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치앙마이 한 달 살기까지, 단순히 특이한 사람뿐 아니라 이제 막 퇴사한 사람, 인생의 전환기에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 한 달 살기’를 한다. 내 경우 지금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 그런데 멍- 때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난 한 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1. 재충전을 하고 싶어서
2015년 7월. 막 퇴사한 직후, 난 정말 격하게 쉬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으니… 쉬는 게 아니라 무력해지는 느낌? 우울하게 축 쳐지는 느낌?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 백수처럼 방구석에 처박혀있으면 누가 뭐라고 잔소리하는 느낌? 그렇다고 세계여행을 격하게 나돌아다닐 기운도 없었다. 그냥 떠나서 다른 곳에서 쉬며 재충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태국의 치앙마이는 그런 의미에서 재충전을 위한 최고의 도시였다. 모든 게 저렴하고. 모든 게 상냥하고. 날씨도 온화하고, 100밧의 행복을 누리면서 맛난 음식과 요가, 수영장을 오가면서 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인지 저절로 충전된다. 그렇게 방전 난 배터리 충전을 하고 나면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는 원기가 회복된다.
제대로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살던 도시도 치앙마이였고,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 한 박자 쉬던 도시도 치앙마이였으니,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은 치앙마이가 아닌가 싶다.
2. 궁금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내 경우 관광지에 대한 궁금함이 1도 없다. 관광 책은 이전에도 지금도 안 사본다(가끔 심심해서 읽기는 한다). 유명하다는 관광지, 특히 맛집 탐방은 귀찮아서 안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이 궁금하다.
하루에 5번 아잔이 울려 퍼지는 무슬림 국가에서 살면 어떤지 궁금하고, 모두 같은 통화를 사용하며 비행기 티켓이 2-3만 원이라는 유로존의 삶이 궁금했다. 동남아에서, 유럽에서, 무슬림 국가에서, 북아프리카에서 살아보면 어떤지… 그리고 대도시의 삶, 작은 도시의 삶, 해변가 도시와 농장과 섬의 삶까지!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다른 삶의 방식이 궁금해서 떠났다.
- 유럽: 독일 베를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에스토니아 탈린 그리고 지금은 그리스 아테네
- 무슬림 국가: 모로코 마라케시, 터키 이스탄불
- 해변가 도시: 다낭, 태국의 섬 코시창
도시 규모도 다르고, 문화권, 종교도 다르고, 위치도 다른 곳에서 살면서 여러 삶의 방식을 훔쳐보고, 스터디하고, 허기진 궁금함을 마구마구 채웠다. 이와 같은 호기심 충족을 위한 최적의 도시는 바로 독일의 베를린, 그리고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베를린은 그야말로 전 유럽의 모든 문화를 조금씩 엿볼 수 있다. 바로 옆 동네인 북유럽의 무뚝뚝함과 우중충한 날씨(ㅋㅋㅋㅋ), 그리고 동유럽 및 남유럽에서 일자리 찾아온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그들의 문화를 맛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스탄불은 말 그대로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이며 동시에 무슬림 국가 그리고 중동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나의 호기심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었기에 한 달이 아니라 무려 석 달을 머물렀지 않았나 싶다.
3. 영감, 동기부여를 받고 싶어서
같은 사람만 만나면서, 같은 환경에만 살면 바뀔 수 없다. 지극히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틀들을 적극적으로 깨뜨려버리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런 ‘충격’ 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로 세계 여행을 떠나지만 그렇게 여행지에서, 호스텔에서 한두 번 만난 일회적인 인연보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어서 한 달이든 두어 달이든 머물렀다. 그리하여 가장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난 건 인도의 오로빌, 모로코의 마라케시였다.
일단 이 두 도시는 전혀 편하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놀라움 혹은 외로움과 싸우면서 지내야 하는 전혀 ‘휴식’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래서 마라케시를 떠나서 치앙마이로 쉬러 갔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자라온 곳과 다르고, 믿는 가치가 다른 곳이기에 정말 ‘신기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단순히 한두 번 만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어 달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배움, 영감, 동기부여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수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직접 살아낸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배운 것은 정말 컸다.
본인에게 적합한 도시를 골라서 떠나자
그러니 ‘한 달 살기’를 무작정 결정하고 ‘○○○가 유명하니까’ 하는 이유로 그냥 떠나지 말자. 어떤 사람에게는 제주는 그냥 비싸기만 하고 시끄러운 곳일 수 있다. 치앙마이는 너무나 지루하고 하품 나는 곳일 수 있다. 본인의 상황과 원하는 것에 따라서, 그에 걸맞은 도시를 골라서 떠나길 바란다.
원문: Lynn의 브런치