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소문난 ‘유리멘탈’ 바로 나였다. 부족한 자존감 때문에 늘 타인들의 눈을 의식했다. 어리석게도 나의 만족보다 타인들의 만족이 컸을 때 더 행복했다. 그들의 작은 칭찬 한마디에 내 몸을 혹사해 상대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이타적인 행동들은 사실 ‘호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서른 고개를 넘고, 완연한 어른의 범주에 들어서면서부터 그건 진정한 이타심이 아니라 ‘착한 사람 콤플렉스’였다는 걸 알았다. 내 안에 자존감이 없어서 늘 타인의 평가에 연연했고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비수처럼 박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에 옳다고 믿었던 신념으로부터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 때가 있었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헝클어진 신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오춘기가 왔을 무렵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뜩이나 바닥인 자존감이 아예 흔적도 없어진 바로 그때였다.
작은 성공을 연습하는 여행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 떨어지면 여행자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해야만 한다. 여권을 가지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일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숙소까지 찾아가는 것이 우선 당면 과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일들이 낯선 환경, 언어와 문자를 덧입는 순간 어마어마한 미션이 된다.
지하철 표 하나 끊는 데 30분이 소요된다 해도 (물론 좀 짜증 나지만) 이해가 되는 건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여행자는 작은 성공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 기쁨은 쉽고 빠르게 자신감을 충전하는 지름길이다.
말도 안 통하는 이 낯선 땅에서 이렇게 무사히 지하철 표를 사다니 대단해!
말도 안 통하는 이 낯선 땅에서 이렇게 무사히 숙소를 찾아오다니 대단해!
말도 안 통하는 이 낯선 땅에서 이렇게 무사히 변비약을 사다니 대단해!
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 떠서 집을 나와 회사로 향하는 루트처럼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었다면 칭찬은 사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야 하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성장해야 한다고. 사실 우리 사회는 큰 성공을 이루기 전까지 개인적 즐거움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처럼 겨울 혹한기에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뜨거운 여름 개미처럼 땀 흘리며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고, 나태에 빠질까 스스로를 무섭게 다그쳤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잊고 있던 작은 성공들이 주는 기쁨을 깨달을 수 있다. 그 소소한 성취감은 곧 자신감 충전으로 이어진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
소극적, 정적, 내향적. 이 단어들이 향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앞에 나서서 번잡 떠는 것보다 조용히 틀어박혀 멍 때리거나 티브이 보는 걸 평생의 즐거움으로 알고 살아왔다(물론 지금도 최고의 낙이긴 하다). 놀이동산에 가도 놀이기구를 타기보다는 짐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 타는 걸 구경했다. 체육 시간엔 어떻게 하면 그늘 있는 스탠드에 앉을까 꼼수를 썼다.
액티비티는 나와 평생 거리가 먼 존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에 갔을 때 캐녀닝(Canyoning)이란 것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캐녀닝은 산간 계곡물에 뛰어들어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스포츠다. 수영, 하이킹, 암벽 타기 등이 활동 등이 포함된 것으로 계곡의 모든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이다. 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고, 업무차 꼭 경험해봐야 하는 일이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계곡의 시작점인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 내 심정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하기로 했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평소보다 계곡물은 배로 늘어났고 물살도 사람을 삼킬 듯 거셌다. 물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 가이드를 따라갔다. 덕분에 약 10팀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나는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캐녀닝을 마치고 일행의 몰골을 보니 다들 엉망진창이었다. 영혼이 탈출한 몇몇도 있었다. 체력을 자신했던 분들도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보니 꽤 험한 액티비티였던 것이었다.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려 앓는 일행과 달리 비교적 가뿐히 움직이는 내 몸 상태를 보고 주변 분들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놀랐다. 동적인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의외로 어느 부분에서는 스포츠에 강했다.
그 이후부터 평생 안 할 것 같던 등산도 시작했고, 마라톤 완주를 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품기 시작했다. 나만 몰랐던 나의 가능성을 알게 해 준 계기가 바로 여행이다. 낯선 환경과 상황에 던져지고서야 사람은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 휩싸였을 때 여행을 떠나 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능력 있고 또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당연했던 것들이 소중해지는 여행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심심한 엄마 밥이 그랬고, 무심한 듯 툭 내뱉는 아빠의 잔소리가 그랬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톡을 보낸다.
나 이제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출발해. 엄마표 비빔국수 먹고 싶어.
길지 않은 건조한 문장 안에 많은 것이 담겼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와 엄마가 만들어내는 집밥에 대한 감사와 여행을 통해 조금 달라진 시각으로 마주하게 될 일상에 기대가 어우러졌다.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보는 부모님의 자세도 다르다. 대단한 일을 하고 돌아온 금의환향을 한 자식 대하듯 한동안은(!) 잔소리 대신, 뭐든 우선권은 나에게 주신다. 비빔국수를 먹는 내내 내가 없는 사이 벌어졌던 투닥이던 일들에 대해 이르기에(?) 바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스며든다.
여행은 가족 내에서 내가 어떤 존재이고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나도 부모님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영영 떠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이렇게 여행을 통해 ‘서로의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그저 ‘함께 있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