가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라면 이 낙서가 갖는 가치는 달라진다. 블로거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나열한 것처럼 보이는 포스팅 하나가 어떤 독자에게는 그 순간 정말 필요했던 응원이자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몇 해 전, 두바이에서 대학을 다니는 고등학교 후배 녀석이 뉴욕에 놀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졸업 후 법대 대학원 진학을 꿈꾸던 녀석이라 비정부 기관에서 인턴십을 한다 했다. 비정부 기관은 늘 국가에 보조금을 신청해야 한다고 알던 터라 후배에게 물었다. 기관의 경제 상황이라든가 그들이 하는 일에 돈이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이 궁금했다. 질문을 받은 후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기관 전체가 하는 일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존경받아 마땅할, 훌륭한 일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돈이 주는 한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했다.
소극적 노동자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에도 같은 이유가 있다. 생계를 이어갈 수 없을 땐 소극적인 노동마저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적극적 노동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잠시나마 해결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돈이 줄 수 없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한단 말인가. 사람마다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다르듯, 적극적 노동이 아닌 소극적 노동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선택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겐 결단코 소중한 일. 충분하지는 않지만 수입이 되어주는 일. 지금은 맨땅에 헤딩처럼 보일지라도 다가올 미래를 위한 투자일 일. 쉬지 않고 바이올린을 켜는 세상의 모든 베짱이가 각자의 방법으로 소극적 소득의 자유를 찾을, 머지않은 미래를 상상해본다.
원문: Yoona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