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그것은 엄마가 허락한 유일한 달콤함이었다
명절에만 만날 수 있는 특선 음료 식혜. 우리 집에서는 콜라를 많이 마시면 혼이 났지만, 식혜는 다 마시지 않으면 혼이 났다. “그걸 어떻게 만든 건데!” 단물만 쪽 빨아 먹고 밥알이라도 남기는 순간에는 이어질 저녁 밥상에 식혜 밥알이 그대로 나올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명절마다 모이는 친척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식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줄 때는 귀찮았지만 없으니 아쉬워서일까. 식혜 투정을 부렸다가 혼쭐이 났다. “그거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나는 콜라라도 찾아볼 심정으로 슈퍼마켓에 갔다. 그리고 이 노란 음료를 만났다.
이제는 내가 엄마와 떨어져서 산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식혜를 마시러 편의점에 간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식혜다. 캔에 담긴 식혜가 음료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식혜는 음식일까? 음료일까?
식혜는 ‘엿기름에 밥을 삭혀 만든 전통음료’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유사(가락국기 부분)’에 식혜의 술 버전인 감주로 제사를 올린 기록이 있다. 1740년의 ‘수문사설’에는 식혜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콜라는 몰라도 식혜는 줄곧 마셨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식혜는 다른 음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사이다, 콜라, 주스로 이어지는 화려한 조합에 식혜는 명절이나 제사에만 볼 수 있는 음료로 변한다. 그마저도 식혜를 만들어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골치였다. 넉넉잡아도 반나절이 걸리는 식혜는 손이 많이 갔다.
1993년, 부산의 우유회사인 ‘비락’에서는 ‘파우치형 식혜’를 출시한다. 지금은 회사 이름보다 유명한 ‘비락식혜’다. 비락식혜는 즉석에서 마실 수 있는 첫 식혜 제품으로 20, 30대 주부들의 노고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2년 뒤에 이 작은 음료가 사이다보다 잘 팔리는 음료가 될 것이란 사실을.
비락식혜, 신토불이 열차에 탑승하다
바로 1993년 12월 15일, 우르과이라운드(UR)가 타결된 것이다. 우르과이라운드, 무슨 챔피언스리그 같은 이 이름은 스포츠가 아니라 국제무역협상을 말하는 것이다. 우르과이라운드로 인해 무역의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농산물이었다.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면 국내산 농작물은 와장창 할 테니까.
그때 사용된 용어가 ‘신토불이’였다. 서울 서대문로터리 농협빌딩에 ‘신토불이’라는 큰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기점으로 ‘우리 땅에서 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졌다. 대중가요 제목도 신토불이(배일호)였고, 서점가에 신토불이 코너가 있었을 정도였다.
음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콜라는 신토불이가 아니잖아, 사이다도 신토불이가 아니잖아. 조금 더 신토불이 같은 음료가 어디 있을까? 그때 눈에 띈 음료가 바로 ‘비락식혜’였다. 만드는 방법부터 재료까지 모두 ‘신토불이’의 기준에 맞는 음료였다. 비락식혜는 하루에 150만 캔이 팔릴 정도로 완판행진을 이어갔다.
이미 옛날 것으로 취급당하던 식혜의 유행에 다른 식품뿐 아니라 문화 생활용품도 신토불이로 변한다. 백화점에서는 누룽지가 팔렸고, 패션가발로 한복 올림머리가 팔리고, 각종 개량한복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현대와 과거의 퓨전. 21세기에 상상하기 힘든 대한조선 시대의 등장이었다(아니다).
비락식혜 vs. 잔치집식혜, 유사식혜의 시대가 되다
비락식혜가 등장하며 생긴 식혜 음료 시장은 1993년 50억 원 정도였다. 하지만 1995년에 2,500억 원으로 당시 1,900억 원인 사이다보다 잘 팔렸다. 음악으로 치자면 코카콜라, 칠성사이다, 비락식혜가 SM, YG, JYP 정도의 위치를 가진 것이다.
문제는 잘 나가면 언제나 따라오는 음료가 있다는 것. 지난 마시즘에서 소개한 보리 탄산과 우유 탄산이 그래도 이름값 있는 녀석만 참전한 경쟁이었다면, 식혜부터는 무한 저글링 스타일(?)로 비슷한 식혜들이 생겨난다. 맛그린식혜(엘지화학), 본가식혜(제일제당), 잔치집식혜(롯데칠성), 큰집식혜(해태음료)가 대표적이지만 이름 모를 중소회사도 참전해 시중에는 60종류의 식혜가 팔렸다.
그중에 비락과 자웅을 겨뤘던 제품이 ‘잔치집식혜’다. 하지만 잔치집식혜는 큰 난관을 만난다. 바로 식혜를 많이 찾는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에 잔치집이라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 아이러니한 조합에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롯데칠성은 납품용 식혜의 이름을 ‘고향집식혜’로 바꾸는 일까지 생겼다.
음료 시장에는 ‘비슷한 제품이 많아지면 재고는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식혜 제품을 내야 하는데 마땅한 공장을 찾지 못해 안달이었던 음료 회사들은 같은 공장에서 나온 식혜에 포장만 바꿔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급하게 출시한 식혜들은 가격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 된 것이다. 이게 비트코인도 아니고. 대중들은 식혜에서 멀어져 갔다.
식혜열풍, 한국적 음료의 가능성을 열다
한때 열풍이라고 느껴졌던 식혜 시장은 식혜 밥알처럼 가라앉았다. 많은 음료 회사가 ‘넥스트 신토불이’를 찾아 나섰다. 덕분에 1995년 이후는 ‘가장 한국적인 음료’를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롯데칠성의 ‘솔의 눈’이 돋보였고, 웅진식품의 ‘가을대추’는 1,000억 원대의 대추 음료 시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1996년에 나온 IdH. 해태음료 ‘갈아 만든 배’가 음료의 왕좌를 받는다.
한때 슈퍼마켓의 음료 코너를 노랗게 물들인 식혜들은 그 수가 줄었다. 하지만 비락식혜만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물론 소속사가 비락에서 야쿠르트로, 야쿠르트에서 팔도로 변했다). 여전한 것은 신토불이를 지킨다는 것. 비락식혜에서 국내산으로 사용한 멥쌀이 1만 4,000톤이다.
이제는 반대의 시기가 왔다. 비락식혜는 ‘신토불이’ 대신 ‘으리(의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2014년 김보성 출연의 광고로 동년대비 35%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를 기점으로 젊은 층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비락의 회춘작업이 시작된다. 쌀알을 없애고, 컵 음료가 나오고, 아이스크림이 되고, 숙취 해소제가 된다. 그렇게 비락식혜는 한국음료의 전성기를 다시 기다리는 듯하다.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