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뷰
이거 한 번 볼래????
이게 뭐야?김리뷰
글인데 꽤 괜찮아 읽어봐???
너무 길어 세 줄 요약 좀김리뷰
ㅡㅡ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지 햇수로 5년이 지났다
여러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난 최근에 리뷰를 그만둔 것 같다. 리뷰도 안 하는 주제에 왜 김리뷰냐? 아직 적당한 필명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한편 남한테 필명을 추천받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리뷰를 그만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은 글 쓰겠다는 일종의 각오를 말했을 뿐이다. 해명 인터뷰도 몇 번 했다. 다만 사람들은 ‘김리뷰 은퇴’ ‘김리뷰 리뷰 관둬’ 같은 토픽 외에는 내게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뭐, 괜찮다. 어차피 나도 나 아니라 토픽에만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 지친 참이다. 공급도 수요도 아다리가 맞아야 하는 거니까.
이러나저러나 내 글을 읽는 사람은 토픽이 아니라 내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리뷰왕 김리뷰’ 대신 ‘페이쓰북에 이딴 글 쓰지 마’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대부분 글이 개인 작업물이다.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짧은 것은 반백 자도 되지 않지만, 긴 것은 만 자를 넘긴다. 페이지 제목은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받았던 한 메시지 때문에 홧김에 만든 페이지지만, 정말이지 페이스북에 쓰면 안 될 것 같은 ‘이딴 글’만 써대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휘발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긴 글을 주로 읽는 곳이 페이스북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애당초 긴 글이란 시대착오적 콘텐츠 같다. 영상이나 음악과 달리 긴 글을 소비하는 과정은 노동에 가까운 느낌. 페이스북은 노동을 하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마케터 및 사업자 정도를 제외하면) 머리를 비우러 들어오는 곳 아닌가.
일하는 사람에게 작업공간과 주거공간의 분리가 중요하듯이, 플랫폼의 이용에도 성격적인 구분은 필요하다. 그래서 코엑스몰에 생긴 별마당 도서관에는 복잡한 감상이 있다.
코엑스 입장에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도약을 꿈꾸며 구축한 듯한 느낌이지만, 진지하게 별마당 도서관에서 정독되는 책의 권수보단 바로 근처 고디바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소비량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소비하는 것과 읽는 것은 꽤 다른 차원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과정과 달리 책을 읽는 과정은 좀 더 개인적이고 섬세한 작업이다. 때문에 별마당 도서관이 코엑스몰에 디자인적 세련미를 더해주었을지언정 본디 ‘도서관’으로서 가지는 기능적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는 의문이다. 코엑스는 활기차고, 북적거리고, 뜨겁고, 세련된 소비 공간이지만… 글쎄. 난 『위대한 개츠비』나 『기사단장 죽이기』 같은 걸 별마당 도서관에서 읽고 싶진 않다. 읽는다면 『나만의 특별한 후쿠오카 여행기』나 『일본식 라멘 제대로 즐기는 법』 같은 책이 아닐까. ‘정독’할 필요 없는, 정보 지향적이고 소비 지향적인 텍스트들 말이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코엑스몰과 도서관 이야기를 하느냐? 요컨대, 내 생각에 코엑스몰은 페이스북이고, 페이스북에서 긴 글을 쓰는 것은 코엑스몰에서 고전 시가나 소설을 정독해주길 기대하는 짓 같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발전해버렸고, 이제 시나 소설을 대체할 콘텐츠는 셀 수 없이 많아졌다. 문명의 이기를 빠짐없이 누리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인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같은 푸념을 늘어놓아봤자 의미도 없다. 세 줄 요약, 세 줄도 길어서 한 줄 요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그냥 세상과 사람이 그렇게 변했을 뿐이다
페이스북의 휘발성은 글의 길이와 깊이 모두에 보이지 않는 제한을 건다. 이렇게 긴 글은 읽지 않을 거야, 이렇게 오글거리는 글에는 관심이 없을 거야, 감히 이딴 글을 페이스북에 쓰게? 페이스북은 핫하고, 멋지고, 세련되고, 명확한 글만 읽는 곳인데? 너 같으면 별마당 도서관에 앉아서 『오만과 편견』을 읽을 수 있어? 바로 건너편에 메가박스가 있는데?
다소 과장 같겠지만, 글을 써서 올리는 입장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법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5년이나 리뷰를 했다.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것들, 멋진 것들, 명확한 결론이 나오는 것들, 판단하기 쉬운 것들, 시대에 흐름에 어긋나지 않을 것들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렇게 ‘리뷰왕 김리뷰’는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내 입장에서, 카드 형태의 콘텐츠는 타협에 가까웠다. 페이스북에서 글만 줄줄 써봤자 사람들은 읽지 않을 테니까, 이미지랑 일체화해서 간단하게 올려보자. 이런 생각이 카드뉴스의 시대에 불씨를 던졌다. 그러나 시대는 영원하지 않고, 곧 도래한 유튜브와 영상의 시대는 나더러 타협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이미지를 만졌는데. 이제 글을 쓰고 싶으면 영상을 하라고?
시도는 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나는 글쟁이가 아니라 콘텐츠 기획자여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다만, 소기의 성공에도 난 불행했다. 내가 만들어낸 건 글도 뭣도 아니었고, 내가 아닌 누구라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난 나를 부지하기 위해 내가 아닐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은 싫었다.
결국 난 위에서 나온 ‘콘텐츠 포기 선언’을 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시와 수필 그리고 엽편 분량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상으로의 발전은커녕 카드 형태에서도 퇴화한 셈이었다. 왜 페이스북에 이딴 글을 쓰느냐.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코엑스몰에 크고 아름다운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학교 앞 분식점 떡볶이가 아무리 맛있더라도 평생 된장찌개를 안 먹고 살 순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늘 괜찮은 사람들뿐이다. 다들 멋지고, 세련되고, 오늘도 뭔가 대단하고 행복해 보이는 일들을 한다. 그 사이에서 질질 짜고, 흐리멍덩하고, 비루하고 지질한 글을 쓰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난 요즘 5년 이상 쌓아온 ‘독자와의 신뢰’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체감한다. 누군가는 한때 수십만 개에 달하던 좋아요가 고작 몇백 개로 쪼그라든 것이 슬프다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난 요즘 꽤 괜찮다. 나는 나고, 요즘 내가 내놓는 것들은 적어도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온 내 인생과 글을 지켜봐 왔고, 단순히 숫자로 변환될 수 없는 사람들. 더 많은 좋아요가 아니라 더 깊은 신뢰를 위해 글을 쓴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다. 아무렴, 시는 오글거리고, 소설은 너무 길며, 수필은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읽을 것이다. 오늘도 내가 쓰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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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 최근에 『이번 생 플레이 가이드』라는 책을 냈다. 열심히 썼는데 좀 사줬으면 좋겠다. 네이버 검색하면 나오는데 웬만하면 예스24에서 사줬으면 좋겠다. 그쪽 순위가 오르면 더 많이 팔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