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은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아우른다
직장은 사람이 모인 곳이다. 모였으니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더없이 중요하다. 직장 생활의 9할이 커뮤니케이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메일은 그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전화나 대화, 회의, 보고 등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있지만 ‘이메일’은 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관통한다.
전화로 이야기하거나 회의하고 난 뒤, 또는 보고하기 전후에 우리는 “이야기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라고 한다. 위에 열거한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휘발되지만 이메일은 ‘증거’로 남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감정이 격해져 상대방과 싸우더라도 말로 해야지, 이메일로 감정이나 잘못된 언행을 남겨선 안 된다(어렸을 땐 요상한 정의감에 휩싸여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이메일에도 거침없는 표현을 넣곤 했는데 이제 보면 얼굴이 좀 화끈거린다).
일(업무)은 내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어느 상대와 이뤄진다. 그것이 팀 내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상사 또는 유관 부서 등이 될 수도 있다. ‘티키타카’로 표현될 수 있는 직장에서의 업무는 ‘공 던지기’와 같다. 즉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공’을 상대방에게 던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메일을 받았다면 ‘공’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공을 던졌다면 그 공이 다시 오길 기다려야 한다. 공을 받았다면 그 공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공을 받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즉 받은 이메일에 담긴 업무를 해결하지 않거나 아무 회신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업무에 있어 큰 차질이 발생한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덤이자 필연이다. 나에게 온 이메일은 나와 연관이 있을 것이고 내가 (일정 또는 전체를) 해야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을 던질 때도 잘 던져야 한다.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패스는 최악이다. 그래서 이메일을 보낼 땐 보내는 목적과 받는 사람이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내야 한다. 메일을 보내고 답이 없을 땐 상대방이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예상외로 메일을 애매모호하게 보내서 그런 경우도 있다. 가끔 메일을 받아보고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이걸 뭐 어쩌라는 거지? 그래서 회신을 해야 해 말아야 해?”라고.
이메일은 이처럼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이 되고 다른 것들을 아우른다.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이다. 주고받는 기술도 잘 익혀야 한다. 잘 던져서 상대방이 잘 받게 그래서 나에게 다시 잘 오게 하거나 골로 연결해야 한다. 받은 공은 내가 알아서 ‘골’로 연결하거나 상대방이 ‘해결’할 수 있게 잘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엔 이메일 회신 유형을 살펴보려 한다. 물론 내가 제대로 된 이메일을 보냈을 경우다. 상대방이 잘 받도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메일을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이해를 돕도록 간결한 문장과 도표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유첨까지 넣어서 말이다. 재밌는 것은 회신하는 유형을 보면 그 사람의 업무에 대한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블랙홀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공을 던졌는데 공이 온데간데없다. 선수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에게 빨려 들어간 이메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메일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업무도 잘하지 못한다. 평판은 좋지 않다. 악명이 높은 것이다. 대체로 개념이 없거나 회사에 미련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가끔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신입사원도 이에 해당한데 그나마 그건 이해할만하다.
2. 미확인 삭제형
블랙홀과 궤를 같이한다. 메일의 앞만 읽어보고 그냥 삭제해 버린다. 골치 아파 보이는 일이면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강렬한 욕망에 ‘이 메일은 나와 상관없을 거야’ 주문을 외우며 다 읽지도 않고 삭제한다. 심한 경우는 제목만 보고도 삭제한다. 수신자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 사람에게 회신이 없어 동요하면 그제야 메일을 복원해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받아 마지못해 회신한다. 그나마 회신 오는 것이 블랙홀과 큰 차이라면 차이랄까. 하지만 업무의 중요한 시점을 놓친 뒤가 많다.
3. 뒷북형
수많은 수신자가 얽혀 이메일 릴레이가 될 때. 꼭 뒷북을 치는 사람이 있다. A로부터 시작된 어젠다가 이메일이 오가며 S까지 와 있는데 갑자기 전체 회신으로 C를 이야기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상당히 큰 혼란이 가중된다. 만일 C를 이야기하는 메일에 다른 뒷북자가 C나 D를 이야기하면 더욱더 가관이다. 점입가경의 끝이다.
릴레이가 되는 이메일이 있다면 위(최근순)에서 아래로 내려 읽는 것이 좋다. 가끔 밀려 있는 이메일을 아래에서 위로 읽는 사람들이 이러한 실수를 많이 하는데 각자의 스타일이니 뭐라 지적할 순 없지만 그래도 최근 이메일은 확인하고 회신하는 것이 좋다.
4. 전달형 & 스루패스형
마치 자신이랑은 상관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무조건 전달하고 보는 경우다. 물론 자신과 연관이 적거나 다른 적합한 담당자나 부서가 있다면 그리해야 한다. 하지만 보지도 않고 전달하는 경우가 꼭 있다. 간혹가다 전달을 했는데 손에 코 안 묻히고 코를 푼 경험을 한 사람들이 가진 좋지 않은 습관이다. 이런 경우 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전달한 뒤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강한 클레임과 수신인들의 야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회신하곤 한다. 진작에 자신이 알아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5. 고자질형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거나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하려고 회신할 때 높은 사람을 수신자에 추가하는 경우다. 물론 필요하다면 문제를 알려야 하고 공식화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 또한 이런 방법을 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것을 너무 쉽게 남발하는 경우다.
높은 사람을 수신자에 넣었다면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실무자들의 이전투구에 끌어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나 또한 갑자기 다른 실무급의 이메일에 끌려 들어가곤 하는데 그것이 생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바로 구분된다. 이전투구일 경우는 아예 관여하지 않거나 대책 없이 나를 끌어들인 사람을 불러 조언을 준다.
6. 시간 벌기형/조건형
바로 회신을 해야 함에도 납기를 늦추는 유형이다. 납기를 늦추기 위해 다른 담당자나 유관 부서를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내가 회신을 하려면 어느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연락이 안 된다거나 어느 부서에서 먼저 끝내주면 회신을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일에는 절차가 있고 담당자가 있기에 순차적 진행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간 벌기/ 조건 형’의 사람은 자신이 끝낼 수도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의 상황을 끌어들여 일을 미룬다. 시간이 정말 없거나 아니면 ‘혼자 책임을 뒤집어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이러는 경우가 있다.
7. 뻥 지르기 형
뭔가 회신이 오긴 오는데 누구에게 다시 보낸 것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메일인지 모르는 경우다. 문제 해결이 필요한 이메일일 경우 수신자가 많지만 그런데 ‘뻥 지르기 형’으로부터 온 메일은 회신한 것인지 전달한 것인지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종결한 것인지 모르겠다. 수신인을 지정하지 않거나 해결해야 하는 일에 대해 동문서답을 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회신해서 어디라도 걸려라 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내지는 그 메일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경우다. 후자 쪽인 경우가 더 많다.
8. 끝까지 읽지 않는 형
자고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우리네 말은 더 그렇다. 이메일은 더더욱. 분명 필요한 유첨과 표가 이메일에 다 포함이 되어 있는데도 “유첨은 안 보내 주시나요?” “이해하기 쉽도록 표를 그려주세요” 등의 회신이 오고야 만다. 다른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유독 혼자 못 보고 회신을 하는 경우. 다른 수신인들도 안타까워할 정도다.
9. 실수형/메시지형
회신 내용을 다 쓰지도 않았는데 빨리 회신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꼭 유첨을 첨부하지 않아서 동일한 제목의 메일을 다시 보낸다. 한 번에 정리해서 보내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보내서 마치 이메일을 톡을 보내듯 보내는 경우도 있다. 보는 사람은 상당히 피로하다.
10. 모범답안형
물론 모범답안형도 있다. 위에 열거한 것들을 종합해서 반대로 하는 경우다.
- 받은 메일은 신속하게 회신한다.
-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반응을 한다.
- 최근 진행되는 내용을 확인하여 뒷북치지 않는다.
- 내가 해야 하는 일인지 다른 곳으로 넘겨야 하는 일인지 신중하게 체크하고 적정한 수신자를 엄선한다.
- 메일을 보낼 땐 누가 응답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신자’와 ‘내용’을 명기한다.
- 상대방이 보낸 이메일은 끝까지 읽고 유첨의 내용까지 확인한다.
- 보내기 전에 오타는 없는지, 유첨은 첨부되었는지 확인하고 송부한다.
고백하건대
사실 위에 열거한 유형에 나는 모두 해당된다. 내가 실제로 겪은 일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나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회신하는 경우도 있고 유첨을 첨부하지 않고 보내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상황에 따라 입장이 변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개선할 것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유형을 미리 살피고 나는 어떤 유형인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복기하며 ‘저러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보자.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